[조사심의관 코너] 각조. 각항. 각호 vs. 각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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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6

각조각항각목

각조.각항.각호 vs. 각 목

글. 한지형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법원도서관에 근무한 지 다섯 달이 다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업무에 익숙해졌을 만도 한데 아직 멀었습니다. 이제 겨우 ‘이 중’과 ‘그중’을 구분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여전히 ‘소송계속 중’도 어색하고 ‘변론종결 시’나 ‘선고 시’는 띄어 쓰는 것이 오히려 틀린 것처럼 느껴집니다. 언제쯤에나 사전을 찾지 않고도 ‘부부간, 형제(자매 남매)간’과 ‘가족 간’을 바르게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조사심의관 코너’는 띄어쓰기, “그중” 의존 명사에 관한 띄어쓰기를 글감으로 삼아 봅니다.

의존 명사는 어문규범에 따라 띄어 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은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등 어문규범에 맞추어 공문서를 작성하여야 합니다(국어기본법 제3조 제3호, 제14조 제1항).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 고시인 「한글 맞춤법」은 띄어쓰기와 관련하여 몇 가지 원칙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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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맞춤법」 (2017. 3. 28. 문화체육관광부 고시 제2017-12호) 제1장 총칙 제2항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 제5장 띄어쓰기 제1절 조사 제41항 조사는 그 앞말에 붙여 쓴다. 제2절 의존 명사,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 및 열거하는 말 등 제42항 의존 명사는 띄어 쓴다. 아는 것이 힘이다. 나도 할 수 있다. 먹을 만큼 먹어라. 아는 이를 만났다.

위 원칙만 놓고 보면 고민할 일이 없습니다. ‘여럿 가운데 / 무엇을 하는 동안’을 뜻하는 ‘중(中)’이나 ‘공간적인 사이 / 관계’를 뜻하는 ‘간(間)’,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일어날 때나 경우’를 뜻하는 ‘시(時)’는 모두 개별 단어로, 의존 명사이므로 앞말과 띄어 써야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합성어는 띄어 쓰지 아니함
그런데 ‘그중’, ‘부부간’, ‘비상시’의 ‘중’, ‘간’, ‘시’는 왜 띄어 쓰지 않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위 단어들이 합성어이기 때문입니다. 합성어는 ‘둘 이상의 실질 형태소가 결합하여 하나의 단어가 된 말’을 뜻하는데,⑴ 하나의 단어이므로 모든 음절을 붙여 적어야 합니다.
합성어인지 아닌지는 표준국어대사전 등재 여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가나다’의 설명도 그러하고 법원도서관에서 발간한 「법원 맞춤법 자료집」의 설명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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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中)’⑵ ② 의존 명사: ‘여럿 가운데’, ‘무엇을 하는 동안’, ‘어떤 상태에 있는 동안’의 뜻으로 앞말과 띄어 쓴다. 영웅 중의 영웅, 원심판결 중, 이 중, 채권자들 중, 근무 중, 회의 중, 임신 중, 소송 중, 기간 중 ③ 다음 말들은 복합어로 보고 붙여 쓴다. 밤중, 병중, 오밤중, 은연중, 한밤중 ※ ‘그중’은 ‘그’와 ‘중’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합성어로‘범위가 정해진 여럿 가운데’라는 뜻을 새롭게 가지게 된 하나의 단어로 붙여 써야 하고, ‘그것들 가운데’라는 뜻은 ‘그것 중’으로 써야 한다. ‘간(間)’⑶ ① 공간적인 ‘사이’의 뜻일 때 가. 의존 명사로서 앞말과 띄어 쓴다. 다만 한자로 쓰는 경우는 붙여 쓴다. 가족 간, 국가 간, 남녀 간, 대륙 간, 민족 간, 부족 간, 서울 부산 간, 원고 피고 간, 이웃 간, 지역 간 나. 다음 말들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복합어이므로 앞말에 붙여 쓴다. 남매간, 모녀간, 모자간, 부녀간, 부부간, 부자간, 형제간 ‘시(時)’⑷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일어날 때나 경우’를 뜻하는 ‘시(時)’는 의존 명사로서 앞말과 띄어 써야 한다. 다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한 단어로 인정된 일부 어휘 ‘비상시(非常時), 평상시(平常時)’ 등은 붙여 쓴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 정도면 법원에서 조서나 재판서 등을 작성할 때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문법 지식과 어휘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잘 모르겠으면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되기 때문입니다.

어문규범에 맞지 않는 법령 용어
그렇다고 모든 고민이 풀린 것은 아닙니다. 법령을 인용하려다 보면 앞서 설명한 띄어쓰기 원칙과 맞지 않는 부분이 종종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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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제28조(분쟁의 조정 등) ① 위치정보사업자 등은 위치정보와 관련된 분쟁에 대하여 당사자간 협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거나 ... 「행정소송법」 제10조(관련청구소송의 이송 및 병합) ② 취소소송에는 사실심의 변론종결시까지 관련청구소송을 병합하거나 ... 제21조(소의 변경) ① 법원은 ... 사실심의 변론종결시까지 원고의 신청에 의하여 결정으로써 소의 변경을 허가할 수 있다. 「민법」 제626조(임차인의 상환청구권) ① 임차인이 유익비를 지출한 경우에는 임대인은 임대차종료시에 ... 제646조(임차인의 부속물매수청구권) ① 건물 기타 공작물의 임차인이 그 사용의 편익을 위하여 임대인의 동의를 얻어 이에 부속한 물건이 있는 때에는 임대차의 종료시에 ... 제691조(위임종료시의 긴급처리)

이때 “그래도 법령의 문언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당사자간’, ‘변론종결시’, ‘종료시’ 등은 앞서 본 어문규범에 부합하지 않고 하나의 단어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지도 않습니다. 다른 법령에서 ‘변론종결 시(가사소송법 제 15조 등)’를 찾을 수 있는 것을 보면 입법자가 의도적으로 붙여 쓴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이 점에서 아래 ‘각호’의 경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당사자 간’, ‘변론종결 시’, ‘종료 시’로 띄어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각호? 각 호?
정말 골칫거리는 ‘각 ○’입니다. 우리 법령의 조문은 ‘조(條)·항(項)·호(號)·목(目)’으로 구분되는데 원래 이들은 의존 명사 또는 명사이므로 관형사인 ‘각(各)’과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일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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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條)’ 「의존 명사」 ‘조목’이나 ‘조항’의 뜻을 나타내는 말 ‘항(項)’ 「명사」 내용을 체계적으로 나누어 서술하는 단위의 하나 ‘호[號(?)]’ 「의존 명사」 어떤 순서나 차례를 나타내는 말 ‘목(目)’ 「명사」 예산 편성에서 나누는 분류의 하나

그러나 ‘각조(各條)’, ‘각항(各項)’, ‘각호[各號(?)]’의 경우에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아래와 같은 뜻을 가진 하나의 단어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붙여 써야 합니다.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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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조(各條)’ 「명사」 각각의 조목이나 조항 ‘각항(各項)’ 「명사」 각각의 항목 ‘각호(各號)’ 「명사」 각각의 조항

그럼에도 많은 법령에서 ‘각 호’를 발견할 수 있는 까닭은 법제처에서 발간하는 책인 「알기 쉬운 법령 정비기준(제8판, 2018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명 ‘알법’에서는 그 이유를 “‘각조(各條)’와 ‘각항(各項)’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독립된 하나의 단어로 실려 있으나, 법령문에서 더 자주 사용되는 ‘각 호’나 ‘각 목’을 띄어 쓰는 것과 형평을 고려해 ‘각 조’와 ‘각 항’으로 띄어 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조’와 ‘각항’뿐 아니라 ‘각호’도 사전에 등재되어 있고, 민사소송법, 민사집행법,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등 다수의 법령에서 ‘각호’로 표기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보면, 법제처의 위 설명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어문규범의 원칙으로 돌아가 ‘각조’, ‘각항’, ‘각호’는 붙여 쓰고, ‘각 목’은 띄어 쓰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조금 어색하지만 말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
이제 ‘부부간, 형제(자매·남매)간’과 ‘가족 간’, ‘각호’와 ‘각 목’ 사이의 어색함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사전에 등재된 단어”인지가 달리 볼 기준이라면 “가족간”이나 “각목”을 사전에 올려 해결하면 좋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봅니다.
1999년경 표준국어대사전 발간 당시의 편찬 지침에 따르면, 결합을 통해 의미 변화가 일어난 것, 오랫동안 자주 결합하여 쓰인 것, 과거의 여러 사전들에서 합성어로 본 것 등이 합성어로 등재되었다고 하니, 언젠가는 ‘가족간’이나 ‘각목’이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될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 측에 확인한 바로는 현재의 실무상 이런 합성어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매년 분기별로 열리는 ‘표준국어대사전 정보보완심의회’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의 내용을 정비⑹하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명확한 오류를 바로잡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할 뿐 ‘오랫동안 자주 결합하여 쓰인 것’을 찾아 새로운 합성어로 등재하는 일은 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다만 국립국어원 측에서는, 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인 ‘우리말샘’에서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우리말샘’은 일반 참여자와 사전 전문가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위키피디아 방식의 사전으로, 일반 참여자는 회원 가입 후 사전 편찬에 참여할 수 있는데, 사용자가 첨삭한 정보는 표현·표기 감수를 거쳐 사전에 오를 수 있고(‘참여자 제안 정보’) 이 정보는 해당 분야 전문가 감수 후에 ‘전문가 감수 정보’로 표기된다고 합니다. 국립국어원은 또한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표제어라 하더라도 우리말샘에 등재된 경우 그 기준을 따르면 된다고 설명합니다.

사전 찾기? 사전 만들기!
개인적으로 띄어쓰기는 일종의 약속이 아닌가 싶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려 있는 단어인지 찾아보는 이유는, 국가 주도하에 수많은 국어학자들이 8년의 시간을 매달려 기존의 사전을 나름의 기준으로 집대성하였으니 그 당시 사람들의 약속이 가장 잘 담겨 있다고 믿고 존중해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립국어원이 국어학자들과 만들었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우리 모두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 우리말샘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도 그 약속의 존재를 수시로, 정확하게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우리도 무조건 사전을 찾기보다(물론 저는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수십 번 표준국어대사전을 열어 보았습니다만) 함께 사전을 만드는 마음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조심스레 말씀드리면서 부족한 글을 마칩니다(우리말샘에 전문가 감수를 거친 단어로 ‘답변서부본의송달’이란 단어가 올라 있습니다. 법조 집단지성의 참여를 기대해 봅니다).

⑴ 참고로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하나의 실질 형태소에 접사가 붙거나(파생어) 두 개 이상의 실질 형태소가 결합된 말(합성어)을 ‘복합어’라 합니다.
⑵ 맞춤법 자료집 380, 381면
⑶ 맞춤법 자료집 162면
⑷ 맞춤법 자료집 188면, 493면 등
⑸ 법원 맞춤법 자료집 270면에서는 “각 호”가 맞는 표현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위 자료집 전정판 발간(2013년경) 이후에 “각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2015년 하반기)되었기 때문입니다.
⑹ 국립국어원은 표준국어대사전 발간 당시, 그리고 2008년 표준국어대사전 개정 때에는 편찬 지침과 개정 지침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2008년 이후부터는 분기별로 표준국어대사전 정보보완심의회를 통해 내용을 개정하기는 하지만 따로 개정 지침을 만들지는 않고 ‘표준국어대사전 정보 수정 주요 내용 안내’라는 제목으로 누리집에 개정안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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