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세상 X 조사심의관 코너] 전통 법제로 보는 법과 법원의 역사

조사심의관 코너

2024.04.05

글 백승준 조사심의관(법원도서관)

법원조직법 제22조는 “재판사무의 지원 및 법률문화의 창달을 위한 판례·법령·문헌·사료 등 정보를 조사·수집·편찬하고 이를 관리·제공하기 위하여 대법원에 법원도서관을 둔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근거하여 법원도서관은 법원의 발자취를 담은 법원사(法院史)를 편찬하고 전시할 만한 사료적 가치가 있는 자료를 수집·관리하고 있습니다. 수집된 법원사자료 중 일부는 법원전시관에서 상설전시하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지난 2011년부터 ‘법원사자료 기획전’을 격년마다 개최하고 있습니다.

2011년 개최된 첫 기획전의 주제는 ‘조선의 법과 재판’입니다. 조선 말기 근대사법이 도입되기 전 우리 전통 법제를 살펴봄으로써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법전통과 법제도의 근저에 깔려있는 법감정 등의 연원을 찾아보기 위하여 첫 기획전의 주제로 선정되었습니다. 아래에서는 ‘법치, 새시대를 열다 – 조선의 법과 재판’이라는 주제로 열린 첫 번째 법원사자료 기획전의 내용과 함께 조선시대의 재판사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경국대전(국립중앙박물관)

대명률(국립중앙박물관)

조선의 법 들여다보기
마땅찮은 소송관행을 비판할 때 ‘원님재판’이라는 말을 흔히 씁니다. 이는 조선시대 재판이 지방관인 고을 수령의 자의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유교적 도덕질서를 기본규범으로 삼은 계급사회라는 한계는 있었지만, 근대 사법이 도입되기 이전의 조선시대에서도 성문법으로서의 규범이 존재하였고, 법률의 해석·적용·집행에 있어서 관료들의 실증적 연구와 고민이 있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필요한 법률을 수시로 제정하거나 외국법을 개별적으로 수용하여 특정사안을 처리하였던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에서는 통치자까지 구속하는 통일된 법과 법전을 요구하였습니다. 태조가 즉위교서에서 문무관의 공사죄를 반드시 ‘대명률’로 다스리도록 선언한 이후 1397년(태조 6년)에는 조선 최초의 성문법전이라 할 수 있는 ‘경제육전’이 발간되었고, 1485년(성종 16년)에는 ‘경국대전’이 완성되었으며, 이후 ‘속대전’(1746년), ‘대전통편’(1785년), ‘대전회통’(1865년)이 차례로 편찬되어 그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결송입안(국립중앙박물관)

조선의 재판유형과 사법제도
조선의 민사재판은 사송이고 형사재판은 옥송입니다. 원고는 피고가 속한 지방관청에 제소하고, 이후 상소절차는 관찰사를 거쳐 중앙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세 번의 소송을 거쳐 승소한 사건은 수리하지 않는다.”라는 ‘경국대전’ 형전 사천조의 삼도득신법(三度得伸法)이 있었으나, 형식적 확정력에 실제적 정의가 유린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선비들의 정도(政道)가 반영되어 엄격하게 지켜지지 못했고, 조선의 재심사유는 폭넓고 유연하게 인정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재판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소를 제기하고자 하는 백성이 관에 재판을 요청하는 문서인 소지를 피고의 주소지 관청에 제출하여 시작되었습니다(소지 제출). 원고가 소장을 올린 후 직접 피고를 법정에 데려오도록 하였으며, 소송의 전 과정을 원고와 피고가 직접 주도해 이끌어 갔습니다(원고 및 피고 출석).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을 하고(시송다짐), 원고와 피고가 서류를 제출하거나 진술, 대질신문 등 심리를 진행합니다. 심리를 종결(결송다짐)한 다음 관청이 판결내용을 확인·증명하여 문서를 발급(결송입안)하는데, 백지·면포·화폐 등 발급수수료를 받아 소송비용으로 충당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판결서에 해당하는 결송입안에는 ① 판결서를 발급한 날짜와 관청의 이름, ② 소장의 내용, ③ 소송의 개시를 양 당사자들이 합의한 시송다짐, ④ 당사자들의 사실 주장과 제출된 증거내용 요약, ⑤ 결송다짐, ⑥ 판결내용 등이 모두 담겨 이를 통해 소송의 진행상황을 확연히 파악할 수 있었으며, 상급기관에서는 문서만으로도 판결의 적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좌)형정도 원장집행, (우)형정도 죄수이송(국립중앙도서관)

조선의 재판사례
세종 대인 1427년 형조판서 서선의 아들이자 좌의정 황희의 사위였던 서달이 충청도 신창현에서 저지른 살인사건을 은폐한 혐의로 서선, 황희와 우의정 맹사성이 의금부에 하옥됩니다. 사건의 전말을 소개합니다. 서달이 신창현을 지나던 중 그 고을 아전 하나가 서달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달아나자 화가 난 서달이 종들을 시켜 도망친 아전을 붙잡아 오게 하였습니다. 서달의 종들은 신창현 아전 한 명을 붙잡아 도망친 아전이 누구인지 캐묻고 있었는데, 표운평이라는 아전이 이를 보고 질책하자 종들은 표운평을 때려 서달에게 끌고 갔습니다. 서달은 수하를 시켜 표운평을 매질하였는데 다음 날 표운평이 죽었고, 그 아내가 관아에 고발하였습니다. 감사였던 조계생은 관원을 시켜 신창현으로 가서 서달과 그 종들을 신문하라고 명하였고, 이들은 서달이 종들을 시켜 표운평을 때려 죽인 것으로 처결 문건을 만들어 감사에게 보고하려 합니다. 그런데 서달의 아버지 서선은 신창현의 현감 등에게 아들이 처벌받지 않도록 부탁하면서 형조로 가던 보고서를 빼돌렸고, 서달의 장인 황희는 신창현이 고향인 맹사성에게 유족과의 합의·중재를 부탁하였으며, 맹사성은 황희의 부탁을 받고 표운평의 형 표만복을 불러 돈을 주며 합의를 요청하였습니다. 표만복은 표운평의 아내를 찾아가 회유와 협박을 하여 합의서를 써 주게 하였고, 사건은 서달의 종이 스스로 저지른 살인사건으로 조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서를 꼼꼼히 살펴본 세종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묻힐 뻔한 사건은 세종의 명으로 재수사가 시작되었고, 진실은 백일하에 드러났으며 사건을 은폐하기 위하여 청탁과 뇌물이 오간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서달은 장 1백 대를 치고 3천 리 밖으로 유배되었고, 사건 은폐에 가담한 좌의정 황희와 우의정 맹사성 등 다수의 관리들이 파면되거나 장형, 유배형을 받았습니다.1)

명종 대인 1560년에는 화순 최씨 가의 최득충이 경주 손씨 가의 손광현 등을 상대로 “결혼한 뒤 자녀 없이 죽은 누이와 딸의 재산을 본족(本族)에 돌려달라.”라는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최씨 가와 손씨 가는 조부 및 손자 대에 걸쳐 중첩된 혼인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손중돈의 두 번째 처와 손광서의 전처였던 화순 최씨 가의 여인이 모두 후사없이 사망하자 원고 최득충은 고모와 누이동생이 소유했던 노비를 손광서의 후처 김씨와 그의 소생 등에게 줄 수 없다며 이를 반환하여 달라고 한 것입니다. 재판 관할기관인 경주부는 경국대전 사천조를 엄격히 적용하여 무자녀 여성의 재산은 시집에서 1/5, 친정에서 4/5를 각 상속하되, 의자녀(義子女) 중 누군가가 승중(承重, 장손으로서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일)할 경우 3분을 더해 상속하게 되므로 의자녀와 본족의 상속비율은 4:4로 균등하게 된다고 계산한 다음 원고 최득충과 피고 경주 손씨가 각자에게 노비를 균등하게 분배한다는 판결을 하였습니다.

경주손씨, 화순 최씨 가계도(법원사자료 기획전 자료집)

정조는 사형수에 대해 가능한 너그럽게 판결하려고 노력한 군주로 유명한데, 술로 인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788년 경상도 고성의 소 거간꾼 천봉기가 동료인 조중달과 술을 마시던 중 돈 문제로 시비가 붙어 다투었고 천봉기가 조중달을 때려 다치게 하였습니다. 천봉기가 병문안도 하였지만, 조중달은 사건이 일어난 지 8일 만에 죽게 됩니다. 해당 관청은 조사 결과 천봉기가 조중달의 몸에 올라타 늑골과 목을 눌러 사망하게 되었다고 보아 그를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정조는 평소 원한이 없고 친하게 지냈던 천봉기와 조중달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상태에서 장난기 섞인 다툼을 하다가 불행한 결과로 이어진 것이라며 천봉기를 형장을 친 후 석방하라고 판결하였습니다.2) 백성들에게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명확히 알려주되, 이를 넘은 자는 엄벌에 처한 세종과는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이에 대해 정약용도 흠흠신서에서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살인범을 용서해 준다면 향후 백성들이 음주를 형벌을 모면하는 핑계로 삼을 우려가 있다.’고 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세종실록 표지, 본문 (서울대학교 규장각)

세종 재위 18년이 되던 해(1436년)에 사헌부는 ‘귀신을 공중(空中)으로 불러 사람을 현혹하는 요망한 무당 7명을 죽여야 한다.’는 의견을 올렸습니다. 이에 대하여 세종은 ‘사건에 앞서 금지하는 법을 세우지 아니하고 갑작스레 하루아침에 법으로 처치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하면서 신하들과 논의를 거쳐 그들을 서울 밖으로 내쫓고 이후 금지하는 법을 세워 그 폐단을 막으라고 하였습니다.3) 이러한 죄형법정주의 인식은 왕이 아닌 다른 신하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세종실록에 기재된 세종 재위 22년(1440년)에 사망한 안순의 졸기(卒記)에는 그가 사헌부 관리로 재직할 때의 일화가 담겨 있습니다.4) 당시 대사헌 조박이 사헌부 관리였던 안순에게 죄 지은 궁녀를 처형하라고 지시하였으나, 안순은 “사헌부는 법을 잡고 있는 관청(司)이지, 사람에게 형벌을 가하는 곳이 아닙니다. 또한 그 죄를 밝히지 않고 죽이는 것은 불가합니다.”라는 이유로 반대하였습니다. 조박이 “이것은 성상의 어명이다.”라고 말하였으나, 안순은 “인명은 지극히 중한 것이고,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기에 그 죄를 알지 못하고 극형에 처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마땅히 관청에 회부하여 먼저 그 죄를 밝히십시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조박은 화를 내며 임금에게 이 사실을 일러바쳤으나 임금도 안순의 말을 옳게 여겨 형조를 시켜 그 죄를 조사하게 하였습니다.

마치며

조선에서는 통치규범으로 ‘경국대전’ 등 통일법전을 편찬하고, 법전과 법서 가운데 재판과정에 직접 적용할 만한 내용을 선별하여 소송지침서, 법무지침서를 만들었습니다. 판결서를 지칭하는 결송입안은 소장제출부터 선고시까지의 전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당시 소송절차와 판결서의 형식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나라 법원사에서 조선의 법과 재판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 보고, 이를 통해 법원사 자료의 보존과 수집을 위한 노력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끝으로 세종실록 마지막에 실린 세종이 승하한 다음 그 치적을 적은 글의 일부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5)

임금은 지방으로 파견되는 수령을 불러 면담하여, ‘형벌을 받는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며, 백성을 사랑하라.’는 뜻을 타일렀다. 신하를 예도로 대우하여 재위 중에 사대부로서 형벌에 죽은 자 없었다.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반드시 대신들과 의논한 후에 시행하였으므로 잘못된 일이 없었고, 오례(五禮)가 미비된 것을 염려하여 고금을 참작하여 정례(定禮)를 제정하니 풍속이 바로잡혔다. 형벌은 크건 작건 법에 규정된 대로 신중히 집행하도록 교령(敎令)을 반포하고 이를 관청의 벽에 걸어 관리들이 항상 경계하고 반성하도록 하였다. 또한 옥도(獄圖)를 만들어 이에 따라 옥을 짓고 추울 때와 더울 때의 옥을 달리하여 죄수들이 야위거나 병에 걸리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상벌을 공정하게 하고, 반드시 옛일을 스승 삼아 제도를 분명하게 갖추었기에 문화와 교육이 크게 일어나 볼 만하였으니, 훙서(薨逝) 하신 날에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1) 박영규, “크리미널 조선”, 김영사 75면부터 80면까지의 내용을 요약, 발췌한 것입니다.

2) 국립중앙박물관이 제작한 “조선시대 우발적 음주 살인의 재판 결과는? - 「아! 조선법전의 놀라운 세계」” 동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DIRE25P7zEY)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3) 세종실록 72권, 세종 18년 5월 12일의 첫 번째 기사(https://sillok.history.go.kr/id/kda_11805012_001)

4) 세종실록 91권, 세종 22년 11월 28일의 첫 번째 기사(https://sillok.history.go.kr/id/kda_12211028_001)
5) 세종 32년 2월 22일의 첫 번째 기사,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조선왕조실록(https://sillok.history.go.kr/id/kda_13202022_001)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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