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적 비평 vs 명예훼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사건의 최종 판결은?

최신판례

2017.06.08

[대법원 2016도19255]

▣ 사안의 내용과 재판의 경과

■ 검사 공소사실의 요지

● 재야사학자인 피고인은 2014. 9. 4.경 「우리안의 식민사관」이라는 책을 집필하여 발간하였는데 위 책에는 K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김○○이 쓴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라는 저서를 다룬 내용이 있었음

● 김○○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에서 임나일본부라는 명칭을 부정함은 물론, 일본이 고대사의 특정시기에 가야를 비롯한 한반도 남부 일정지역을 점령하거나 통치했다는 사실을 일본인이 신봉하는 일본서기의 사료를 이용해 반박하였을 뿐이고 위 책에는 아래 ①, ②, ③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지 않음

● 그럼에도 피고인은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김○○가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에서, ① “임나일본부설이 사실이다”, ② “백제는 야마토 조정의 속국ㆍ식민지이고, 야마토 조정이 백제를 통해 한반도 남부를 통치했다“고 주장했다고 기술하고, ③ “일본서기를 사실로 믿고, 스에마쓰 야스카즈의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지 않고 있다”고 기술함

● 이로써, 피고인은 김○○를 비방할 목적으로 출판물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함

■ 소송의 경과

● 제1심(서울서부지법 2016. 2. 5. 선고 2015고단1605 판결)

▪ 피고인의 책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허위사실의 적시에 해당하고 피고인에게 비방의 목적도 인정된다고 판단하여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선고

● 원심(서울서부지법 2016. 11. 3. 선고 2016노287 판결)

▪ 피고인의 책에서 문제가 된 부분의 전체적인 취지가 공소사실 기재와 같지 않거나, 허위사실이 아니라는 이유 또는 피고인의 의견표명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 선고

▣ 대법원 판결 결과 및 판시 사항

■ 사실의 적시와 의견표현의 구별에 관한 종래 대법원 판례의 기본입장 재확인

● 명예훼손죄에 있어서의 사실의 적시란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시간과 공간적으로 구체적인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 내지 진술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표현내용이 증거에 의한 입증이 가능한 것을 말하고 판단할 진술이 사실인가 또는 의견인가를 구별함에 있어서는 언어의 통상적 의미와 용법, 입증가능성, 문제된 말이 사용된 문맥, 그 표현이 행하여진 사회적 상황 등 전체적 정황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함

■ 겉으로 보기에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서술하는 형태로 표현되어 있더라도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경우의 판단기준을 새롭게 제시

●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을 비평하면서 사용한 표현이 겉으로 보기에 증거에 의해 입증 가능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서술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글의 집필의도, 논리적 흐름, 서술체계 및 전개방식, 해당 글과 비평의 대상이 된 말 또는 글의 전체적인 내용 등을 종합하여 볼 때, 평균적인 독자의 관점에서 문제된 부분이 실제로는 비평자의 주관적 의견에 해당하고, 다만 비평자가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고 이해된다면 명예훼손죄에서 말하는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음

■ 위와 같은 판단기준에 의하면 피고인의 책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사실의 적시가 아닌 의견표현에 해당함

● 문제가 된 ①, ②, ③ 부분은 겉으로는 증거에 의해 입증 가능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서술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 그 부분만을 놓고 보면 사실의 적시로 오인될 소지가 없지 않음

● 그러나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피고인이 그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는 것과 같이 식민사관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집필되었고 시종일관 위와 같은 시각에서 기존 주류사학계의 연구성과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전개되는 점, 위 ①, ②, ③ 부분은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의 특정부분을 인용한 후 그 부분의 논리구조를 설명하거나 위 책의 내용을 요약한 다음 이에 대한 피고인의 해석을 제시하고, 여기에 피고인 나름대로의 비판적 평가를 덧붙이는 서술체계를 취하고 있는 점 등과 두 책의 전체적인 내용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 책을 읽게 될 평균적인 독자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음

● 즉, 위 ①, ②, ③ 부분은 피고인이「우리 안의 식민사관」의 다른 부분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과 같은 자료 내지 논증을 근거로 하여, ‘피해자는 임나의 지배주체가 백제라고 주장하였지만 그 밖에는 스에마쓰 야스카즈의 임나일본부설과 일본서기의 내용 대부분을 사실로 받아들였고, 표면적으로는 백제와 야마토 조정이 대등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기술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백제가 야마토 조정의 속국인 것처럼 묘사하였으므로, 결과적으로 야마토 조정이 한반도 남부를 통치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 사실이라고 주장한 것과 다름없다’는 취지의 피고인의 주장을 함축적이고 단정적인 문장으로 서술한 것으로서 피고인의 주관적 의견에 해당하고, 다만 피고인이 위 의견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임

■ 학문과 사상의 영역에서 형사법의 개입은 가급적 자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함

● 비록 위와 같은 피고인의 주장 내지 의견에 대해서는 그 내용의 합리성이나 서술방식의 공정성 등과 관련하여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비판은 가급적 학문적 논쟁과 사상의 자유경쟁 영역에서 다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을 해석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표현방식을 문제 삼아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쉽사리 단정함으로써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함부로 끌어들일 일은 아님

■ 피고인에 대하여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의 결론이 정당함

▣ 대법원 판결의 의미

■ 명예훼손죄에 있어서 사실의 적시와 의견표현의 구분에 관한 종래 판례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한편, 겉으로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서술하는 형태로 표현되어 있더라도 사실의 적시가 아닌 의견표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경우의 판단기준을 새롭게 제시함

■ 피고인의 주장에 대해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가급적 학문적 논쟁과 사상의 자유경쟁 영역에서 다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형사처벌의 대상을 함부로 확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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