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판장 대법원장
지금부터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오늘 선고할 판결은 2017다228007 지료청구 사건입니다.
원고, 피상고인 ○○○ 씨 외 1인
피고, 상고인 △△△ 씨입니다.
이유의 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건 임야에는 1940년 사망한 피고의 조부와 1961년 사망한 피고의 부친의 분묘가 설치되어 있고, 피고는 현재까지 위 분묘를 수호·관리하고 있습니다. 원고들은 2014년 이 사건 임야의 일부 지분을 경매로 취득한 다음, 분묘기지에 대한 소유권 취득일 이후의 지료를 피고에게 청구하였습니다. 원심은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 경우 토지 소유자가 청구한 때부터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 원고들의 지료 청구를 일부 받아들였습니다.
상고심의 주요 쟁점은,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 경우 분묘기지권자가 토지 소유자에게 지료를 지급하여야 하는지 입니다.
결론적으로, 타인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다음 20년간 평온·공연하게 점유하여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하였더라도, 토지 소유자가 분묘기지에 관한 지료를 청구하면, 그 청구한 날부터의 지료를 지급하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다수의견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분묘기지권과 같이 관습법으로 인정된 권리의 내용을 확정하는 때에는, 관습법상 권리의 법적 성질과 이를 인정한 취지, 당사자 사이의 이익형량과 전체 법질서와의 조화를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합니다. 당사자 사이의 약정에 의하지 않고 민법 규정이나 관습법에 의하여 법정지상권이 성립한 경우, 자기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후 토지를 양도하여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경우 그리고 통행지역권을 시효로 취득한 경우 모두 토지 소유자에게 대가를 지급하여야 합니다.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도 분묘기지권자의 이익을 위해 토지 소유권의 행사를 제약함에도 당사자는 지료 유무나 금액을 미리 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위와 같은 법률 규정이나 판례의 취지를 고려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묘기지권은 분묘 수호와 봉제사를 계속하는 한 소멸하지 않으므로, 토지 소유자의 소유권 행사가 사실상 영구적으로 제한될 수 있습니다. 관습법상 분묘기지권을 인정하는 취지는, 분묘 수호와 봉제사를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타인의 토지를 사용하도록 하려는 것일 뿐 분묘 소유자와 토지 소유자 중 어느 한 편의 이익만을 보호하려는 데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성립한 분묘기지권으로 인해 불이익을 감수하여야 하는 토지 소유자로 하여금 일정한 범위에서 토지 사용의 대가를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에 관한 관습법은 우리 민족의 조상숭배사상과 과거의 산림공유 제도, 매장 중심의 장묘 문화 등 역사적·사회적 배경 하에 장기간 형성된 법률관계를 존중하여 분묘가 존치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분묘기지권자의 지료 지급의무를 판단할 때에도 이러한 취지를 존중하여 토지 소유자의 이해관계와 함께 분묘기지권의 신뢰나 법적안정성을 조화롭게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묘기지권자로 하여금 오래 전 분묘를 설치한 시점까지 소급하여 그 이후의 지료를 모두 지급하도록 하면, 분묘기지권자는 오랜 기간 동안의 지료를 일시에 지급해야 하고, 이를 지체하면 분묘기지권 자체가 소멸할 수 있습니다. 이는 관습법상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인정해 온 취지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분묘기지권은 우리 사회에 고유한 전통과 관습에 근거하여 인정된 것이므로, 권리의 발생, 소멸, 변동에 이르기까지 권리의 내용이 민법상 지상권과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지상권에 관한 민법 규정이나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여서도 안됩니다. 민법은 재판의 기준이 될 성문법이나 관습법이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경우 조리에 따라 재판하여야 하고, 권리 행사는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민법 제286조 등은 지상권, 전세권 등 물건의 계속적 용익관계에서 이러한 조리와 신의성실의 원칙을 구현하여 경제 사정의 변동으로 지료가 상당하지 않게 되면 당사자가 증감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당사자가 지료증감을 청구하면, 장래를 향하여 효과가 발생하도록 규율함으로써 기존의 법률관계를 신뢰하여 온 당사자의 이익과 법적 안정성을 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분묘기지권의 특수성에 조리와 신의성실의 원칙, 지료증감청구권 등 규정의 근본적인 취지를 더하여 보면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 경우 토지 소유자가 토지 사용의 대가를 청구하면 그때부터 지료 지급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와 달리 분묘기지권자의 지료 지급의무가 분묘기지권이 성립함과 동시에 발생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1992. 6. 26. 선고 92다13936 판결과, 분묘기지권자가 지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한 대법원 1995. 2. 28. 선고 94다37912 판결 등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이를 변경하기로 합니다.
이상의 법리에 따라 이 사건의 결론에 관하여 봅니다.
원심이 피고는 원고들이 청구한 날부터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본 것은 정당하고, 원심 판단에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습니다.
이러한 다수의견에 대하여는 대법관 이기택,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이흥구의 별개의견과 대법관 안철상, 대법관 이동원의 반대의견,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노정희, 대법관 노태악의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대법관 이기택,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이흥구의 별개의견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한 경우, 분묘기지권자는 분묘를 설치한 때부터 토지 소유자에게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헌법상 재산권보장의 원칙, 민법상 소유권의 내용과 효력, 통상적인 거래관념에 비추어 보면 우리 법질서에서 스스로를 위하여 타인 소유의 토지를 사용하는 경우, 당사자 사이에 무상이라는 합의가 존재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토지 사용의 대가를 지급해야 하는 유상의 사용관계로 보아야 합니다. 시효로 취득하는 분묘기지권에 대해서는 그와 가장 유사한 법정지상권에 관한 민법 규정을 유추적용하여 지료 지급의무의 발생시점을 판단해야 하고, 추상적인 조리나 신의칙을 근거로 이와 달리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의 토지에 분묘를 무단으로 설치하면 분묘기지의 점유·사용 기간 동안 부당이득반환의무를 집니다. 분묘기지권의 취득시효가 완성되어도 그와 같이 대가 지급 의무를 부담하는 상태에서 시효취득이 이루어지고, 시효취득의 효력이 점유를 개시한 시점으로 소급하기 때문에 분묘 설치 시부터 지료가 발생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대법관 안철상, 대법관 이동원의 반대의견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토지 소유자에게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분묘기지권은 관습법상 물권이므로 관습에 대한 조사나 확인을 통하여 관습법의 내용을 선언하여야 하고 다수의견과 같이 법해석을 통해 그 내용을 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분묘기지권은 법정지상권과 분명한 차이가 있으므로 법정지상권에 관한 법리를 분묘기지권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관습법으로 인정하여 온 배경과 취지에 비추어 지료의 수수나 청구조차 없이 20년 이상의 장기간 평온·공연하게 분묘기지의 점유가 계속되었다면, 토지 소유자가 묵시적으로 무상의 토지 사용을 용인하였거나 적어도 분묘기지권자는 그와 같이 알고 분묘기지를 점유해 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그에 따라 분묘기지권자는 시효 기간 동안 계속된 사실관계와 동일한 내용의 권리, 즉 지료 지급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분묘기지권을 취득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수의견에 따라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주문,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상으로 오늘의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1.04.29.(목) 아래 사건의 판결선고를 실시하였습니다. 본 동영상은 이 사건의 판결선고 과정을 녹화한 동영상입니다.
▶대법원 2017다228007 지료청구 (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노정희)
[재생시간 : 10분 9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