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판장 대법원장
다음으로 2015도9436 아동ㆍ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 사건의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상고인은 검사입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위계의 의미에 대한 종전 대법원 판례의 변경 여부입니다. 종전 대법원 판례는,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일으킨 오인, 착각, 부지는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것을 말할 뿐,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다른 조건에 관한 것을 가리키지는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종전 대법원 판례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습니다. 대법원의 새로운 일치된 의견은,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였다면 위계와 간음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으므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위계에 의한 간음죄의 입법 경위를 살펴봅니다. 형법 제정 당시 위계에 의한 간음죄는 부녀의 정조 보호를 입법목적으로 하면서, 강간죄ㆍ강제추행죄보다 가벌성이 낮은 보충적 유형의 범죄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형법에서 정조에 관한 죄라는 표현이 삭제되었고, 형법과 형사특별법에서는 미성년자 등 성폭력범행에 특히 취약한 사람이 위계에 의한 간음죄의 대상으로 규정되었으며, 그 법정형도 높아졌습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위계에 의한 간음죄를 강간죄 등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가벌성을 지닌 범죄로 규정하여, 행위자를 강력하게 처벌하려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의 의미 측면에서 살펴봅니다. 국가와 사회는 아동ㆍ청소년에 대하여 다양한 보호의무를 부담하고, 법원도 아동ㆍ청소년이 피해자인 사건에서 이들이 특별히 보호하여야 할 대상임을 전제로 판단해왔습니다. 아동ㆍ청소년은 아직 온전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렵고, 타인의 성적 침해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동ㆍ청소년이 외관상 성적 결정으로 보이는 언동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타인의 기망이나 왜곡된 신뢰관계의 이용에 의한 것이라면, 이를 온전한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이 왜곡된 성적 결정에 기초하여 성행위를 하였다면 왜곡이 발생한 지점이 성행위 자체인지 혹은 성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인지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가 발생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행위자의 위계적 언동이 존재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므로 위계에 의한 간음죄의 인과관계를 판단할 때에는 위계적 언동의 내용 중에 피해자가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를 이룰 만한 것이 포함되어 있어 피해자의 자발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없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 능력은 나이, 성장환경, 과정, 지능 내지 정신기능 장애의 정도에 따라 개인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음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 위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범행 상황에 놓인 피해자의 입장과 관점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합니다. 이와 달리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상대방에게 일으킨 오인, 착각, 부지는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 등을 말하는 것이지 다른 조건에 관한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종전 2001년 대법원 12월 24일 선고 2001도5074 판결 등은 이 판결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으므로 그 범위에서 이를 변경합니다.
이상의 법리에 따라 이 사건에 관하여 봅니다.
이 사건 공소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을 고등학교 2학년으로 가장하여 14세의 피해자와 온라인으로 교제하던 중, 교제를 지속하고 스토킹하는 여자를 떼어내려면 자신의 선배와 성관계를 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피해자에게 거짓말을 하고, 이에 응한 피해자를 그 선배로 가장하여 간음함으로써 위계로 아동ㆍ청소년인 피해자를 간음하였다는 것입니다. 원심은 종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속아 피고인과 성관계를 한 것이고, 피해자가 오인한 상황은 간음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가 된 것으로, 이를 자발적이고 진지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따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피고인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와 간음행위를 한 것이므로 이러한 피고인의 간음행위는 위계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결국 원심의 판단에는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는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노정희의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에 따라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에 환송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0.08.27.(목) 아래 사건의 판결선고를 실시하였습니다. 본 동영상은 이 사건의 판결선고 과정을 녹화한 동영상입니다.
▶ 대법원 2015도9436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위계등간음) (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민유숙)
[재생시간 : 5분 57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