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영화’를 보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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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영화’를 보는 즐거움

2018.10.05

안방의 TV는 흑백에서 컬러를 넘어 어느덧 HD, FULL HD, UHD급(초고화질)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필름 스크래치 자국이 선명한 고전영화는 여전히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다. 아날로그가 가진 특유의 정서, 이것은 오히려 첨단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더 자극적이다.

예전에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 구경’이란 것을 갔었다.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로 불리던 시절, 필자 또한 극장 구경을 갔었는데, 이제는 없어진 인천의 동방, 미림, 현대 극장에서 오드리 헵번이 나탸사로 분한 <전쟁과 평화>1)(1956, 킹 비더)를, 안젤리나 졸리의 아버지인 존 보이트가 나오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챔프>(프랑코 제페렐리, 1979)를 보았다. 수원의 어느 극장에서는 <보디가드>(믹 잭슨, 1992)란 영화는 좌석이 없어서 2시간 넘게 서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 비가 많이 와서 휴교한 날에는 동시상영관에서 <엘비라 마디간>(보 비더버그, 1967)이라는 스웨덴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영화에서 금발의 아름다운 여주인공이 밧줄을 타는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동시상영관은 좌석 번호도 없었고, 하루 종일 극장 안에서 영화를 볼 수도 있었다. 미성년자 관람불가인 영화도 ‘영화광’이라면 당연히 방도를 찾아 들어가 보던 시절이었다.
이런 동네 극장들은 어느 새 멀티플렉스로 바뀌었다. 영화는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디지털 매체로 상영이 되기 때문에 선명한 화질과 귀가 먹먹할 정도의 사운드로 바뀌었다. 몇몇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극장이다 보니 극장 안팎이 똑같고, 상영되는 영화도 똑같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되면 엄청난 수의 스크린에서 그 영화를 상영한다. 게다가 이 영화들은 곧 인터넷 상에서 볼 수 있게 되어 굳이 극장을 갈 필요도 없어졌다. 집에서 혹은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아니 어느 곳에서나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시대, 동시상영관에서 보던 영화들도 이제 인터넷 영화감상 사이트의 고전영화 분류 목록에서 찾아 스마트폰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 세대에게 고전영화는 어느 때를 기준으로 할까? 십년 전 즈음 대학에서 교양 수업으로 ‘영화’를 가르치던 지인과 ‘고전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 물었다. “학생들은 ‘고전영화’하면 어떤 영화를 말하던가요?”, 지인이 대답하길 “<터미네이터>라고 대답하던데요.” 내게 고전영화는 적어도 1950년 이전 영화를 의미하던 때라 1984년 영화를 고전이라 답하는 학생들의 생각이 신선했다. 근래 들어 이런 대화를 지인들과 다시 나눌 기회가 있어 “학생들은 ‘원로영화인’하면 어떤 사람을 이야기하던가요?” 물으니, ‘박찬욱’, ‘봉준호’라는 답이 돌아왔다. 두 감독 모두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하였으니, 20대 학생들에게는 과연 원로일 수 있다.
기원전 3~400년 철학자들의 사상이나 17~18세기의 클래식음악을 ‘고전’이라고 칭하는 타 분야에 비해 복제기술의 발달로 19세기말 탄생된 ‘영화’는 순식간에 늙을 수밖에 없다. 한 세기도 안 된 작품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한 세기를 조금 넘기면 벌써 ‘죽음’의 단계로 사장이 거론되고 있으니 말이다.
‘미디어 2.0'에서 출판된 <영화사전>(2005)을 보면 고전영화는 ‘영화언어의 기틀을 다진 정전(canon)이 되는 영화들의 총칭’, ‘영화의 진화를 이룬 교과서적인 영화들’이라고 정의된다. 시기적인 함의보다 ‘영화’라는 예술매체의 속성을 고려하여 정의하니, 과연 <터미네이터>(제임스 카메론, 1984)도 고전영화가 될 수 있고, 박찬욱, 봉준호의 영화도 고전영화가 될 수 있겠다. 그러니 ‘고전영화’는 잘 만들어진 옛날 영화, 적어도 1990년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들 정도로 기준을 잡을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오드리 헵번의 <전쟁과 평화>든,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터미네이터>든 아날로그 영화 감상의 즐거움을 경험하려면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이나 초고화질 스크린 등 첨단기기와 시스템이 아닌 옛 극장 영화상영 방식으로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요즘 그런 곳이 어디 있느냐 의아할 수 있지만 방법이 없지 않다. 한국영상자료원(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400 문화콘텐츠센터) 지하 1층에서는 35밀리 영사기 2대로 체인지오버(change-over)2)되면서 큰 스크린에 영사되는 방식으로 영화가 상영되고, 간혹 상영되는 영화 프린트의 상태가 좋지 않아 비가 내리거나 상영 도중 끊어지는 상황도 운 좋으면(?) 경험한다.

한국영상자료원은 한국영화자료들을 수집하고 보존, 복원하는 곳이지만 ‘시네마테크KOFA’라는 극장 2개관과 영화자료들이 전시된 한국영화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시네마테크KOFA에서는 1일 3회(2시, 4시 반, 7시) 이상 영화를 상영하는데, 1930~2000년대 한국영화뿐만 아니라 외국 고전, 예술영화, 실험영화, 독립영화, 거의 모든 시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다. 요즘은 디지털 시네마 패키지(DCP)라는 디지털 매체로 상영이 많이 되나 여전히 35밀리 프린터로 영사되고, 실험영화의 경우 16밀리 상영도 하고 있다. 관객들의 편의를 위해 좌석번호가 적힌 티켓을 발권하지만 입장료는 없다. 1관은 321석으로 스크린 사이즈(1,291 x 565cm)도 꽤 큰 편이다. 2관의 경우 150석의 아담한 크기이다. 영화 한 편 당 단 2회만 상영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www.koreafilm.or.kr)에서 확인하고 가는 게 좋다.

서울 상암동까지 ‘극장 구경’에 나설 시간이 없다면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 온라인 상영(https://www.kmdb.or.kr/vod/main)을 통해 한국고전영화들을 볼 수 있다. 2달에 한 번씩 기획전도 운영되고 있어 9~10월은 ‘길 위에서 답을 찾다: 로드 무비’로 이만희 감독과 문숙 주연의 <삼포가는 길>(1975), 임권택 감독과 안성기 주연의 <만다라>(1981),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1984) 등이 상영된다. 이 역시 무료. 유튜브에서 ‘한국고전영화극장’을 치면 영어자막이 있는 한국고전영화도 볼 수 있다. 유현목, 김기영, 신상옥, 이만희 등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감독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1936년 문예봉 주연의 <미몽>, 최은희 주연의 <마음의 고향>(1949), 애니메이션 <홍길동> (1967) 등 다양한 한국고전영화를 즐길 수 있다. 또한 10월 17일부터 시네마테크KOFA에서 ‘관객을 모으는 주술 만원사례: 명보극장 이야기’라는 주제로 <포세이돈 어드벤처>(로널드 님, 1972), <빠삐용>(프랭클린 J. 샤프너, 1973), <보디 히트>(로렌스 캐스단, 1981), <아웃 오브 아프리카>(시드니 폴락, 1985)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전영화’들이 상영되니 이번 가을 멋들어지게 차려 입고 ‘극장 구경’을 가보면 어떨까?

1) <전쟁과 평화>는 1956년 영화이나 1977년 추석특선으로 서울에서는 아세아, 스카라에서 재개봉되었다. 인천의 송림로터리에 위치한 현대극장(1998년 폐업)은 2편의 영화를 동시 상영하던 동시상영관이었다. 그래서 개봉시기와 상관없이 영화들이 상영되었다.
2) 35밀리 영사기 두 대로 영화를 영사하는 방식으로 각각의 영사기에 2,000ft분량의 필름 릴이 걸려있다. 1번 릴이 끝나면 다른 한 대에 걸려 있는 2번 릴이 시작되는 방식이다. 영사기사가 릴이 끝나는 시점을 알기 위해 필름 우편에 동그란 큐 마크가 표시되어 있어, 옛날 필름을 보면 20분 정도 지나서 오른쪽 위에 동그란 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글 오성지(한국영상자료원 연구전시팀) | 사진 출처 무비스트(www.mov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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