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읽다
글 장상현 작가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배려(配慮)’에서 시작된다
배려(配慮)의 힘은 인간의 가치 있는 삶에 우선한다.
배려의 힘은 어둡고 차가운 마음과 힘들고 원망하는 마음을 따뜻하고 훈훈하게 녹이는 힘을 갖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화합과 단결이 이루어지면 조직의 힘을 배가(倍加)시킨다.
인간이 지닌 타고난 맑고 고운 마음을 우리는 양심(良心)이라고 부른다.
양심은 자신이 당당하고 떳떳하면 하늘조차 두렵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허물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비록 어린아이에게라도 주저하게 된다. 이른바 양심의 가책을 받기 때문이다. 곧, 자신의 수양(修養)정도에 따라 양심은 그 동력(動力)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더구나 인간은 공동체 사회에서 남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한다. 그 삶에 가장 우선시되는 덕목(德目)은 ‘배려(配慮)’이다.
곧, 인간의 가치 있는 삶이란 자신에게는 양심을 속이지 않고 남에게는 배려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배려(配慮)는 욕심(慾心) 때문에 실천하기 어렵다.
배려와 비슷한 용어로 양보(讓步)와 희생(犧牲)이 있다. 양보(讓步)는 남에게 길을 비켜주어 먼저 가게 하는 행위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여 자기의 주장이나 생각을 굽히고 그 의견을 좇음을 말하며, 희생(犧牲)은 자기의 손해를 무릅쓰고 남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 생애에 학문(學問)이라는 것은 익히면 될 수 있으나, 배려는 참된 자기 수양에서 얻어지는 값진 자산으로 모든 행위를 감사함의 긍정적 사고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허물어뜨리는 요소는 욕심(慾心)이고, 이를 방해하는 요소는 화려함으로 오감의 감정을 자극하는 유혹(誘惑)이다. 욕심과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통해 조건 없이 실천하는, 용기(勇氣) 있는 배려이다.
곧, 손이 커도 베풀 줄 모른다면 미덕(美德)의 수치(羞恥)가 되고, 발이 넓어도 머물 곳이 없다면 부덕(不德)의 소치(所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겸손(謙遜)을 모르면 무식(無識)만 못하고 높음이 낮춤을 모르면 존경받기 어렵다.
이는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욕심을 이겨내지 못해 외롭고 무거운 삶을 힘들게 사는 것이다.
시장통을 거쳐 가는 117번 버스엔 늘 승객들이 만원이다. 보따리마다 주고받은 정(情)을 받아 온다고들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를 매달고 있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 안에서 갑자기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방 그치겠지 했던 아이의 울음소리는 세 정거장을 거쳐 올 때까지도 그칠 기미가 없어 보였다. 슬슬 화가 난 승객들은 여기저기서 “아줌마 아기 좀 잘 달래 봐요.” “버스 전세 냈나?” “이봐요 아줌마 내려서 택시 타고 가요.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아, 짜증나...정말”
아기를 업은 아줌마에 대한 원성으로 화난 표정들이 버스 안을 가득 메우고 있을 그때 버스가 멈추어 섰다.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버스 기사만 바라보는데 그는 문을 열고 나가 무언가를 사 들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아이 엄마에게로 다가간 버스 기사는 긴 막대사탕의 비닐을 벗겨 아기 입에 물려주니 그제야 아이는 울음을 그쳤다.
다시 버스는 출발했고 버스 안의 승객들은 그제야 웃음이 번져 나왔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는 아이 엄마는 버스 기사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손등에 다른 한 손’을 세워 보였다. “고맙습니다.”라는 수화로 고마움을 표현한 아이 엄마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인이었다. 아이 엄마가 내린 뒤 버스 기사는 아주머니와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사랑의 불빛을 멀리까지 비추어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누구 한사람 “빨리 갑시다.”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버스 기사의 이러한 잠깐의 배려(配慮)는 모든 승객들의 차가운 가슴에 훈풍(薰風)을 불어넣어 주었고, 마음속에 따뜻하고 묵직한 큰 울림이 깊이 새겨졌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상황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행동이 달라진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서로 간에 불협화음이 일어나곤 하는 것은 자기의 고정관념에서 나오는 선입견(先入見)이나 편견(偏見) 때문이라고 한다. 상대방을 배려함 없이 모든 것을 자기 입장에서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되어 분쟁이 생기는 것이다. 선입견은 자아의 성찰(省察) 없는 자만(自慢)이나 오만(傲慢)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되어 모든 오해와 분쟁의 불씨가 된다.
가장 훌륭한 정치는 불쌍한 백성들에게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정책이다.
동양의 위대한 철학자 맹자(孟子)는 양혜왕(梁惠王)에게 왕도정치(王道政治)를 권고하면서 문왕(文王/주(周)나라 창시자)이 우선한 환과고독(鰥寡孤獨)의 정책을 설명한다.
“늙어서 아내 없는 이를 ‘홀아비(鰥)’라 하고, 늙어서 남편 없는 이를 ‘과부(寡)’라 하고, 늙어서 자식 없는 이를 ‘독거인(獨)’이라 하고, 어려서 부모 없는 사람을 ‘고아(孤)’라 합니다. 이 네 부류는 천하에 궁벽한 백성으로서 호소할 데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문왕은 정사(政事)를 펴고 인(仁)을 베푸시되 반드시 이 네 부류의 사람들에게 먼저 하셨습니다.” 여기서 ‘먼저 하셨다’는 의미는 우선적으로 배려한 것이다.
그리고 ‘유학(儒學)’을 국가 통치 이념으로 나라를 세웠던 조선의 경우는 건국 초부터 재난이 닥쳤을 때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맨 먼저 보살피도록 명문화했다. 왕도를 표방했던 태조의 즉위교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홀아비, 과부, 고아, 의지할 곳 없는 자(鰥寡孤獨)는 왕도정치를 베풀 때 가장 먼저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니, 마땅히 불쌍히 여겨 돌보아야 할 것이다. 해당 지역의 관청에서는 굶주리고 궁핍한 사람을 구휼(救恤)하고 부역(賦役)을 면제해 주도록 하라.”
태종실록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백성들을 제생원(濟生院)에 모아들여 돌보게 했다. 의정부에 하교하기를, ‘환과고독(鰥寡孤獨)과 독질자(篤疾者/불치병자), 폐질자(廢疾者/장애자), 실업(失業)한 백성들이 어찌 추위에 얼고 주려서 비명에 죽는 자가 없겠느냐? 내가 매우 불쌍히 여기니 여러 관청의 관리들로 하여금 빠짐없이 거두어 보살피게 하라’고 했다.”
현시대를 우리는 무한경쟁의 시대라고 한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남을 이겨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한 삶을 방증(傍證)한다. 예전이라고 왜 그런 삶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나만 생각하고 남을 돌아보지 않는 삶에 너무도 익숙해 있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사라져 따뜻함이 소멸되어 가기 때문이다.
가정, 직장, 사회, 국가 등 조직의 동력(動力)은 창의력이나 협력보다는 배려(配慮)이다. 특히 능력이 좀 부족하고, 약삭빠르지 못한 직원, 더 나아가 장애인들을 우선하는 배려가 생활화된 조직은 화합은 물론 무한한 성장도 저절로 이루어질 것으로 확신한다.
그 답은 이타이기(利他利己/남을 이롭게 해주면 나도 이로움이 있다)라는 변함없는 만고(萬古)의 진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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