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사람] 오염된 증거로 인한 오판의 가능성 그 문제의식을 제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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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사람] 오염된 증거로 인한 오판의 가능성 그 문제의식을 제기하다 - 신민영 변호사, 신옥영 판사

2021.10.06

신민영변호사,신옥영판사

오염된 증거로 인한 오판의 가능성 그 문제의식을 제기하다

법무법인 예현 신민영 변호사
대전지방법원 신옥영 판사

〈오염된 재판〉의 저자이자 형사사법절차 개선에 관한 세계적인 전문가인 브랜던 L. 개릿(Brandon L. Garrett)은 이 책의 교훈으로 수사 초기 단계에서 핵심 증거가 오염되어 버리면 이로 인한 위험은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이는 형사사법절차 개선에 큰 관심을 쏟아온 신민영 변호사가 이 책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염된 재판〉에서 다룬 오판 사례와 분석을 토대로 국내 형사사법절차와 과학수사 시스템의 개선점을 짚고 싶었다는 신민영 변호사의 바람을 대전지방법원 민사항소부 신옥영 판사와의 대담을 통해 담아보았다.

글. 민경미 사진. 홍승진

과학수사 시스템의 허점을 알리다

신옥영 변호사님께서 번역하신 〈오염된 재판〉을 읽고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번역하시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신민영 〈오염된 재판〉은 미국의 형사사법절차 개선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인 브랜던 L. 개릿의 저서로, 과학수사의 오류로 잘못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DNA 검사에 의해 결백을 입증받은 최초의 오판 피해자 250명의 사례를 조사, 분석한 책입니다. ‘가짜 과학수사’가 만들어낸 오판 피해자들의 실사례를 통해 과학수사 시스템이 어떠한 치명적인 허점들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악용되고 있는지를 지적하고 있죠. 이 책은 당시 변호를 맡고 있던 사건을 계기로 알게 되었습니다. 지적장애인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의뢰인의 변호 건으로, 피고인이 부인함에도 진술분석*관이 제출한 진술서의 증거능력이 인정돼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이었는데요. DNA 검사 결과가 피고인과 일치하지 않아 최종적으로 무죄 결론이 났지만, 진술분석의 문제점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미국 과학수사의 허점을 지적한 이 책의 내용을 국내 법조계 종사자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직접 판권 계약 후 번역해 출판했습니다.

*2007년에 처음 도입한 ‘진술분석’은 범죄심리학 또는 임상심리학, 사회복지학 등 관련 분야 석사 이상의 자격을 가진 전문가들이 성폭력 피해 아동이나 장애인,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등으로 피해 사실을 정확히 진술하기 어려운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면담을 진행하여 진술의 신빙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제도다.

법과학자의 주관 개입을 배제하다

신옥영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 ‘과학적 증거’라고 하면, 진술증거보다 비교적 객관적이며 허위일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주관적인 의견이 배제된 확실한 증거로 오인하기 쉬운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과학수사의 어떤 점을 지적하고 있는지, 또 미국에서는 과학수사의 허점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신민영 이 책에 나오는 오판 피해자들의 재판 과정에서는 대부분 법과학 증거가 사용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DNA 기술을 통해 결백을 입증받지만, 재판에서는 법과학 증거에 오류가 있었죠. 저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검찰 측이 신청한 153명의 과학 증거 분석관 중 61%에 해당하는 93명이 일련의 잘못된 분석을 했습니다. 실제로 법원에서 증거능력을 인정한 다양한 기법의 과학수사가 기초연구조차 거치지 않았거나, 허위 자백한 기록에 노출된 수사관이나 법과학자의 인지편향에 따라 잘못된 주관을 형성하고 그러한 주관이 상당히 개입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미국에서는 미국 의회 산하에 법과학 관련 위원회를 결성해 나름의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수사관이나 법과학자의 주관을 배제하기 위해 ‘일치한다’ 같은 단정적인 표현을 하지 않는 것, 가능한 기술적 증거를 토대로 수치화된 의견을 제시하는 것 등입니다.

신옥영판사 신민영변호사

자백에 대한 오염은 막을 수 있다

신옥영 과학수사의 잘못된 분석을 가져오는 ‘허위 자백’이 오판의 원인 중 하나로 책에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허위자백을 하는 심리와 허위자백으로 인한 미국의 오판 사례가 우리나라 법조계에 건네는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신민영 책에서 다룬 250명의 오판 피해자 중 16%에 해당하는 40명은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자백했습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 발표에 의하면 이들의 허위자백은 심문 과정에서의 압박으로 인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외부와 차단된 환경에 처하면서 당장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다소 역설적이지만 형사시스템에 대한 높은 신뢰도를 토대로 결국 자신의 결백이 밝혀질 것이므로 심리적으로 압박받는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허위자백을 하기도 하죠. 놀라운 점은 대부분 범행의 구체적인 정황을 자백했다는 사실인데요. 이는 심문 과정에서 경찰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부적절하게 노출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를 개선하고자 조사를 중단할 수 있는 권리나 변호사에게 연락할 수 있는 권리 등이 도입되었지만, 좀 더 정확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저자는 녹음, 녹화 등의 방법으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남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백이라는 사전정보를 갖고 평가를 하면 전문가라 할지라도 편향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 수사 방향과 쟁점이 바뀌기도 합니다. 자백 당시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조서에 남기지 않은 내용이 이후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경우에도 데이터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죠. 소송을 수행하다 보면 과학적 증거의 경우 전문가의 검증이 한 번 더 이루어지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할 때가 많은데, 이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녹음, 녹화의 도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판 피해를 막는 해외 재판의 기준

신옥영 〈오염된 재판〉은 허위자백 외에도 목격자의 착각, 결함 있는 과학수사, 거짓 제보자에 의한 재판 등 과학수사의 다양한 허점을 다루고 있는데요. 책에 담긴 사례처럼잘못된 과학증거로 인한 오판 피해를 막기 위해 미국에서는 어떤 기준을 제시하고 있나요?

신민영 우리나라에서 거짓말탐지기의 증거능력을 따졌던 유명한 판결이 있습니다. 당시 판결의 근거로 삼은 게 미국 연방대법원의 도버트(Daubert)판결*인데요. 이를 통해 과학적 증거의 수용성에 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도버트 원칙은 과학적 증거로서 적용된 이론과 기술을 검증할 수 있는지, 실제로 검증했는지를 첫 번째 기준으로 내세웁니다. 과학 간행물에 게재해 동료 등의 검토 대상이 되었는지, 그 방식에 대해 알려져 있거나 혹은 잠재적인 오류의 발생률은 얼마나 되는지도 중요하게 짚죠. 이외에도 실험 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표준이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전문가의 증언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표준이 사용되었는지, 또, 관련 분야에서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등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선천적 수족기형을 앓아온 도버트(Jason Daubert) 등이 임신 중 구토 방지제를 개발하여 시판한 제약회사를 상대로 1993년 미국 연방대법원에 제소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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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재판〉으로 변화와 발전이 이어지길”

신옥영 개인적으로 이번 책을 통해 ‘법관의 오판은 오판 피해자들만이 아니라 오판 사건의 범죄 피해자까지 포함해 그 오판에 관계된 자들과 그 가족의 삶, 이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망을 파괴할 수 있고,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한다’는 점을 무겁게 되새기는 한편 좀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번역하고 소개해 준 변호사님께 감사드립니다. 형사제도에서 오판 방지는 궁극적인 목적이자 영원한 과제인데요. 법원 구성원들을 포함해 법조계에 몸담은 이들에게 이 책이 어떤 의미로 다가가길 바라는지 궁금합니다.

신민영 ‘백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없게 해야 한다’는 형사소송의 기본원칙과 ‘애초에 형법은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처벌하지 않기 위해서 고안된 제도’라는 측면에서 오판 방지를 위해 과학적 증거가 제시되고 채택되는 시스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수많은 소송을 수행하면서 과학적 증거에 대한 경계와 의심을 멈추는 순간, 비과학이 잠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는데요. 끊임없이 경계하고 의심하는 노력과 더불어 과학수사 시스템, 그중에서도 진술분석관제도와 관련해 최소한 통계적인 뒷받침과 신빙성 있는 레퍼런스를 통한 진술분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입니다. 이 책이 이러한 문제점의 공유와 확장 그리고 개선하는 데 도화선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다만, 〈오염된 재판〉이 처음 미국에서 발행된 시점이 10년 전이고, 발행 후 후속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후의 변화에도 관심을 갖고 국내 법조계 발전에 참고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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