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류기인 창원지방법원 소년부 판사

걷기는 싫고 학교도 싫어.
‘걷기학교’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아이들 반응이다.
가까운 거리도 차를 타거나 개인이동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세대에게 걷는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학교가 좋다는 친구들은 많지 않다.
더욱이 소년보호재판까지 온 친구들에게는.
2022년 처음 소년보호재판을 맡은 첫 해에는 정신이 없었다. 경남에는 가정법원이 없고, 창원지방법원 소년부도 딱 한 곳이다. 접수되는 사건 규모는 소년부가 두 곳 있는 부산가정법원과 맞먹는다.
소년부 판사 2년 차를 맞아 고민을 하였다. 과연 법정에서 재판을 잘 한다고 아이들의 비행이 줄어들까, 보호처분을 받기만 하면 아이들이 바뀔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문득 2년 전 읽었던 책 생각이 났다. [토닥토닥 걷기학교]란 책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이병주 선생님께서 소위 말하는 학교 꼴통들과 주말을 이용한 걷기를 통한 회복을 기록한 책이다. 소년보호재판을 받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걷기학교’를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거기다가 그 무렵 관심을 두고 있던 ‘써클대화’를 접목해 보자는 생각을 더했다. 소년부 참여관과 조사관, 상담전문 국선보조인 선생님들과 [토닥토닥 걷기학교]와 ‘써클대화’ 관련 책을 읽었다.

무조건 한 번 시도해 보는 거야. 무식하면 용감하다. 일단 해보기로 했다. 경남에는 지리산 둘레길이 있다. 2023년 6월 1박2일 걷기학교 첫 발자국을 내딛었다. 1호 처분을 받고 청소년회복지원센터에서 생활하는 친구들 6명을 멘티로, 6명의 멘토와 1:1로 연결하였다. 멘티와 멘토, 두 사람이 2인 3각의 마음으로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다. 휴대폰 없이 두 사람만 걷는 길에서는 자연스레 서로의 마음이 열린다. 생각보다 멘티가 말을 잘 한다. 조잘조잘 속 얘기를 계속 한다. 멘토는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 없이 공감한다. 그래, 그랬구나. 자신을 지지하고 격려해 주고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좋은 어른이 곁에 있다는 경험의 시간이다, 비록 한정된 시간이지만. 그 짧은 시간이 좋은 추억으로 자리할 것이다. 세월이 흘러 멘티도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주는 좋은 어른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저녁시간에는 참여한 멘토, 멘티 모두 둥글게 앉는다. 잔소리 없는 시간, 충조평판 없는 시간, 써클대화의 시간이다. 낮 동안 멘토와 멘티 두 사람이 함께 걸으며 나누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한결 친밀한 얼굴들이 둘러 앉는다. 소년조사관의 진행으로 한 사람씩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한다. 한 사람이 말을 할 때에는 나머지 모든 사람은 귀를 기울인다. 때로는 가볍게 맞장구를 치는 긍정적인 반응을 하기도 한다. 다만, 잔소리는 금물이다.
1박2일 걷기학교에 참여했던 멘티와 멘토 모두 반응이 아주 긍정적이었다. 이 좋은 경험들을 보다 많은 친구들과 함께 하면 좋을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재정의 한계, 멘토 충원의 한계가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래 이렇게 해보는 거다. 아쉽지만 저녁시간의 써클대화를 생략하고, 반나절 걷기학교를 하는 것이다. 멘토 분들도 반나절 정도면 시간을 낼 수 있는 분들이 꽤 있을테니까. 창원지방법원 소년부 관내 1호 청소년회복지원센터는 6곳이다. 6곳에 있는 친구들이 최대 60명이니 1:1 멘토를 연결하려면 60분의 멘토가 필요하다.

창원지방법원 법관과 직원들, 경남지방변호사회 공익봉사단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셨다. 비록 짧은 반나절이지만 멘토와 멘티 1:1로 연결된 두 사람이 휴대폰 없이 걷는 시간을 가진다. 걷기 좋은 코스를 찾는다. 화포천 습지와 마산 봉암수원지 등이 반나절 걷기학교에는 딱이다. 1박2일 걷기학교와 마찬가지로 오롯이 멘티 곁에서 걷는 멘토는 잔소리 없이, 충조평판 없이 걸으며 들어준다. 맞장구를 쳐준다. 멘티의 얘기에 귀기울인다. 그런 시간이 멘티에게는 잔잔한 감동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2023년 처음 시도했던 ‘걷기학교’는 작년에도 성공적이었고, 2025년 3년째 이어졌다. 이제는 멘티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다. ‘걷기학교’는 사실 먹기학교라고. 걷기는 목적이 아니라고, 걷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고, 휴대폰 없이 멘티와 멘토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 시간을 통해 한 사람의 좋은 어른의 경험을 한다는 것은 행복이라고. 걷기 이후에는 잘 먹는다고, 한창 먹을 나이인 멘티들의 허전한 뱃속을 채우려면 무한리필 고깃집이 필수다. 멘티들은 정말 잘 먹는다. 마음의 허전함을 대신 채우려는 것이다. 잘 먹이는 것은 걷기학교의 기본이 되었다.
멘티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걷기학교 또 언제 해요?”
멘토 분들도 물어본다.
“판사님, 이번 걷기학교는 언제 하죠? 이번 코스는 어디인가요?”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하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일반 재판에서는.
소년보호재판은 약간 결이 다르다. 법정에서 심리를 하고 처분을 내리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법정 전과 후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소년보호재판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었는지 심층적으로 상담조사를 한다. 꿈키움센터와 보호관찰소, 분류심사원, 국선보조인 개인면담 등이 송치기록과 더해진다. 비행의 원인분석은 많은 자료들을 종합해서 들여다보게 된다. 멘티들이 재비행의 고리를 끊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돕는 보호처분이 되어야 한다. 법정에서 선고된 보호처분이 제대로 집행되는지도 지속적으로 집행감독으로 관여한다.
‘걷기학교’는 소년재판 이후 보호처분을 이행하는 멘티들에 대한 제한된 기회의 자리이다. 여전히 ‘걷기학교’를 경험할 수 있는 친구들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보다 많은 친구들이 ‘걷기학교’를 통해 좋은 어른의 경험,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곁을 내어주는 어른의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3년째 이어지는 ‘걷기학교’는 어느새 창원지방법원의 주요한 행사로 자리매김하였다. 매년 이루어지는 ‘걷기학교’에는 법관과 재판연구원, 직원들의 관심과 참여가 이어지고 있고, 올해에는 법원장님께서도 상반기, 하반기 모두 멘티와 함께 걷기에 동참하였다. ‘걷기학교’ 하면, 창원지방법원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