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필객 1] 아버지와 그리고 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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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3

낭만필객Ⅰ

아버지와 그리고 도장

오늘이 2022년 12월 1일 임인(壬寅)년 올해도 달력이 한 장 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이 빠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끼게 된다. 뜬금없이 ‘아버지와 도장’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말씀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지금 제가 사용하고 있는 도장에 관한 이야기다.
도장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알아야 할 예규가 있다.
‘조서 작성 시 유의 사항 및 색지와 인장의 규격 등에 관한 예규(재일 2003-10)’ 중 제7조 3항 ‘사인의 규격은 직경 13㎜ 이상, 17㎜ 이하의 원형으로 하고 한글 또는 한문으로 쉽게 자체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해서체(楷書體)로 성과 이름을 조각한다.’이다.
이 예규가 있는지 모르는 분들도 상당히 많을 것 같다. 저 역시도 승진후보자 교육에서 알았으니까요.

글 구경후 참여관(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아버지가 만들어준 노란색 첫 도장

본격적으로 도장 이야기를 하자면 199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구에서 중학교 다니던 시절, 정부에서 저축률을 높이는 일환으로
1인 1통장을 학교에서 만들라고 하여 ‘통장을 만들기 위해 도장이 필요하다’고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고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하셨다. 그 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2주일 뒤쯤 아버지께서 퇴근하시는 길에 불쑥 도장을 가져다주셨다.
‘도장주머니에 들어 있는 노란색의 도장’은 어린 마음에 고급스러운 것이 뭐랄까 기분은 상당히 좋았다. 첫사랑도 그렇고 무엇이든지 ‘처음’이라는 것은 사람의 기분 좋게 만드는 것 같다. 그때는 그 도장이 무슨 글씨체인지, 무슨 재질인지 잘 몰랐지만 (이제는 글씨체는 해서체, 재질은 은행나무라는 것을 알지만) 그때 그 당시에 그냥 은행 통장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그 이후로 도장을 도장집과 함께 애지중지 하면서 지금까지도 잘 보관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오래되어 도장집은 빈티지 느낌이 나지만.

상주지원 첫 발령 후 도장의 비밀 밝혀져

그 후 제가 법대에 진학하게 되었고 10년의 세월이 흘려 2000년 공채 시험에서 27기로 당당하게 합격하여 2001년에 상주지원으로 첫 발령을 받게 되었다. 처음 발령 받았을 때에는 당직 지정부(물론 지금은 인사관리시스템에서 전자로 확인하지만) 확인 외에는 주임(지금은 실무관)으로서 도장을 찍을 일이 거의 없었다. 첫 발령을 받고부터는 재판부에서 담당 계장님의 도장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어디서 많이 본 크기의 도장이 아닌가? 이건 분명히 아버지가 예전에 저에게 주신 도장과 규격이 거의 비슷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조서 도장을 가져다주신 것이었다. 당신께서도 2000년에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원에서 정년퇴직을 하셨고, 근무하시면서 제가
법원 공무원이 되길 바라시면서 내색 안 하시고 도장을 주신 것 같아 그때야 아버지의 깊고 큰 뜻을 알 수 있었다. 비록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로 지금까지도 겉으로는 표현 안 하시지만….

처음 만든 도장, 25년 만에 조서용으로 사용

그 후 시간이 흘러 법원주사보로 승진하여 조서용 도장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2015년 아버지께 도장을 받은 지 25년 만에 상주지원 합의부 재판 참여관을 하면서 처음으로 통장용이 아닌 조서용으로 사용할 기회가 생겼고 아울러 법복도 그때 처음 입어 보았다. 저는 입사한 지 15년 만에 처음 참여관용 법복을 입고 재판에 참여하였고 처음 법복을 입을 때 기분을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또 시간이 흘려 2022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다시 한 번 느껴본다.저도 결혼해서 아들, 딸을 키우고 있는데 아들, 딸한테 도장이나 하나씩 파주어야겠다! 하하하!! 물론 저도 조서용 도장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요(지금은 디지털시대라 도장을 찍을 일도 별로 없고, 인감증명서도 도장이 아닌 본인서명사실확인서로 대체되기는 하지만요.).
비록 지금 아버지께서 연세가 높으셔서 거동도 다소 불편하시고 기력이 예전 같지는 않으신 것 같다. 저는 도장을 보면 중학교 시절의 그때 생각이 나고 부모님의 크신 사랑, 은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아버님의 건강을 기원해 보면서 이글을 줄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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