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순간들2] 내가 '슬의생'의 환자가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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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4

간이식수술기

내가 ‘슬의생’의 환자가 될 줄이야!?!?
간이식 수술기(2021. 8. 9.)

글. 사진. 정성희 사무국장(수원지방법원)

대장암 수술은 예방 주사 정도
나는 코로나-19가 4차 대유행을 하던 7월 19일에 서울대학교병원(본원)에서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혈액형이 다른 타인의 간을 70% 이식받는 현존 의술상고위험 고난도의 개복(開腹: 가로 20cm, 세로 12cm ┷ 모양으로 배를 절개)수술이었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나, 지금도 믿기질 않는다. 나는 사법연수원 총무과장 시절인 2009년 12월 19일에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대장 일부를 절단하는 수술이었지만 성탄절 다음날인 26일에 출근하여 근무하다가 다음 해 1월 초에 사법연수생 40기 수료식의 사회를 1시간 30분 동안 본 적이 있다.
그때의 수술 경험을 이번과 비교하면 주사 한 방 맞은 정도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나의 수술 경험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글로 옮겨 나누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과정을 겪어보지 않은 무지의 상태였기에 받아들였지,알게 된 지금 심정으로는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극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수술 일주일 전에 입원하여 혈장 교환 시술을 2차례 받았다. 면역체계의 이상 반응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처치이다. 오후 4시 수술대기실에 들어간 후, 깨어난 시각은 다음날 새벽 1시였다. 의식을 차렸을 때 맨 먼저 아내와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자리에는 처제도 있었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부터가 고통의 시작이었다. 수술하는 동안 인공산소호흡기를 목구멍 깊숙이 꽂아둔 상태였는데, 쪼그라진 폐를 자가 호흡으로 펴는 행위를 8시간 이상 계속해야만 살 수 있다. 그런데 숨을 쉬는 행위가 꽂아놓은 기도관으로 인해 제대로 되질 않아 숨이 끊어질 듯 꼴딱꼴딱 넘기는 작업을 반복해야만 했다.
이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환자가 임의로 기도관을 제거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두 손을 묶어 두었다. 실상은 인공호흡기가 숨이 멎는일은 막아주고 있지만, 환자가 느끼기에는 목구멍 속에 커다란 이물질이 들어 있는 상태로 수 시간을 참아야 하는 불편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로 인해 본래의 내 목소리는 이상하게 변해 버렸다. 원래대로 되찾는 데 한 달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제일 많이 떠오른 사람은 아내였다. 사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누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날까 궁금하였다. 예상하기로는 무남독녀인 외동딸이었지만 아니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목숨이 절박한 상황에서 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은인이 누구인가 떠올려보니 아내였던 것이었다. 오늘도 새벽기도 드리러 가는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 여보, 고마워!

중환자실 간호사는 노련한 베테랑?
결코 아니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극한직업에 해당하였다. 환자 한 명에 연결되어 있는 의료장비가 왜 그리 많으며, 그것들을 컨트롤하고 환자 상태를 밀착 간호하는 행위는 단순히 정신력이나 경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렇게 힘든 작업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경력이 풍부한 간호사가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전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간호사를 보고 있으면 환자를 돌보는 건지, 선배에게서 일을 배우는 실습생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 법원도 부서 내에서 제일 힘든 일은 주로 신참 직원이 담당한다. 그와 똑같은 사유라고 본다. 직업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중환자실의 분위기는 부산함 그 자체다. 옆 침대에서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내지르는 비명, 아파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용서를 비는 듯한 울부짖음(일종의 섬망 증상이라고 하는데, 무의식 상태에서 내뱉는 헛소리나 잠꼬대), 새벽녘에 저 너머에서 조용조용 들려오는, 의사가 환자에게 임종에 대비하라는 비장한 음성(미동조차 없었던 이 환자는 결국 그날 아침에 죽음을 맞고 중환자실을 떠나는 모습을 목격했다) 등. 이때 나는 결심했다. 살아서 나가면 지금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살겠노라고. 세상사에 더욱 관심을 가질 것이며, 사회 경제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병실 룸메이트였던 문화 류씨 대종회 회장님(호는 南剛, 춘추 81세이시며, 국회에서 40년 가까이 봉직하시다가 1급 관리관으로 퇴직하신 분)께서 나더러 퇴원하면 자연인처럼 살라고 당부하셨지만, 늘어난 수명을 식충이 마냥 무의미하게 허비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나를 집도하신 의사는 간담췌외과의 홍석균 교수였다. 이분은 서울대학교병원 간이식팀에서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간들간들’에서 혜성과도 같은 의사이다. 한창 젊으면서도 쾌활한 성격에 환자를 안심시키고 배려하는 심성이 으뜸인 정말 훌륭하면서 좋은 분이다. 고마움을 한아름 전한다. 더불어 매일매일 극한 환경에서 묵묵히 진료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전국 모든 병원의 중환자실 간호팀에게 경의를 보낸다. 중환자실 간호팀 힘내요!!

간이식수술기

한국기독교회 100년 사에 처음 있는 일
내가 받은 간은 수십 년간 다니고 있는 사당3동 소재 초대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주셨다. 한국기독교회 100년 사에 담임목사가 자신의 교회 성도에게 간을 이식해 준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한국기독공보 7월 26일 자에 기사가 실렸다(교인에게 자신의 간을 떼준 목사). 국민일보에서는 이 내용을 7월 30일 자에 보도하였다(국민일보 홈페이지에서 ‘성도에게 간 이식해준 목회자’ 검색). 그분의 영적 세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무례이므로 삼가기로 한다.
장기이식 절차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병원 내에 있는 장기이식센터를 방문하면, 이식 절차의 전반적인 과정을 개괄적으로 설명해 준 다음, 대략적인 수술비를 알려주며 공여자의 비용도 법규상 수혜자가 부담해야 함을 명확히 한다. 그리고 공여자와 수혜자뿐만 아니라 그들 배우자의 동의서를 받는다. 그리고 제출해야 하는 서류를 알려준다. 엄청 많다(가족관계증명서, 소득금액증명원 등). 특히 둘 사이에 장기(간)를 주고받을 만큼 오래전부터 매우 친밀한 사이라는 걸 증명할 만한 빛바랜 사진, 서신 등이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서는 타인 간의 장기 기증에 대해 혹시 모를 장기 매매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벌칙도 매우 엄하게 규정하고 있다(10년 이하의 징역, 1억 원 이하의 벌금). 자료 제출이 완료되면 병원 내 윤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는데 반드시 면접 과정을 치러야 한다. 위원회의 심사를 거치기 전에, 과연 둘 사이에 간이식이 가능한지 정밀검사를 통해서 확인한다. 산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검사가 진행된다. 동시에 수혜자가 수술 후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발병할지도 모르는 각종 병원균의 위험을 미리 억제하고자 필요한 치료를 병행한다(예컨대, 잠복 결핵균·치주염 치료, 대상포진 등 각종 예방주사 접종). 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면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승인을 요청한다. 승인까지 최소 6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여기서 승인이 나면 최대 3개월 이내에 수술을 마쳐야 하고, 이 기간을 넘기면 처음부터 새롭게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목사님께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셨다. 왜냐하면, 절차가 까다롭고 엄격한 이유는 수혜자를 위한 것이 아닌 공여자를 엄밀히 심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목사님께서는 기도 중 하나님의 응답에 순응하고자 제게 간을 주셨다고 하니, 하나님의 사역을 하시는 그분의 가늠할 수 없는 신앙 깊이에 나는 그저 아멘, 아멘 하고 외칠 뿐이다. 혈액형이 불일치하는 타인 사이에 간이식이 가능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7월 19일 오후 서울 하늘에 쌍무지개가 떴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 – ‘너처럼 사랑을 듬뿍 받은 자가 있느냐!’ 하나님, 강병철 목사님을 기억해 주소서!!!

나에게 수원법원은?
어느 날 홀연히 병가를 내고 사라져 버린 못난 국장을 꾸짖지 않고 애틋한 마음으로 보듬어 준 우리 수원지방법원 동료들에게는 무어라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나 자신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장기이식이라는 것은 중간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수많은 변수가 발생하는 일이므로, 수술이 끝나야만 비로소 남에게 알릴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래서 허부열 법원장님께도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사죄를 드려야 할 내 업보가 되었다. 나로 인해 많은 분이 고생하였다. 특히, 방웅석 총무과장께 거듭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대장암 수술을 받았던 사법연수원 시절에 신세를 두드러지게 진 두 분이 계시는데, 현재 한 분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당시 기획총괄교수)이 되셨고, 다른 한 분은 춘천법원 국장(당시 서무담당관)으로 계신다. 방 총무과장에게도 훗날 적절한 보상이 주어졌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8월 2일 퇴원하여 집에 돌아온 나는 앞으로 길고 긴 회복 과정을 거쳐야 하는 첫 단계에 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 하는 일은 혈당을 체크하는 것이다(혈당 체크는 저녁 식사 전에 한 번 더 한다). 다량의 면역억제제와 약물 복용으로 인하여 혈당 조절 능력을 상실하였다. 그래서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놓는다. 아침·점심·저녁 식사 후에 먹는 약은 얼마나 많은지. 오전 10시와 밤 10시에 정확한 시각을 맞춰서 면역억제제를 복용한다(의사가 신신당부한 사항이다). 가급적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야 하며, 가뜩이나 멸균 음식만을 섭취해야 하는 데다 혀로 맛을 느낄 수가 없으니 식사량이 늘어나질 않는다. 몸에 남아 있는 기력과 근육은 거의 고갈되어 걷는 것조차 버거운 형편이다. 매주 한 번씩 외래 진료를 보기 위해 병원을 방문하여야 하며, 갈 때마다 채혈하여 면역력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혈중 농도를 측정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 걸릴지 모르나 차츰 좋아진다고 하니 희망을 품고 재활에 집중하고 있다.
수술 전에 이 같은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근력 운동(특히, 한 발로 트)을 많이 했으며, 수술 후 중환자실로 의사 선생님이 회진 와서 나에게 ‘운동을 좋아하느냐’ 물어, ‘왜 그러시냐고’ 반문하니 ‘복근이 멋있었다’ 하였다. 평소에 수영, 철봉, 자전거로 단련했던 운동이 지나쳐서 오히려 몸에 독이 된 듯해 마음이 씁쓸했다. 내 머리에서는 하루빨리 직장으로 복귀하여 반가운 동료들과 함께 근무하는 날을 그리고 있다. 절박한 상황에 놓여도 의지하며 돌아갈 곳이 있는 현실은 축복 중에서도 커다란 축복이다. 나에게 그곳은 전국 제일 규모의 우리 수원지방법원이다. 수원지방법원 일등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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