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발견1] 6개월간의 시골살이

테마가 있는 글

2021.08.06

시골살이

6개월간의 시골살이

코로나19로 온 국민들이 힘들어하던 2020년, 사무관 승진시험 합격 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나는 육아휴직을 끝내고 지난해 7월에 복직하는 아내를 대신해, 6개월간 육아휴직을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격주로 등교하는 초등학생 아이 둘만 집에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화상수업을 하는 날이면 같이 지내며, 그동안 수험생활에 지쳤던 나에게도 휴식의 시간을 주고자 생각했다. 하지만 휴직기간 동안 뜻밖에도 너무나 많은 일을 해내고야 말았으니, 이제 그 이야기를 풀어 보려고 한다.

글. 사진. 이재범 사무관(수원고등법원)

1. 부모님께 새 보금자리를 선물하다

지난해 여름에는 유난히도 장마가 길었다. 50일 넘게 쉬지 않고 비가 내리니 50년도 훨씬 전에 지어진 부모님의 집은 지붕에서 물이 새고 욕실부터 거실, 각 방의 천장과 벽면이 곰팡이로 가득했다. 내가 어릴 땐 으리으리하게 보인 큰 기와집이었으나 세월을 따라 점점 낡아가고 있었다.
부모님은 새 집을 짓고 싶어 하셨으나 경제적인 부담도 크고 업자 선정이며 법적인 문제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으니 엄두를 못 내고 계셨다.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된 우리 4남매는 가족회의를 거쳐 부모님의 소원대로 새 집을 지어 드리자고 결론을 내리고 아내와 상의했다. 아내는 “부모님 살아 계시는 동안에 하루라도 더 편하게 사시도록 해 드리자”라면서 흔쾌히 동의했다.
집을 짓기로 한 후 설계부터 업자 선정이나 법적인 문제까지 알아보기 위해 수시로 수원과 시골을 오가는 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먼저 귀농해서 부모님과 조금 떨어진 곳에 사는 여동생 내외의 도움을 받아 가며 업자 선정까지 마쳤다.
추석 차례를 지낸 다음 날 오래된 ‘ㄱ’자 기와집 앞에 온 가족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집을 철거하였다.
이 집을 지을 때 아버지께서는 젊은 날 앞산, 뒷산으로 다니며 손수 나무를 베어 지게에 짊어 날라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얹고, 흙으로 벽돌 찍어 쌓고 바르고 해서 지으셨다고 한다.
우리 4남매를 여기서 낳고 기르시며 지난 세월을 살아가는 동안에 함께 버티었던 집이 굴삭기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는 아버지의 구부정한 뒷모습이 수많은 감정을 담고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아버지의 힘들었던 지난날은 헌 집과 함께 날려 버리고 이제 새 집에서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기초공사를 시작한 다음에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 모양이 갖추어지더니 설날 전에 입주할 수 있었다. 그토록 원하던 아궁이 황토방에 불을 지피며 흡족해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나는 복직을 했다.

2. 아이들의 신나는 시골학교 생활

코로나19 때문에 격주로 등교하는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시골에 집을 짓는 동안 수원과 문경을 오가며 관리 감독할 일도 많아지다 보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시골 학교로 전학시키면 매일 등교하니 학습에 공백이 없어서 좋고,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사이 부모님 집 짓는 데 자주 들여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으니 2년 전에 2개월간 교환학생으로 시골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었던 터라 아빠와 같이 가면 좋다고 했다. 결국 아내는 직장 때문에 집에 남고 아이 둘과 나만 짐을 싸서 시골로 향했다. 안 그래도 학생 수가 줄어들어 한 반에 10명이 채 되지 않는 시골학교에서는 쌍수를 들어 환영해 주었다. 아이들은 매일매일 등교해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친구들과도 골고루 친해졌고, 모든 선생님이 전교생을 다 돌봐 주시니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도 최상이었다. 학기 중에도 도시학교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체험활동을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었으며, 다양한 방과 후 활동으로 여러 가지를 경험했다. 학기 말에는 ‘학예발표회’를 위해 몇 날 며칠 춤이고 노래며 연극 연습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니 전학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동생 집에서 더부살이하는데도 사촌(여동생의 세 아이들)과도 싸우지 않고 잘 지내는 걸 보니, 지켜보기만 하는데도 스스로 잘 크는 아이들이 고맙기도 했다. 처음에 아이들을 시골로 데리고 올 때는 2개월만 지내기로 한 조건을 걸었는데 2개월이 6개월이 되고, 이제는 1년을 넘었다. 중학생 딸은 화성으로 올라오겠다고 하지만 10살인 아들 녀석은 초등학교를 시골에서 졸업할 기세이다.

시골살이

3. 똥 손이 금 손이 되다

시골집을 철거하고 새 집을 짓는 동안에 지낼 곳이 마땅치 않은 나와 아이들은 여동생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여동생 내외는 7년 전, 고향인 문경으로 귀농해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상호를 내걸고 벌목 사업과 장작 공장을 운영하면서 자리 잡고 살고 있다. 겨울이면 장작 수요가 많아 바쁜데, 코로나19로 캠핑 인구가 급증하면서 유난히 캠핑용 장작 주문까지 많아져서 일손이 부족하다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여동생이 “오빠가 오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주문이 밀려온다”면서 “눈코 뜰 새가 없다”고 하니 그냥 두고 볼 수만 없는 일. 평소에 기계치로 불릴 만큼 기계는 아예 만질 생각도 않고 살아왔는데 바쁘게 일하는 동생을 돕다 보니 어느새 기계 앞에서 능숙하게 장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반복적으로 장작을 쪼개다 보면 복잡한 생각이 사라지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급기야 재고 파악과 영업까지 능숙하게 하니 동생은 ‘장작 부장님’이라 불러야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역시 똑똑한 사람이 일도 잘한다고 칭찬하며 치켜세우니 그 마력에 빠져 나도 모르게 열심히 하고 있었다.
가끔 장거리로 배달하는 동생을 혼자 보내기 안쓰러워서 함께 갈 때면 동생이 트럭 운전을 연습해서 운전 좀 도와 달라는 말을 하곤 했다. 수동 기어라 처음에 빈 차를 운전하는 것도 겁이 났지만, 어느새 짐을 싣고도 먼 거리를 거뜬히 다녀오고, 심지어는 매제가 일하는 벌목 현장의 비탈진 산길을 곡예하듯 운전하는 나 자신을 볼 때 스스로 놀랍기도 하고 자신감도 늘었다. 뭐든지 노력하면 못할 게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가 이렇게 나날이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며 아내 역시 놀라고, 누나는 동생네 부부에게 ‘똥 손을 금 손으로 만드는 훌륭한 인재 개발원’이라는 별칭을 붙여 주었다.

시골살이

4. 사과 과수원을 조성하다

부모님께서 사시는 집 앞에는 벼농사를 짓던, 그야말로 ‘문전옥답’이 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해가 갈수록 연로하고 지난해에는 논물을 보러 가시다가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지셨다. 입원까지 하게 되자 더는 벼농사를 못 짓겠다고 선언하셨다.
마침 귀농해서 사과 농사를 시작한 누나가 논에 사과나무를 심자고 했다. 지금 심으면 누나가 키워서 수확하다가 내가 퇴직하고 오면 줄 테니 논을 과수원으로 바꾸자는 말이었다. 누나는 사과를 키워 수익을 보고, 나는 퇴직 후에도 할 일이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에 내가 휴직으로 시간 있을 때 하자고 결정했다.
논을 밭으로 만들려고 하니 품종 선정부터 시작해서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먼저 과수원을 조성해 본 부모님과 형제들의 도움으로 일이 척척 진행되었다. 추운 겨울날 굴삭기로 땅을 파 유공관을 묻고 트럭으로 거름을 뿌리고, 봄이 왔을 때 사과나무를 심고 또 얼마 후 관수시설까지 해 놓고 나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줄지어 선 사과나무에서 이제 제법 파란 잎이 돋는 걸 보면서 머지않아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시골살이

5. 누나의 사과 수확을 돕다

그동안 아버지께서 가꾸어 오신 과수원을 누나가 물려받아 지난 2020년 처음으로 사과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봄에 꽃이 필 무렵 기온이 내려가 냉해를 입고 여름에는 50일이 넘는 장마를 견딘 후 가을에 빨갛게 익은 사과를 수확할 때가 되었는데 일손이 부족하다고 했다. 난 지인들을 동원하여 사과 따는 일을 도왔다.
개인 소비자에게 소매로 판매하려면 일일이 크기별로 선별해서 저온 저장고에 보관했다가 다시 개별 포장해야 한다. 그렇게 택배로 보내는 일을 옆에서 보고 도우면서 농산물 하나가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과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동생들이 도와준 덕분에 잘 해낼 수 있다고, 너무나 고맙다고 하는 누나에게 내가 쓰임이 있는 존재가 된 것 같아 오히려 고맙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니 6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을 해냈다. 그동안의 직장생활도 쉽지는 않았지만 정해진 틀 속에서 단조롭게 살아왔는데 동생네 집에서 살다 보니 시골살이가 절대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되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 속에서 돌발 상황은 늘 생기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나는 그만큼 성장해 있었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 또한 힘을 합치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나의 그릇이 조금씩 커졌다는 걸 알기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값진 6개월의 시간이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지난 6개월의 시골 생활을 바탕으로 지금도 금요일이면 시골로 내려가 쌓여 있는 일을 한다. 나의 시골살이(5도 2촌)는 현재진행형이다.

"테마가 있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