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발견2] 영월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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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7

영월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

글. 사진. 그림. 김윤경 참여관(영월지원)

“마흔이 되면 강원도에 가서 살자.”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서울에서 마음의 여유를 점점 잃어가던 우리 부부는 조금은 농담처럼 그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춘천, 원주, 강릉, 속초, 영월… 주말이 되면 여행 삼아 강원도 법원 순회를 하며, 여행지에서 들른 카페에선 어디서 살면 좋을지 어떻게 살면 좋을지 계획을 세우면서. 그러던 2018년 가을의 어느 날 남편이 자신은 준비가 되었으니 강원도로 가자고 했을 때, 새로운 생활과 환경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두근거림이 앞섰다. 그렇게 오게 된 강원도, 우리 부부의 첫 번째 도시는 영월이었다.
처음으로 영월에 왔을 때를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초여름, 영월로 들어서는 국도의 끝에 싱그러운 나무들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장릉에 가려다가 착각해서 올랐던 작은 산에서 본 이름 모를 들꽃들도, 별 보는 걸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갔던 천문대에서 내려다 본 영월의 풍경도, 반짝거리던 동강의 물빛도 너무 아름다워서 꼭 한 번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 이후 1년 남짓한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살면서, 처음 왔을 때 이상으로 훨씬 좋아하게 된 영월의 아름다움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보려 한다.

영월 여행은 가급적 이른 시간에 시작하는 게 좋다. 강원도의 남쪽에 위치하여 경상북도 및 충청북도와 맞닿은 영월은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 날씨가 좋은 주말에는 강원도 방면 고속도로가 막히는 경우가 많아 너무 여유롭게 출발하면 즐거운 시간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영월에서의 첫 여정은 청령포에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단종의 유배지로 알려진 청령포는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장소지만 소나무 숲이 매우 아름다운 산책로이기도 해서 영월과의 첫 만남에 어울리는 곳이다. 특히 청령포에 가려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아주 짧은 시간이므로 무서운 건 없지만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 여행의 기대감을 높여 준다.
청령포에 도착하면 바로 선착장으로 향하기 전에 잠시 매표소의 오른쪽 다리 부근에서 청령포를 내려다 보자. 이곳에서 보면 청령포를 둘러싸듯이 흐르는 서강과 청령포를 한눈에 담을 수 있어서다. 배를 타고 들어가면 우선 울창한 소나무 숲에 놀라게 된다.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을 가리는 거대한 나무가 장엄한 느낌을 주고, 앞을 바라보면 너무 빽빽하지도 너무 인공정원 같지도 않은 숲길이 펼쳐진다. 웃고 떠들며 즐기는 곳이라기보다는 조용히 길을 따라 걸으며 친구나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곳이다. 길의 중간중간에는 단종의 흔적들이 있어 역사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대체로 마음이 맞는 편이지만, 여행과 관련해서는 서로 매우 다르다. 남편은 여행 가기 전에 사전 준비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서, 가고 싶은 곳들을 정리해서 일정과 동선을 세밀하게 정하곤 한다. 덕분에 “어디 가고 싶어?”, “이거 보고 싶어?” 하며 끝도 없이 물어온 탓에 여행지에 가기도 전에 지쳐서 다툰 적도 여러 번이다.
반면 나는 그날의 기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모르고 갔는데 멋진 곳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그것도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사실 영월에는 곳곳에 단종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래서 역사를 알고 보면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재 안내판을 얕보지 말자.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나 건물에는 항상 상세한 설명이 있으니, 읽어보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다. 같은 드라마를 보며 느낌을 나누는 것처럼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역사를 생각하면서 볼 곳이 또 한 곳, 장릉이다. 청령포를 나와 차로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는 장릉은 단종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넓은 경내를 둘러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보는 것도 좋고, 단종역사관을 구경하거나 장릉에서 나와 왼쪽으로 돌아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조형물을 보면서 장릉과 관계된 도깨비 전설과 노루 전설을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
여기까지 둘러보면 이제 슬슬 뭔가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지는 시간일까? 사실, 영월에는 좋은 식당이 많다. ‘영월 맛집’을 검색하면 나오는 특산물 수준의 음식들도 좋지만, 대부분의 식당이 기대 이상의 맛을 보여준다. 특히 식탁에 오르는 다양한 반찬들은 진부한 표현일진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게 하는 그리운 맛이다. 아마 강원도의 신선한 재료가 그 비결의 하나가 아닐까.?식사를 마치면 너무 빨리 차에 오르진 말았으면 한다. 영월은 서울 같은 대도시가 아니어서, 어디라도 그렇게 사람들로 가득하진 않다. 그러니 여기선 조금 여유로운 시간을 즐겨보면 어떨까. 영월세무서 근처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영월 생활을 체험해 보자. 조금만 걸어가면 영월 서부시장이 있고, 거기에선 메일전병이 산처럼 쌓여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어디서나 같은 것을 팔고 있어서?우리 부부처럼 약간 우유부단한 사람이라면 선택 장애로 고민하게 될 정도랄까. 식사가 다소 부족했다면 어디든 마음에 드는 가게에 앉아 군것질을 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럼, 이젠 잠깐 자리를 옮겨볼까. 조금 오래된 영화지만, <라디오스타>라는 영화를 기억할까? 그 영화의 무대가 영월이라 촬영 장소에는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심지어 <라디오스타> 박물관까지 있을 정도! 박물관만 수십 개 있는 영월답다고 할까. 난 영화도, 박물관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아니, 아니에요. 여긴 꼭 가 봐야 해요. <라디오스타> 박물관은 깊은 숲속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숲을 끼고 있다. 차로 박물관 안까지 갈 수도 있지만, 추천하는 시작점은 해병대영월지구 전투전적비 앞 주차장. 장돌뱅이길 표지를 시작으로 산책로를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박물관이다. 가까이 갈수록 뭔가 소곤소곤 소리가 들려오는데, 정문을 들어서면 그게 라디오 소리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늑한 숲이 있고, 가벼운 바람이 불어오고 새들의 지저귐에 섞여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한때,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그 공간을 걸을 수 있다면 그건 정말 꿈 같은 시간 아닐까? 게다가 이 길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금강정은 아름다운 동강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뷰 포인트! 제발 그렇게 서두르지 말아요. 무엇을 해야겠다고, 어딜 봐야겠다고, 이걸 먹어야겠다고 숙제하듯 여행하지 말아요. 잠깐 평상에 앉아서 강이 흐르는 걸 지켜보는 한가로운 한때, 바쁜 우리 일상에 진짜 ‘쉼표’ 하나를 찍어보면 어떨까.
충분히 여유를 즐겼다면 이제는 조금 긴장감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영월에서의 즐길 거리는 그야말로 하늘과 물과 땅을 아우른다!
하늘! 하면 패러글라이딩. 별마로 천문대가 있는 봉래산 정상에서 시작해서 동강둔치로 내려오는 코스로 정말로 아찔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정말로 아찔해서 겁이 많은 나는 체험해 보지 못했지만, 날씨가 맑은 주말에 거실에서 동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조금씩 사이를 두고 계속 패러글라이더들이 내려와서 그걸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물! 하면 래프팅. 금강정에서 본 동강은 대체로 고요한 편이지만 조금 더 상류로 올라가면 물살을 즐길 만한 재미있는 구간들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격류인 것은 아니지만, 그 때문에 위험이 적어서 단체로 래프팅을 즐기기에 적합하다고. 물에 빠져가면서 같이 웃고 즐기다 보면 서먹했던 사이도 조금은 친해질 수 있을 테니까.
땅! 하면 트래킹. 봉래 초등학교 거운 분교장 근처에서 시작하는 어라연 트래킹 코스는 동강이 가진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숲과 강이 어우러진 모습, 그 안을 걸으며 우리도 그들과 하나가 되어보면 어떨까. 처음에는 너무 심하게 깔끔하게 정비된 길이라 어리둥절하게 되지만, 조금 들어가면 자연이 느껴진다. 코스에 따라 동강을 끼고 산길을 걸어 잣봉에서 아래를 바라봐도 좋고, 아예 동강으로 내려가 강변을 걸으면서 살짝 강에 발을 담그는 것도 좋다. 트래킹 코스의 입구에 있는 동강삼옥 안내소에 방문하면 매우 친절하게 안내해 주고 있으니 참고하도록!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일까. 혹시 점심 때 먹지 못한 영월의 맛이 있다면 저녁을 기대해 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 전에, 꼭 가 봐야 할 곳이 한 곳. 여기에 가기 전에는 반드시 해넘이 시간을 먼저 확인하고 가야 한다. 우리 영월 여행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해 줄 곳은 바로 선돌이다.

처음 선돌에 간다면, 차에서 내릴 때 정말 여기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경사가 심한 도로를 달리다가 갑자기 도로 중간에서 내비게이션의 길 안내가 끝나는 데다 듣던 만큼 좋은 경치라기보다는 그냥 공터가 있을 뿐이니까.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여기서 조금 걸어가야 하는 곳이다. 정면으로 보이는 산책로를 따라 아주 조금만 걸어가 보자. 거짓말이라고? 오늘 너무 많이 걸었다고? 정말로 5분이면 충분하니 날 믿으시길! 조금만 걸어가면 숲속에 있던 시야가 갑자기 밝아지고, “우와” 하는 소리를 내는 자신을 보고 부끄러워질지도 모른다. 왼쪽 앞으로는 가까이 높이 70m에 이르는 거대한 한 쌍의 바위가, 멀리 서강이 휘돌아 가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서강의 위로 석양이 지는 모습이 보인다.
햇빛은 참 오묘해서, 시간에 따라 다른 풍경을 만들어주는데 특히 해질녘에는 단 몇 분 사이에 완전히 변하는 세계를 느낄 수 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우선 하늘의 색이 바뀌고, 그 하늘이 서강에 내려 물빛을 바꾼다. 시시각각 내려오는 해는 조금만 눈을 돌려도 다음 순간에는 ‘벌써 저기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서 일단 그렇게 해의 움직임을 느끼고 나면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이 풍경에 무슨 이야기가 필요할까. 그저 사랑하는 가족, 연인과 함께 순간을 공유할 수 있다면, 영원히 남을 영월에서의 추억이 되지 않을까.

올해는 모두에게 정말 가혹한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분명 우리는 이 시련을 지혜롭게 극복할 것이다. 이 시간이 끝나고 나면, 우리의 일상을 다시 찾으면, 그때는 영월에 들러보면 어떨까. 그러면 아마도 영월로 들어오는 국도의 어딘가에 있는 환영의 인사말과 같이, 영월은 여러분들에게 ‘소중한 사람들과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아름다운 선물을 선사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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