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발견3] 예비 아빠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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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발견3] 예비 아빠 수기

2020.05.07

예비아빠수기

예비 아빠 수기

글. 우석제 실무관(충주지원)

“6주 정도 됐습니다, 축하합니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의 이 말 한마디는 내 삶을 바꾸어 놓았다.
내가 아빠가 될 사람이라니. 물론 계획했다. 지금쯤이면 온전히 임신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세를 위한 영양제도 꾸준히 먹으면서 나름의 준비를 했지만,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의 임신 선언을 듣는 순간 그동안의 준비 과정이 무색해졌다.
그동안 나와 내 아내는 임신하기 위한 준비만 했다. 그 과정을 통해 임신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성취를 이루었지만 임신 과정에 대해선 얕은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열심히 오르고 올라 높은 암벽 정상에 올랐으나, 내려갈 방법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먹고 싶은 것과 맛있는 것을 더 열심히 찾아 먹고, 집안일을 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산부인과에서 돌아와 주변 임신 육아 대선배님들께 여러 조언을 구했다. 구할수록 알게 되는 지식과는 반대로 기초적인 것도 모르는 나의 무책임함과 무지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낯부끄러웠다. 결국 평소 실무제요를 제외하곤 책도 잘 읽지 않는 나는 책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임신 초기의 증상과 아빠의 역할, 그리고 이 시기의 아기에 이르기까지 알아야 할 것 같은 모든 것을 읽고 또 읽었다.

우리가 처음 산부인과를 방문할 즈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되었다. 뉴스 및 매체에서는 온종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대한 이야기뿐이고, 우리 법원에서도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는 시점이었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의 첫 진찰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산모들의 걱정이 많다는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임신과 코로나를 연결하여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는 당황했고, 임신의 온전한 기쁨을 누리기에는 코로나19가 너무도 강력했다.
임신을 하면 산모는 아기를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인해 몸의 면역력이 약해진다고 한다. 약해진 면역력은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쉬운 환경을 제공하지만, 산모에게는 적극적으로 약을 쓸 수가 없다. 따라서 산모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다면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그래서 그때부터 마스크, 손 세정제, 손 소독제 등 위생용품을 시간 날 때마다 찾아 헤맸다. 아직 공적 마스크 제도는 시행 전이었고, 비싼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꼭 구매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손도 기회만 되면 씻었다. 가장 아쉬운 일은 아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쉽게 방문해서 먹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는데, 그것은 방문 포장으로 해결했다.

임신한 이후 아내는 입맛이 180도 변했다. 방문하는 식당마다 순한 맛만을 고집하던 우리는 빨간 맛을 외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찌개에는 고춧가루가 한 스푼씩 더 들어가기 시작했다. 입덧의 영향인지 순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다소 느끼할 수 있는 맛을 아내는 견디기 어려워했다. 덩달아 내 입맛도 변하기 시작했다. 기름지고, 다소 느끼한 고기반찬만을 바라던 나는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의 개운함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임신한 이후 아내는 잠꾸러기가 됐다. 함께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용한 숨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내가 보인다. 살포시 담요를 덮어주고,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며 생각한다. ‘3cm짜리 아가가 엄마를 엄청 힘들게 하는구나, 그래도 이렇게만 건강하게 잘 자라다오.’

나와 내 아내는 입사 동기다. 결혼 이야기가 오갈 즈음 아내는 내가 있는 충주지원으로 전입했고, 그 이듬해 결혼했다. 지금까지 계속 같은 법원에서 근무하는 우리는 회사에 언제쯤 소식을 전해야 할까 고민했다. 아직은 업무에 큰 지장이 없을 것 같았고, 임신 극초기인 탓에 조심스러웠다. 인터넷과 주변에서는 우리와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들과 고민 중인 사람들이 많았다. 결국 우리는 원장님과 과장님께 가능한 빨리 말씀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원장님과 과장님께 말씀드리는 순간 우리의 고민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원장님과 과장님께서는 진심으로 축복해주셨고 따뜻한 덕담으로 격려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에는 일찍 알릴수록 좋은 것 같다. 임신의 기쁨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누릴 수 있다고 할까.

임신 정기검진을 다녀오던 어느 날, 우리는 홀린 듯 유아용품점에 들어갔다. 임신 이전에는 유아용품이 단지 귀엽기만 했다면, 지금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귀엽다. 그래도 나름 며칠 책을 읽었다고 유아용품의 쓰임새가 상상된다. 유모차도 밀어보고, 장난감도 만져보고, 벌써부터 아가 옷을 구매하려다가 출산예정일을 들은 점원의 만류에 접어두기도 하고, 우리 미래의 아가를 그리며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동안 마스크 속에 가려진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가지 않았다.

“정말 고맙다.” 임신 소식을 들으신 아버지의 첫 말씀이었다. 사실 아버지께서 고맙다고 말씀해 주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양가 부모님 그 누구도 결혼 이후 명절에도 우리의 2세 계획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물으신 적이 없으셨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둘이 행복하면 그것으로 됐다. 둘이 가장 행복해야 한다”라는 말만 반복해서 말씀하시곤 했다. 그랬던 아버지가 임신 소식에 고마움을 표하셨다. 어머니의 말씀을 들어보니 아버지께서는 당신 친구들의 손자 손녀 이야기에 매일같이 부러워 하셨다고 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도 크게 다르지 않으셨다. 과묵하신 장인어른께서는 임신 소식을 들으시곤 아이처럼 미소 지으셨고, 장모님께서는 다소 진지하게 말씀드린 우리의 임신 소식에 그 누구보다 축복해 주시며 행복해 하셨다. 양가 부모님들께서는 우리보다도 훨씬 임신의 기쁨을 느끼고 계셨다. 뵐 때마다 행복해 하시는 모습에 임신은 우리가 결혼한 후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되었다.

임신하고 난 후 많은 것이 변했다. 우리 둘을 중심으로 돌던 세계는 배 속의 아가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가장 기초적인 의식주부터 우리의 취미생활까지 그 중심은 아기가 되었다. 나와 아내, 훗날 태어날 아이 셋을 중심으로 도는 세계가 궁금해진다.
아직은 배 속의 아이를 핑계로 차부터 바꿀 생각하는 철부지 예비 아빠지만, 훗날 태어날 아이에게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최고의 아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분들이 계신다면 훗날 내가 아이에게 부끄러운 행동을 할 때 따끔한 조언을 아낌없이 건네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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