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발견4] 라이카와 자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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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발견4] 라이카와 자장가

2020.04.03

라이카와자장가

라이카와 자장가

글. 김정익 판사(서울가정법원)

① 가정법원에서 만나는 많은 사건 중 하나였다. 남편의 잦은 야근으로 인해 아이의 병치레를 홀로 감내해야 했던 아내는, 아픈 아이를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다가 어느 순간 소진되어 버렸고, 남편을 상대로 이혼을 청구하였다. 특이하게도 아내는 재판에서 아이의 양육을 포기하겠다고 주장하면서도 아이를 계속 데리고 있었고, 가사조사과정에서도 둘 사이의 애착이 아주 밀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정실에서 만난 아내는 재판이 끝나면 아이와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 하면서도 여전히 남편이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아이를 사랑하는데, 믿지 못하는 남편에게 맡길 수 있겠어요?”라고 되묻다가 순간 얼어버린 아내의 표정을 보고 아차 싶었다. 한참 뒤 아내가 자신에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남편도 아내와의 관계나 양육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에게 시간이 필요했다. 한 달 뒤 조정기일을 속행하기로 했다.

② 그날 밤 꿈을 꾸었다. 우주 탐험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한 뒤 함께 우주에 갔던 개의 헬멧을 벗겼는데 이미 죽어있었다. 선장은 죽은 개를 살펴보더니 “죽은 지 꽤 지난 것 같다. 일행 모두가 헬멧을 써서 각자를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서로의 생체신호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고장 났기 때문에 아무도 그 개의 생사여부를 알 수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사람들이 죽은 개를 추모하는 콘서트를 열었고, 함께 비틀즈의 노래를 불렀다.
“Once there was a way to get back homeward.
(옛날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었지요)
Sleep pretty darling, do not cry.
(잘 자요 귀여운 내 사랑 울지 말아요)
And I will sing a lullaby.
(내가 자장가를 불러줄게요)”1)

③ 다음날 퇴근길에 문득 꿈이 생각나 인터넷으로 우주로 간 개 이야기를 검색했다. 검색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한창이던 1950년대 중반, 가정집에서 버려진 유기견 한 마리가 모스크바 빈민가에서 음식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떠돌아다니다가, 우주로 보낼 개를 찾던 어느 연구원에게 발견되어 모스크바 항공의학연구소로 보내졌다. ‘쿠드랴프카’라고 이름 붙여진, 우리에게는 품종명 ‘라이카’로 더 알려진 그 개는 아주 영리하고 침착했을 뿐만 아니라 유난히 연구원을 잘 따르고 온순했다고 한다. 라이카는 몇 달간 다른 개들과 함께 훈련을 받은 끝에 우주 견으로 선발되었고, 마침내 1957. 11. 3.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최초로 우주에 나간 생명체가 되었다. 당시로서는 우주선을 지구로 귀환시킬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며칠 뒤 독이 든 먹이를 먹여 안락사시킬 예정이었지만, 실제로는 열 차단 장치의 결함으로 발생한 우주선 내부의 고열에 시달린 끝에 라이카는 우주로 나간 지 불과 수 시간 만에 죽고 말았다.’ 2)
갑자기 예전에 잠시 돌보았던 아이가 생각나서 감정이 북받쳤다.

④ 사법연수생 시절, 나는 잠시 아이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부모의 사정으로 이모님이 돌보던 아이였는데, 나는 수업을 마치고 잠시 그 집에 들러 아이와 놀아주곤 했다. 아이와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아이는 나를 점점 잘 따랐고, 나도 아이에게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는 헤어질 때마다 엄마, 아빠가 언제 오냐고 묻기 시작했다. 나는 곧 오실 거라고 대답해주었지만, 사실은 아이 부모의 사정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아픔이 있던 아이라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했는데 어느 순간 사법연수원 수업과 병행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 부모 탓도 하면서 점차 아이와 거리를 두며 정을 떼려고 했다. 결국 그 일을 그만두었고, 그 후로 오랫동안 미안함과 후회가 남아 있었다.

⑤ 며칠 뒤 상담사 교육 중에 선생님께 모래놀이3)로 내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모래를 만지작거리다가 무덤을 만든 뒤, 흉측하게 생긴 새끼 공룡이 들어있는 알을 가져와 무덤 한가운데에 올려놓았다. 이어서 인형들을 가져와 배열했다. 어미 새는 자기가 낳은 알을 외면하고 있고, 사람들은 무덤과 상관없이 제각기 할 일을 하는 와중에 오직 강아지 한 마리만이 알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었다(아래 좌측 사진).
선생님이 물었다. “저 알에 있는 새끼는 어떤 상태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알을 깨고 나오는 중인데 엄마를 부르고 있어요. 그런데 아무도 듣지 못해요. 저 안은 무덤이거든요.”
다시 선생님이 물었다. “저 강아지는 왜 알을 보고 있나요?”
“아마 새끼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것 같아요. 강아지가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보이네요.”
“좋습니다. 계속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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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생각한 끝에 강아지가 무덤 위로 올라가 새끼를 안아주는 장면을 만들었다. 새끼 공룡은 알록달록한 유니콘으로 바꾸었다. 이전에 무관심했던 사람들도 무덤 위로 올라와 축하해주고 있다(위 우측 사진).
나는 선생님께 예전에 돌봤던 아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으신 뒤 선생님께서는 새로 만든 장면이 참 좋아 보인다며 지금의 내 심정을 물으셨다. 나는 대답했다. “참 예쁜 아이였어요. 다시 만나면 이렇게 안아주고 싶어요.” 선생님이 잘했다고 격려해주셨다.

⑥ 속행된 조정기일이 돌아왔다. 그사이 남편은 아내와 번갈아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고 아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직장업무의 조정 등 양육을 위한 준비를 하였고, 아내는 남편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어느 정도 가지게 되었다. 남편을 양육자로 하되, 남편과 아내가 공동으로 친권을 가지면서 아이의 치료, 교육 등에 대하여 서로 협의하기로 하고, 아내가 정기적으로 아이를 면접교섭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조정을 마치면서 나는 부부에게 서로를 믿어줘서 고맙고, 예쁜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실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부부의 결정은 나에게도 치유가 되었다.

⑦ 이후에도 나는 상담사 교육을 받는 동시에 내 내면 작업을 계속하였고, 올해 2월에 모래놀이 상담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가사재판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어느 부부의 사건을 계기로 나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았고, 이를 통해 나 스스로 억압해왔던 내면의 자기(self)를 회복해가면서 삶에서 무거움을 덜 수 있게 되었다. 속내를 묻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마음의 작업은 책임감으로 외롭게 아픈 아이를 돌보던 어느 아내에게도, 그 아내를 미처 살피지 못했던 남편에게도 같이 진행되지 않았나 싶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식하지 못한 채 서로 주고받은 것이 분명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책임감만 강조하고 포용할 줄 모르면, 구성원들은 서로 단절된 채 저도 모르게 쌓여가는 마음의 짐에 짓눌려 병들게 되고, 다시 타인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상처를 주어 병을 확대시킨다. 서로 공감하고 포용할 때 비로소 건강한 삶이 유지될 수 있다. 그리고 타인을 포용하는 힘은 자기를 포용하는 힘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에게 친절한 법을 알아야 다른 사람에게 친절할 수 있고, 내 마음이 가벼워야 다른 사람의 짐도 나눌 수 있다. 나의 내면보다 과중한 짐을 지는 것은 오래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해치기까지 한다. 크고 작은 여러 의무로 둘러싸여 점점 개인이 작아지는 이 시대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건강한 내면을 가지기를 기원한다. 경험상 내면이 건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또한 좋은 기운을 받는다. 나 역시 그러한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왔고, 한편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충분히 건강한(good enough)’ 사람으로서 좋은 기운을 나누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나눔으로써 나의 삶도 의미를 더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3월 현재, 코로나19 유행이 두 달 넘게 지속되면서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을 다독이고 서로를 받아주면서 짐을 나누는 인간다움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누군가의 마음속 라이카를 위해 함께 자장가를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1)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인 ‘Abbey Road’의 수록곡 ‘Golden Slumber’의 가사 일부
2) https://ko.wikipedia.org/wiki/라이카_(개) 참조

3) 모래상자, 인형 등을 이용한 비언어적 상담기법으로서, 1930년대 영국의 소아과의사 마가렛 로웬펠드(Margaret Lowenfeld)에 의하여 처음 고안되었고, 이후 도라 칼프(Dora M. Kalff)를 위시한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하여 심리치료 내지 상담기법으로 정교하게 발전하였다. 현재 서울가정법원 면접교섭센터 ‘이음누리’에서도 자녀상담기법의 하나로 모래놀이 상담이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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