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나예 안양지원 주무관
때는 바야흐로 2025년 4월, 나는 업무시간에는 바쁘게 일하고 퇴근 후에는 관사로 돌아와 드러눕기 바쁜, 여유는 없는데 지루한 이상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나는 종종 안양지원의 모 주무관님과 서로 기가 막힌 노래를 추천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주무관님의 추천곡 ‘Highlight’와 ‘Hi Bully’를 듣고 나는 그만 천년의 사랑을 마주하고 말았다. 데뷔 4년 차에 내게 혜성같이 등장한 밴드 ‘터치드’를 말이다.
밴드 터치드의 데뷔곡. 어두운 밤하늘을 밝혀주는 새벽별이 되어달라는 가사로, 멤버 윤민은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팬들에게 ‘여러분이 우리의 새벽별입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터치드는 데뷔 4년 차 만에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를 꿰찬 인기 밴드이지만, 밴드에 관심이 없다면 모를 수 있다. 터치드는 보컬이자 기타의 윤민(내 최애 멤버로, 입덕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드럼의 김승빈, 키보드의 채도현, 베이스의 존비킴으로 구성된 4인조 밴드다. ‘관객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밴드’라는 팀명답게 많은 이들을 사로잡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1위,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 1위, (보컬 윤민의 경우)복면가왕 9연승 등의 쾌거를 달성한, 현재 인디 씬에서 가장 주목받는 밴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디 씬이 어쩌구 하며 음잘알(음악을 잘 아는 사람)인 척 했지만 사실 음악을 잘 알지는 못한다. 악기 구분도 잘 못하는 수준으로 그냥 내 귀에 듣기 좋으면 좋은 음악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앞서 나의 입덕 계기가 마치 ‘Highlight’와 ‘Hi Bully’인 것처럼 써 놓았지만 사실 난 저 두 곡을 듣고도 ‘노래 좋네’ 생각하고 그냥 잊어버렸다. 진짜 입덕하게 된 건 우연히 내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은 한 영상 때문이었다. 터치드의 보컬 윤민이 밴드 소란의 ‘목소리’를 부르는 영상이었다. 영상 속 윤민의 미성과 예쁜 얼굴(중요)에 홀려 그 유명한 ‘Love is Dangerous’의 퍼포먼스 쇼츠도 보고(관객에게 마이크를 잡게 하고 본인은 노래를 하는 퍼포먼스다. 이렇게 글로만 보면 ‘아니 버르장머리 없이 관객을 마이크 거치대로 쓴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치명적이니 제발 날 믿고 한 번만 보길 바란다.) 각종 공연영상과 인스타 라이브 방송 영상까지 섭렵하다가 결국 입덕을 인정하고 말았다.
터치드를 오프라인에서 처음 본 날을 기억한다. 2025 피크 페스티벌의 스탠딩존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세 시간 동안 선 채 터치드를 기다렸다. 첫 곡이 ‘반딧불이’였는데, 윤민이 팬들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작사한 노래라 뭔가 운명처럼 느껴졌다. 마치 내가 팬이 된 걸 환영하는 느낌을 받았달까?(사랑에 갓 빠진 사람들이 겪는 흔한 자의식 과잉이다.) 곁의 터치드 팬들과 다 같이 떼창을 하고 행복해 하는 터치드 멤버들을 보며 나는 현장의 모두와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그냥 ‘팬’에서 편지지에 ‘사랑하는 윤민언니에게...’ 따위를 끄적이는 소위 ‘찐’이 되어가고 있었다.
덕질은 연애와 상당히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갑자기 공기가 달콤해진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최애 생각에 웃음이 비실비실 나온다.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도 안 물어본) 최애 얘기를 영원히 하고 싶어진다.(나는 사회성과 배려심을 겸비한 성인이기 때문에 최대한 자제하려 노력하지만...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가 다른 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열애설이 나는 상상을 하면 어마어마하게 질투가 난다. 나의 경우 추하지만 어린이에게도 질투를 하는데, 가수 바다의 딸인 ‘루아’가 윤민의 무릎에 앉는 영상은 배가 아파 도저히 볼 수가 없어 실눈을 뜨고 봤다.
그의 세상이 내 세상으로 편입된다. 터치드를 쫓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락 페스티벌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다른 밴드의 음악도 많이 알게 되었다. 요즘엔 예기치 못하게 취향에 맞는 밴드가 종종 등장하기도 해 입덕하지 않기 위해 머리에 힘을 꽉 쥐고 있다. 터치드만 좋아하기에도 내 통장은 충분히 아프기 때문이다. 덕질도 진짜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사랑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덕질을 시작하고 확실히 내 세상은 조금 더 넓어졌고, 마음은 피곤해졌으며 인생은 훨씬 더 재밌어졌다.
덕질을 하며 터치드 노래들의 가사에서 많은 위로를 받는데, 멤버들의 따뜻하고 세심한 감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반딧불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참 좋아한다. 팬을 반딧불이에 비유한 내용의 가사로, 팬에 대한 윤민의 사랑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반디야, 오는 길에 보았던 가로등도 숨을 쉬는 너만 할까 / 그래 나는 너를 보기 위해 마주치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온 거야’ ‘넌 어디서든지 반드시 빛날거야 / 그럼 난 사랑빛으로 널 알아볼거야.’ 종종 인생이 지치고 힘들 때, 이 노래를 들으며 난 터치드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고 어디서든 반드시 빛날 거라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약간의 자의식 과잉은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야경’의 가사다. 윤민과 함께 한강에서 무알콜 맥주를 마시던 채도현이 ‘강에 비친 저 야경이 마치 건물들이 넘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아?’라고 말한 것이 가사의 시작이 되었다는 이야기부터 낭만적이다. ‘툭 던진 한 마디에 물결쳐도 어째서인지 흔들리지는 않아’ ‘넘어진 건물 속 불빛들은 / 저 호수 속에 가득 담겨 있어 / 많은 걸 바라지는 않아요 / 우리 마지막일지 몰라도 오직 너와 나 둘이서’ 물결치고 흔들리더라도 다 아름다운 야경이 되기 위한 여정이라 생각하면 속상한 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긴다.
지루하던 내 일상은 덕질을 시작하고 완전히 달라졌다. 돌이켜보면 터치드를 좋아하기 시작하기 전에는 약간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페스티벌과 콘서트를 처음으로 가보고 앨범도 사고 영상과 노래를 감상하며 눈물짓기도(?) 하면서 어두운 내 일상에 빛이 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두운 밤하늘의 새벽별처럼 내게 등장한 터치드 덕분에 매너리즘을 쉽게 극복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 내게 사랑은 공유라 하던데, 그렇다면 음악을 통해 터치드와 세상을 공유하는 나도 터치드를 사랑하고 있는 게 맞는 듯 하다. 따뜻한 음악으로 위로가 되어주고 내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해 준 밴드 터치드를 사랑해서 즐겁다. 앞으로도 사랑 많이 하면서 지금처럼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
묻지도 않은 내 덕질 이야기를 강제로 듣느라 고생하는 주무관님들과 동기들, 가족들에게 지면을 빌려 심심한 위로와 감사를 전한다. 앞으로도 마저 고생해 주시길.(?)
혹 내 글을 읽고 밴드 터치드에 관심을 갖게 되신 분들이 계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울 것 같다. 꼭 터치드가 아니어도 무언가에 열정을 쏟는 일은 충분히 가치 있고 즐거우니, 혹 매너리즘에 빠져 계신 분이 있다면 무엇이든 덕질을 시작하는 것을 권유드린다. 물론 통장 잔고는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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