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미 기록연구관(법원도서관)
2022년 10월 윤관 전 대법원장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윤 대법원장님과는 2015년 <역대 대법원장 등 법원 주요인사 구술채록> 사업으로 면담에 배석하며 뵈었습니다. 그때 채록한 녹취문을 기초로 2021년 『대한민국 법원 구술총서』 제1권을 발간하며 총서에 수록할 자료를 확보하려고 찾아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당신의 자료를 연세대학교에 기증하실 때 실무적인 절차를 중간에서 돕게 되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대법원장님은 수치가 안 좋아서 입원했고 한 달 정도 있다가 퇴원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어르신들과 마찬가지로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 있으셨고 이를 잘 관리하고 계셨습니다. 무엇보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대법원장님의 목소리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과 박물관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전시실을 구성하던 진행 상황을 전해드리고 “예, 검사 잘 받으시고 퇴원하시면 뵙겠습니다.”라며 통화를 마쳤습니다. 그것이 어른과의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후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2022년 11월 14일 향년 87세로 영면하셨습니다.
(좌) 대법원장 재임시기 / (우) 서초동 대법원청사에서의 마지막 퇴청(1999. 9. 22.)
2015년 대법원장님의 구술을 채록할 때는 채록의 절차도 어설프고 최종 산출물의 보존이나 활용계획도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법행정에 대한 자료로서 대법원장 등 법원행정의 주요 보직자를 우선 대상자로 구술을 채록하여 기록으로 남겨보자는 정도만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술대상자분들께 사업의 취지와 절차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했습니다. 구술자분들도 당신이 법원에서 직함을 가졌던 책임감 때문에 구술채록에 동의를 하셨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첫해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그 후 8년 정도 계속 구술을 채록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 주신 고 김용철 대법원장님과 윤관 대법원장님께 무한히 감사드립니다.
2015년 6월 초 당시 도서관장이셨던 김찬돈 변호사님이 윤 대법원장님께 구술채록의 의미와 절차를 한 번 더 말씀드렸습니다. 대법원장님은 구술채록에 동의한다는 확답을 하시면서도 구술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로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면담자가 작성한 질문지를 보고 문항을 조율하며 4차례에 걸쳐 사전 면담을 하셨는데, ‘오래전 일이라 자료가 있으면 좋겠다.’며 그 자리에서 참고자료 목록을 주셨습니다. 무려 3장. 한 번에 작성한 것이 아니라 질문지를 보시고 또 관련하여 면담자와 통화하며 쓰신 것이었습니다. 말씀하신 자료들은 간행물 등의 실물 자료와 전자파일 출력물의 형태로 우송해 드렸습니다. 그 후 9월 23일부터 주 1회씩 총 4회에 걸쳐 대법원 전산정보센터 내 전산정보국장실에서 구술채록을 진행하였습니다.
(위) 윤관 대법원장님의 구술 전 참고자료 요청 메모
(아래) 2015년 구술채록 장면
구술채록에 배석하며 『법원사』나 연구문헌에서 읽은 내용과 대법원장님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상이 당사자의 목소리와 표정에 담겨 전달되니 사실이 보다 풍부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어려웠던 학창시절,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공군법무관 시절과 초임법관 시기, 재판연구관을 하며 광주를 벗어나 서울에서 생활하게 된 후 지방에서 온 판사가 형사소송법에 정한 바대로 법정에서 피의자의 수갑을 풀도록 한 일화와 같은 단편적인 것은 물론 대법원장으로 취임한 후 21세기 사법부의 청사진을 구상하고 사법제도발전위원회를 통해 마련한 5개 법률 개정안이 국회 의결을 통해 대통령이 공포함으로써 사법조직 개편, 법관인사제도 합리화, 재판제도 혁신, 사법운영의 현대화, 국제사법교류 활성화, 통일대비 연구 등으로 이어졌던 묵직한 내용까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아젠다 가운데는 대법원장님 시기에 결말을 본 것도 있으나 국민참여재판, 로스쿨, 양형기준 마련과 같이 검토를 하였으나 당시에는 수용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가 이후 시행된 것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장님은 당시 검토과정과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서 참고할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구술채록이 종료된 후 당시 사법정책연구원장에게 해당 부분을 전달해 달라고 하기도 하셨습니다.
(좌)『대한민국 법원 구술총서 1. 법관의 길 윤관』/ (우) 법원사자료 기획전 자료집 제6권 『기억의 기록, 법원의 변화를 말하다』 중에서
(좌) 사법제도발전위원회 전체회의(1993. 11. 10.) /(우)사법제도개혁 법률안 검토자료(1994. 3.)
사법제도 개혁 개정 법률 공포안 서명(1994. 7. 26.)
2021년 『대한민국 법원 구술총서』를 발간하면서 큰 실수가 있었습니다. 시리즈 형태로 발간할 총서의 포맷을 마련하는 상황에서 여러 변수를 고려하다 뭐에 홀리듯 대법원장님 함자에 병기한 한자를 오기한 것입니다. 대법원장님은 “똑똑이가 어쩌다 이런 실수를 했을까”라고 하셨고, 그 은혜로운 마음에 따라 교정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으로 총서발간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무척 부끄럽고 무서운 상황인데 따뜻한 기억으로 남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혹시 주변에 『대한민국 법원 구술총서 1. 법관의 길 윤관』 책자가 있다면 구술자 소개 면을 펼쳐보세요. 이런 일이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광복관 로비에 마련된 전시실에서도 있었습니다. 대법원장님의 서세 1주기에 맞춰 2023년 11월 15일에 개관한 윤관 전 대법원장님 기념공간인데요. 전시벽면과 자료 진열장 상단에 윤관 대법원장님 함자의 한자가 잘못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은 수정하였을 겁니다.
(좌)『대한민국 법원 구술총서 1. 법관의 길 윤관』 중 한자 오기
(우)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광복관 가는 길
윤관 기념홀 현판
대법원장님의 자료는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해당 자료 목록은 우리 법원사팀에서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2021년 연세 법학 백 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신 대법원장님은 법복을 기증하기로 약속하셨고 이후 법학전문대학원에서는 여타 모든 자료를 기증받아 전시실을 마련하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피력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법원장님은 법원도서관에 법원사자료로 쓰이면 좋겠다 싶은 마음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행간에 느껴지는 것이 있어서 연세대 박물관에서 자료관리를 하면 그쪽의 보유자료 목록을 확보하고 필요시 기관 간 협조를 받을 수 있으니 어느 쪽에 기증하셔도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으로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마음 같아서는 법원 관련 인사의 모든 자료를 법원사자료로 수증해서 법원 주요인사 기념관을 만들면 좋겠으나 법원도서관에서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전시시설이 없는 가운데 그것은 욕심이었기 때문에 도서관 내부에서 검토하여 의견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무엇보다 대법원장님의 마음이 편했으면 했고 또 연세대 박물관에서 자료를 잘 관리할 것이라는 신뢰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윤관 대법원장님 생전의 구술 영상은 일산 법원도서관 3층에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구술영상은 구술자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과 내용에 대한 이해에 기반하여 얼마간의 인내심(?)이 있어야 이용할 만한 자료유형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방향에서 구술기록을 활용할 수 있도록 대비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법원사자료전산관리시스템 및 e 법원역사관 사이트 고도화 사업>으로 온라인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 또 하나는 구술총서와 같이 읽기 쉽도록 발간하거나 2021년 법원사자료 기획전 <구술로 만나보는 법원이야기>에서 5가지 주제-재판연구관 시절, 생활인 법관의 봉급, 사법시설 특별회계와 서초동 시대 개막, 법정 운영 개선, 사법행정 사무환경의 전산화-로 구술내용을 추출하여 편집영상을 전시하고 법원도서관 유튜브 계정을 통해 제공한 것과 같이 가공하여 서비스하는 방안입니다. 후자의 경우 구술기록의 특성을 고려한 업무자의 아이디어 수준의 방안이 포함되어 있어서 구체적으로 어느 시점에 어떻게 서비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현재 상황에 조응하여 현실적인 방안을 추진하되 좀 더 나은 방향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는 정도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좌)2021 법원사자료 기획전 포스터 / (중)2021 법원사자료 기획전 도입부
(우)2021 법원사자료 기획전에 활용한 ‘재판연구관 시절’ 편집영상
기온이 서늘해졌습니다. 윤관 대법원장님이 2022년에 작고하셨으니 이제 3주기가 됩니다. 옛날 3년상으로 치면 탈상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2021년 대법원장님이 말씀하신 숙제는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는 미흡한 존재임을 자각할 때면 항상 죄송한 마음이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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