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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사건 개요
(1) 피고는 설계업체에게 설계용역을 의뢰하여 설계도면을 공급받고, 그 도면에 기초해 시공업체(수급인) H를 선정하여 ‘차폐실’이 포함된 이 사건 시설을 시공, 인도받았다. 설계 및 시공 당시 이 사건 특허발명의 권리자는 전자파 방호시설의 설계, 제조, 시공업을 주 목적으로 한 Y였는데, Y는 설계업체를 수차례 방문하여 특허발명에 관한 기술자료를 제공하였다. Y는 H로부터 시설공사 중 차폐실에 관한 일부 부분의 시공을 하도급받았다가 전문건설업등록이 되어 있지 않고 공사착공을 이행하지 아니한다는 등의 사유로 하도급계약을 해지당했다. Y는 시공업체를 상대로 해지의 효력을 다투는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하였으나 기각되었고, 다시 피고 등을 상대로 특허권 침해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청구, 부당이득반환청구, 사무관리비용상환청구의 소 등을 제기하였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2) Y는 원고에게 이 사건 특허권을 양도하였고, 원고는 ‘차폐실’을 포함한 이 사건 시설을 인도받아 사용중인 피고를 상대로, ‘차폐실’ 제작, 설치, 사용에 따른 특허권침해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청구와 이 사건 특허발명의 사용료를 선택적으로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으나, 제1심에서 모두 기각되었으며, 이 법원에 이르러 사용료청구 부분을 취하하고 손해배상청구의 청구원인을 시설의 ‘사용’에 관한 부분만으로 정리하였다.
l 판시 요지
(1) 원고의 특허권침해 관련 청구원인 주장에 피고는 이 사건 공사에 따른 EMP 방호시설을 사용하여 온 사실은 다투지 아니하면서, 다만 다음의 이유로 EMP 방호시설에 대해서는 이 사건 특허권이 소진되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EMP 방호시설이 이 사건 특허권의 권리범위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특허권자였던 Y가 설계사 및 시공사에 특허발명에 관한 기술자료를 제공함으로써 특허권에 관한 통상실시권을 묵시적으로 설정하여 주었고, 피고가 사용하고 있는 EMP 방호시설은 적법한 실시권자인 시공사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므로, EMP 방호시설에 대해서는 이 사건 특허권이 소진되었다는 것이다.
특허법 제2조 제3호는 발명을 ‘물건의 발명’, ‘방법의 발명’, ‘물건을 생산하는 방법의 발명’으로 구분하고 있다. ‘물건의 발명’에 대한 특허권자 또는 특허권자로부터 허락을 받은 실시권자가 우리나라에서 그 특허발명이 구현된 물건을 적법하게 양도하면, 양도된 당해 물건에 대해서는 특허권이 이미 목적을 달성하여 소진된다. 따라서 양수인이나 전득자가 그 물건을 사용, 양도하는 등의 행위에 대하여 특허권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 ‘물건을 생산하는 방법의 발명’에 대한 특허권자 또는 특허권자로부터 허락을 받은 실시권자가 우리나라에서 그 특허방법에 의하여 생산한 물건을 적법하게 양도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대법원 2019. 1. 31. 선고 2017다289903 판결 참조).
(2) 이 사건 특허발명은 물건의 발명에 해당하는 청구항 제1항의 발명과 물건을 생산하는 방법의 발명에 해당하는 청구항 제2항의 발명을 포함하는 것이다. 피고에 대하여 손해배상금의 지급을 구하는 원고의 청구원인 주장은, 이 사건 공사에 따른 EMP 방호시설이 청구항 제1항의 특허발명이 구현된 물건이고, 또한 청구항 제2항의 특허방법에 의하여 생산된 물건임을 전제로 한다.
다음의 사정을 알 수 있다. Y가 설계사에 제공한 기술자료는 특허발명의 기술내용이 반영된 것이었고, Y는 그 자료들이 장차 피고에게 제출할 설계도면에 그대로 반영될 것이라는 점과 설계용역부터 다수의 설계사가 협업하였을 정도의 규모였던 이 사건 공사에서 설계도면이 완성된 이후에는 시공능력이 확보된 건설사가 시공사로 선정되어 구체적인 공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인다. 이 사건 시설에 관한 계획 수립 당시 EMP 방호용 차폐 설치공법으로 Y가 채택한 방식 외에 다른 방식이 존재하고 또 다른 경쟁업체들도 존재하는 상황이었으므로, Y로서는 향후 시공사로부터 이 사건 공사(EMP 방호시설 공사) 부분을 하도급 받거나 그 관련 자재를 납품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보유한 이 사건 특허발명의 기술내용이 시설의 설계에 반영되게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단된다. 실제로 시공능력을 가진 H사가 시공사로 선정되어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고, 그에 앞서 위와 같이 EMP 방호시설 관련 자료를 제공한 바가 있는 Y는 시공사로부터 공사 일부를 하도급 받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 특허권의 특허권자인 Y가 이 사건 공사 부분을 하도급 받는 등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설계사에게 이 사건 특허발명의 기술내용이 그대로 반영된 EMP 방호시설 관련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설계업체와 장래에 선정될 시공업체에 이 사건 특허권에 대한 실시권을 묵시적으로 허락하였고, 또한 그 이후에 Y가 시공사로 선정된 H와 하도급 계약을 체결한 다음 원고의 주장처럼 이 사건 특허발명이 그대로 구현된 EMP 방호시설이 제작․설치되도록 함으로써 구체적으로 선정된 시공사인 H에 대하여 같은 실시권을 재차 묵시적으로 허락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H는 EMP 방호시설 공사를 완료할 당시 이 사건 특허발명의 특허권자로부터 허락을 받은 실시권자였음이 인정된다.
(3) H사는 2012. 8. 무렵 이 사건 공사를 완료하고 EMP 방호시설을 피고에게 인도하였다. 이 사건 특허발명의 기술내용이 실질적으로 적용된 것은 이 사건 공사인 EMP 방호시설 제작․설치 공사 부분인데, EMP 방호시설의 제작에 필요한 건축 재료는 도급인인 피고가 직접 제작한 것이 아니라, Y 등 하수급인이 수급인 H의 지시에 따라 제조하여 제공한 것이었으며 이 사건 공사에 소요되는 레미콘, 철근 등 건축 재료와 조명기구․보일러 등 기구는 모두 피고 외의 제3자로부터 공급되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H는 이 사건 특허발명의 특허권자로부터 허락을 받은 실시권자로서 2012. 8.경 피고에게 이 사건 특허발명이 구현된 EMP 방호시설을 ‘인도’하는 것을 넘어서 이를 적법하게 ‘양도’하기에 이르렀다고 봄이 타당하다.
(4) 이상과 같이 H가 2012. 8.경 이 사건 특허발명의 특허권자로부터 허락을 받은 실시권자로서 피고에게 EMP 방호시설을 적법하게 양도하였으므로, 설사 EMP 방호시설이 원고의 주장처럼 이 사건 특허발명이 그대로 구현된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위와 같이 적법하게 양도된 EMP 방호시설에 대해서는 이 사건 특허권이 이미 목적을 달성하여 소진되었다고 할 것이다.
원고는 Y가 피고에게 이 사건 특허발명에 관한 실시권을 묵시적으로 설정하여 주었더라도 그 실시의 범위는 EMP 방호시설의 EMP 방호시설의 사용에는 미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피고의 실시권은 그 설정등록이 마쳐지지 않던 중 이 사건 특허권을 양수받은 원고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나, 이는 H의 실시권에 기초한 위의 특허권 소진 판단에 장애가 되지 아니한다.
또한 원고는, Y가 특허권 실시권허락으로부터 실질적 이익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특허권소진을 인정해서는 아니 된다고 주장하나, 원고의 위 주장사유는 위의 판단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아니하며, Y는 이 사건 공사 부분을 하도급 받는 등의 이익을 위하여 EMP 방호시설 관련 자료를 제공하였고 또한 실제로 H와 하도급 계약을 체결하였으므로 실질적 이익을 얻지 못하였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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