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세대 리포트] 에코 패키징을 위한 뼈아픈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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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7

에코패키징

에코 패키징을 위한 뼈아픈 노력

지난 2018년 8월부터 국내 커피숍과 패스트푸드점 매장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이 전면 금지된 데 이어 올해 1월부터는 대형마트 자율포장대에서 테이프와 노끈이 사라졌다.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이 번지면서 포장재를 줄이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코로나19로 택배와 배달 음식이 늘어나 쉽지 않은 모양새다.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는 등 조금 불편하더라도 플라스틱을 줄여나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미 충분히 알고 있기에 이제는 실천해야 할 때다.

글. 남종영(한겨레신문 기자)

택배 소비와 플라스틱 퇴출 사이
하루가 멀다 하고 아파트 대문 앞에 택배 상자가 쌓인다. 스카치테이프를 칼로 자르고 퀴퀴한 종이 냄새를 맡으며 상자를 여는 데 설렘이 가득하다. 그러나 정작 그 물건이 집안에서 자리를 잡고 내 것이 확정되면, 언제 기다렸냐는 듯 무시하기 일쑤다. 우리가 모두 발 담근 소비 자본주의의 자화상이다.
우리 아들도 택배 상자에 환호하는데, 그 이유는 상자 안에 물건을 싸고 있는 ‘뽁뽁이’ 때문이다. 이제 한참 소근육이 발달하고 있는 아들은 손가락으로 꼭꼭 누르며 청량한 소리를 듣는다. 뽁- 뽁- 뽁-.
이 포장재의 정식 명칭은 ‘에어캡’이고, ‘버블랩’이라고도 불린다. 올록볼록한 공기 방울을 폴리에틸렌이라는 플라스틱 소재 인공물질이 감싸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이어지면서 인터넷 쇼핑은 더욱 늘어났고, 에어캡은 일상에서 더욱 많아졌다. 그런데 에어캡은 자연에서 분해되는 데 무려 500년 이상 걸린다.
지난여름 야생화를 꽂으려 가구 전문점 이케아에서 꽃병을 주문했다. 한껏 기대하는 아들과 함께 택배 상자를 열었는데, 뽁뽁이 대신 풍성하게 부푼 종이 충전재가 꽃병을 감싸고 있었다. 종이는 자연에서 분해되는 데에는 한 달이 걸리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 세계적으로 부는 플라스틱 퇴출 바람을 느낀다. 다국적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는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 빨대로 바꾸었고, 우리나라도 대형마트에서 플라스틱 성분의 포장용 테이프를 금지하는 등 로드맵을 이행 중이다. 민간 기업도 자발적으로 나섰다. 면세점 업계와 화장품 업계는 최근 뽁뽁이를 종이 충전재로 대체하겠다고 잇달아 발표했다. 외국에서 수입하기 여의치 않자, 종이 충전재를 직접 개발한 기업도 있다. 언택트 시대의 소비 사회에서 ‘에코 패키징’은 바람을 타고 있다.
엉뚱하지만, 이 열풍에 크게 기여한 이를 뽑는 대회가 열린다면, 나는 바다거북을 추천하겠다. 코에 박힌 플라스틱 빨대를 빼내느라 고통받는 바다거북의 표정을 유튜브에서 한 번쯤은 보았으리라. 지금까지 4천만 조회 수를 기록한 이 영상은 미국 텍사스 A&M 대학교의 두 생물학자가 올렸다.

바다거북과 생태계를 위협하는 플라스틱
2015년 코스타리카 바다에서 배를 타고 현장 조사를 하던 네이선 로빈슨과 크리스틴 피게너는 샘플링하기 위해 바다거북 한 마리를 잡았는데, 왼쪽 콧구멍에 물체가 끼어 있었던 것이다. 그냥 돌려보내면 안 되겠다 싶어, 마침 가지고 있던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사용하여 물체를 뽑아 냈다. 그리고 바다거북 연구자들이 보는 뉴스레터에 짧은 보고서를 올렸다.
“약 1㎝ 정도 끄집어내 보니, 벌레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긴 물체가 깊이 박힌 듯했고, 중간에 잘라 봤더니 플라스틱 빨대였다.”
다 빼낸 빨대는 10㎝에 이르렀고, 비강 깊숙이 들어가 비인두관까지 박혀 있었다. 바다거북은 숨쉬기 어려워 먹이 사냥에 큰 제약을 받았을 것이다. 둘은 바다거북이 자유롭게 숨 쉬는 걸 확인한 뒤에야 바다에 돌려보냈다.
플라스틱은 비단 바다거북만 위협하지 않는다. 생태계 순환으로 북극과 남극 바닷물 속에도 미세플라스틱이 있다. 성인 남성은 연간 12만 100개, 여성은 9만 8,000개의 음식물 섭취 등을 통해 미세플라스틱을 흡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5년 기준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3억 2,000만 톤이다. 1년에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 12만 8,000개를 플라스틱으로 꼭꼭 채워 누르는 양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유럽의 플라스틱 생산량이 2000년대 들어 증가세를 멈췄다는 점이다. 재활용 정책이 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인도 등 신흥 개발도상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과 소비문화 확산으로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여전히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 인도 탓만 하면 될까? 이제야 산업화의 과실을 음미 중인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선진국이 자국의 공해 산업을 이전시켜 중국을 세계의 굴뚝으로 만든 상황에서, 플라스틱 생산량이나 온실가스를 줄이라고 요구하는 데에는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작동하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물론 지구에는 국경이 없고,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무게 중심이 좀 더 온라인으로 기우는 상황에서, 운송과 포장 과정에서의 환경 위해 요소를 줄여야 하는 게 큰 과제가 되었다. 중국이 상당한 노력을 해야 한다면, 선진국과 우리나라는 그 보다 더 뼈아픈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 바다거북 영상은 유튜브(https://youtu.be/4wH878t78bw)에서 볼 수 있다.

* 남종영 기자는 2001년부터 한겨레에서 일하고 있다. 캐나다 처칠에서 북극곰을 보고 지구온난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영국 브리스톨대에서 인간-동물 관계를 공부했다. 동물, 환경, 과학 기사를 쓴다. 저서로 『북극곰은 걷고 싶다』, 『고래의 노래』,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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