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세대 리포트] 트로트 열풍, 그 중심에는 오팔 세대가 있다

트렌드에 주목하라

2020.07.02

트로트열풍

트로트 열풍,
그 중심에는 오팔 세대가 있다

최근 불고 있는 트로트 열풍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른바 ‘오팔 세대’라 불리는 지금의 달라진 5·60대의 막강한 영향력이 느껴진다. 노년이 아닌 신중년으로 불리는 오팔 세대. 그들은 과연 누구이고, 트로트 열풍은 그들의 어떤 욕망을 건드린 걸까.

글.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젊어진 트로트, 젊어진 5·60대
최근 대중문화 전반에 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해 TV조선 <미스트롯>이 그 열풍의 시작이었다면, 그 바통을 이어받은 <미스터트롯>은 트로트라는 장르를 하나의 트렌드처럼 만들어버렸다. 송가인 열풍은 지금껏 현재 진행형인 데다 <미스터트롯>이 배출한 임영웅, 영탁, 이찬원 등의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대중문화 전반을 거의 장악하다시피 하며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다. 게다가 트로트 열풍을 타고 다양한 트로트 소재 프로그램들도 쏟아져 나왔다. MBC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의 부캐(부캐릭터)로 유산슬이 트로트 신인 가수로 데뷔하는 과정을 담았고, SBS <트롯신이 떴다>는 트로트 레전드 가수들의 버스킹이라는 색다른 시도를 선보였다. 또 올해 예정된 KBS <트롯 전국 체전>은 이런 열기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거라는 걸 예감케 한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이런 트로트 열풍이 생겨난 걸까.
가장 큰 변화는 트로트가 젊어졌다는 점이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같은 프로그램 이전에는 KBS <가요무대> 같은 트로트 음악 프로그램이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뜨겁지 않았던 건 그 프로그램이 기성세대들에 맞춰져 있어 젊은 세대들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트로트 소재 프로그램들은 젊은 세대들도 좋아하는 오디션 형식이나 버스킹, 캐릭터를 활용한 B급 코드 예능 같은 색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 트로트가 특정 세대만을 위한 장르가 아니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장르라는 걸 보여줬다는 점이 열풍의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젊어진 트로트는 최근 오팔 세대(Old People with Active Life)라 불리는 지금의 중장년층 취향에도 딱 맞아떨어진 면이 있다. 나이는 5·60대지만 노년이라 불리길 원치 않는 이들은 ‘신중년’이라 불리며 젊은 세대들과 공감하고 호흡하려는 세대들이다. 즉 트로트 열풍은 트로트가 젊어진 것과 동시에 이를 소비하는 중장년 세대들도 젊어지면서 만들어진 현상이다.

트로트열풍

트로트를 문화의 중심으로 끄집어낸 오팔 세대
오팔 세대는 ‘오팔 같은 보석의 다채로운 색을 닮았다’는 의미도 들어있는데, 이것은 이들 세대의 남다른 삶의 방식을 잘 설명해준다. 즉 은퇴가 아닌 제2의 삶을 시작한다는 이 세대는 힙합이나 모델 같은 영역에서도 열정적인 활동을 보인다. 시니어 모델로 맹활약하는 김칠두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나이는 있지만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그래서 과거의 문화가 아닌 현재의 문화에 대한 욕구가 크다.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로서 이들은 경제적으로 고도성장기에 청장년기를 보냈다. 문화 소비에 있어서 경제력을 가진 이들은 인생 1막에서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인생 2막에서는 이루려는 욕망이 강하다.
이들의 이런 욕망에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힙한 문화로 떠오른 ‘젊은 트로트’는 딱 어울리는 열광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본래부터 트로트는 나이 든 세대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다만 90년대를 넘어오면서 젊은 세대들이 힙합 같은 장르로 빠져나가면서 트로트가 나이 든 세대들만 소비하는 장르로 여겨졌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를 소비하면서도 젊은 문화에 대한 욕망이 큰 오팔 세대는 트로트가 대중문화의 변방으로 밀려나 있는 듯한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를 다시 중심으로 세우면서 일어난 신드롬은 결국 그만큼 억눌렸던 오팔 세대의 욕망을 분출시킴으로써 생겨난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젊은 세대들도 즐기는 장르로의 변화가 전제된 것이지만, 그래서 지금의 트로트 열풍에는 오팔 세대의 지분이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과거를 추억하는 삶이 아니라 당당히 현재에 뛰어드는 오팔 세대의 달라진 욕망과 취향이 트로트를 재발견하게 만들었다.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TV나 영화 같은 대중적인 문화 속에 담겨진 현실을 모색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연예가중계를 비롯한 다수의 방송과 강연, 칼럼 기고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대한민국 남자들의 숨은 마흔 찾기』가 있으며, 대중문화 비평 블로그, 더키앙(thekian.net)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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