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 외치던 대중, <김생민의 영수증>에 주목하다

트렌드에 주목하라

2017.12.04

미래가 중요할까, 아니면 현재가 중요할까. 한때 열풍처럼 분 ‘욜로’ 트렌드는 ‘단 한 번뿐인 삶’을 내세우며 현재의 삶에 충실할 것을 가치로 내세웠다. 하지만 욜로가 엉뚱하게 소비문화로 오독되면서 최근에는 ‘아껴야 잘 산다’는 서민적인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있다.

욜로 외치던 대중, <김생민의 영수증>에 주목하다
‘You Only Live Once!’ 누구나 인생은 한 번뿐이니 기회를 놓치지 말고 현재를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이른바 ‘욜로(YOLO)’가 말하는 가치는 우리처럼 개발시대를 거쳐오며 ‘아껴야 잘 산다’라는 가치가 뿌리 깊게 내린 삶에서 오히려 어떤 경종을 울린 바 있다. 무언가를 아끼며 행복을 미래로 유예하는 삶이 결국은 현재를 희생하고 있다는 깨달음이 그것이다. 이를테면 집을 사기 위해 매달 적지 않은 대출금을 갚아나가며 근근이 30여 년을 버텨내야 한다는 서민들이 처한 현실을 떠올려보면, ‘왜 그래야 하지?’ 하는 의문이 드는 것. 그래서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는 한 흙수저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결국 인생 전체로 보면 행복한 삶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욜로란 훨씬 반대급부적인 소비 풍조로 다가온 면이 있다. 미래를 준비하기보다는 당장 현재를 즐기는 삶이 마치 ‘지금 사고(하고) 싶은 걸 사라(하라)’는 것으로 들린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프로그램은 이와는 반대의 이야기를 건넨다. ‘돈은 안 쓰는 것이다’라고 커다랗게 적힌 문구가 눈에 띄는 스튜디오에서 김생민은 옆자리에 앉은 김숙과 송은이에게 지독할 정도로 아끼는 ‘짠돌이’의 삶을 역설한다. 누군가의 영수증을 받아 ‘스튜핏’과 ‘그뤠잇’을 외치며 요리조리 소비 패턴을 쪼개보는 이야기는 마치 내 이야기를 듣는 양 공감을 주고, 거기에 주석을 다는 김생민의 이야기는 웃음과 함께 ‘아끼는 삶’이 여전히 좋은 미래를 담보한다는 희망을 전해준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김생민이라는 인물 자체가 연예인이지만 샐러리맨처럼 오랜 시간을 방송가에서 버텨낸 삶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김생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웃음을 터트리고, 무엇보다 그런 상황 자체에 공감한다. 사실 여기저기서 ‘욜로’를 외치며 지금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지만 그것도 ‘있어야’ 가능한 말이다. 욜로 열풍에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만 커진 대중은 그래서 김생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전자소송

<김생민의 영수증>에 담긴 저축과 욜로의 양면
하지만 그렇다고 <김생민의 영수증>이 아끼라는 말만 반복하는 건 아니다. 물론 김생민은 진짜 짠돌이로서 아끼는 다양한 노하우를 ‘저게 진짜 그가 했던 일들일까, 아니면 웃기기 위해 살짝 과장된 이야기일까’ 궁금할 정도로 쏟아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옆자리에 앉은 김숙과 송은이는 그 대척점에서 사고 싶고 먹고 싶고 하고 싶은 ‘소비 욕망’을 드러낸다. 김생민이 저축에 대해 ‘그뤠잇’이라고 외치고 소비를 ‘스튜핏’이라고 할 때, 김숙과 송은이는 여전히 욜로가 얘기하는 ‘소비 그뤠잇’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 그래서 프로그램은 기묘하게 저축과 욜로 사이의 균형점 같은 것을 만든다.
여기서 <김생민의 영수증>은 솔루션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힘을 발휘한다. 그가 전하는 해법들은 일견 공감 가는 것이고 합리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솔루션일 수는 없다는 걸 김생민도, 송은이와 김숙도 알고 있다. 다만 이 프로그램이 건드리는 것은 그런 솔루션이 아니다. 오히려 미래를 준비하려니 현재를 포기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렇다고 현재를 즐기자니 미래가 불안한 서민들의 그 양가적 감정을 모두 공감하는 일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저축인가, 소비인가
<김생민의 영수증>은 궁극적으로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쓰다듬는다.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한의원에서 꽤 비싼 한약을 구입하지만 그러고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야식을 먹는 사람이나, 빵집을 자주 들르면서 굳이 토스터기를 사는 사람이 보여주는 합리적이지 않은 소비의 모습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공감하는 시간이다.
<김생민의 영수증>이 그 짤막한 방송을 통해서도 이토록 대중의 열광을 만들어낸 건 바로 지금 서민들의 소비 정서의 중심에 서 있어서다.
저금리 시대가 오래 지속되면서 대중에게 저축이나 적금 같은 단어들은 점점 잊히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아낀다고 해도 목돈을 만드는 일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 저금리로 돈을 쉽게 빌려 쓰다 보니 ‘욜로’의 본질은 사라지고 소비적인 측면만 강조된 면이 있다. 무조건 짠돌이로 살아가라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미래는 없다’라는 식의 무분별한 소비 풍조는 피해야 하지 않을까.

글_정덕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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