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읽다
글 신동열(시인/작가)
모든 물을 담아 바다가 된다 포용의 힘
바다는 처마의 낙숫물을 버리지 않는다. 시냇물과 강물도 가리지 않는다. 그 포용으로 바다가 된다. 다 담아내니 대해(大海)다. 태산은 굽은 나무를 버리지 않는다. 바위와 티끌을 차별하지도 않는다. 그 아우름으로 태산이 된다. 다 받아주니 태산(太山)이다. 물은 크게 담아 바다가 되는 이치를 알고, 산은 크게 품어 태산이 되는 순리를 안다. 담아야 커지고 품어야 높아진다. 종지는 물 몇 방울 담을 뿐이다. 크게 담고 크게 품는 포용은 개인의 덕목이자 리더의 덕목이다. 포용하는 사회가 진정한 시민사회다.
포용은 곧 다름의 인정 포용은 다름의 인정이다.
미꾸라지는 습지가 보금자리고 원숭이는 나무가 놀이터다. 그게 ‘있는 그대로의 자리’다. 모기가 많이 생긴다고 늪을 없애면 세상은 사막이 된다. 오리 다리 늘리지 말고 학 다리 자르지 말라 했다. 짧다고 모자란 것이 아니고, 길다고 남는 것이 아니다. 그건 ‘있는 그대로의 길이’다. 짧다고 늘리고 길다고 자르면 세상의 길이는 단 하나뿐이다.
한 잣대로만 재기에는 세상이 너무 크고 오묘하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다층적 존재다. 나름의 이유로 숨쉬고 존재한다. 그걸 헤아리는 게 포용이다.
인품은 곧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의 크기다. 포용은 담아내는 넉넉함, 헤아리는 포근함, 용서하는 아량을 다 품는다. 포용이 큰 덕목이지만 실천이 어려운 이유다. 강은 강물을 담고, 바다는 바닷물을 담는다. 먼저 스스로가 커야 크게 담는다.
춘풍추상(春風秋霜). 따뜻한 봄볕처럼 남을 대하고, 차가운 가을 서릿발처럼 자신을 살피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더없이 차가운 게 인지상정이다. 타인의 흠은 부풀리고, 자신의 흠은 다양한 포장으로 감추고 변명한다.
성숙해진다는 건 내 안의 포용이 커진다는 얘기다. 현자(賢者)는 타인에게서 자신을 보지만 우자(愚者)는 상대방만을 본다. 예수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했고, 공자도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바라지 말라”고 했다. 타인 또한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 그걸 알아가는 게 성숙이고 그 마음을 실천하는 게 포용이다. 내 마음을 미뤄 네 심정을 이해하고, 내 처지로 네 사정을 헤아리는 게 포용이다.
들추면 다 먼지가 난다
곱게 보면 꽃이 아닌 풀이 없고, 밉게 보면 잡초가 아닌 풀이 없다고 했다. 마음은 세상을 보는 눈이다. 마음이 흐리면 만사 단점만 보인다. 마음이 넉넉하면 온 세상이 포근하다. 실수도 미소로 가리고, 흠결도 온기로 덮는다. 거친 마음에는 남의 흠집만 눈에 띈다. 주변이 온통 시빗거리고, 사방이 결점투성이다. 만물은 털면 모두 먼지가 난다. 맑은 물에도 잡티가 뜨고, 청정한 하늘에도 티끌이 날린다. 남의 단점을 덮지 않고 들추면 내 단점으로 상대의 단점을 공격하는 셈이다.
포용은 때로 나와의 싸움이다. 분노를 삭이고, 복수심을 달래고, 미움을 버려야 그 자리에 포용이 들어온다. 그러니 포용한다는 건 그가 진정 강자라는 뜻이기도 하다.
노자는 “예리하되 찌르지 말고 솔직하되 방자하지 말고 빛나되 눈부시지 말라”고 했다. “나는 날마다 날카로운 촉을 둥글게 하려고 애쓴다”는 몽테뉴의 말도 맥이 서로 닿는다. 날선 촉으로 남의 약점을 헤집으면 예리한 촉이 되레 화가 된다. 군자는 곧다고 목에 힘주지 않고, 맑다고 흐린 물을 꾸짖지 않는다. 곧아도 방자하면 곧음이 덕이 안 되고, 맑아도 으스대면 맑음이 탁함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장자는 “하늘은 덮어주지 않는 것이 없고, 땅을 실어주지 않는 것이 없다”고 했다. 진짜 크면 너와 나, 크고 작음을 가르지 않는다. 포용하는 사람은 함부로 규정짓고, 섣불리 가르지 않는다. 자신의 잣대에도 허점이 많음을 아는 까닭이다. 주자는 “사람의 장단점을 따지는 것은 비록 이치를 궁구하는 일이기는 하나 오로지 여기에만 힘쓰면 마음이 밖으로 달려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이 소원해진다”고 했다. 가르고 따질수록 포용은 밤톨만 하게 쪼그라든다는 가르침이다.
우뚝 솟은 소나무는 한 치 두 치 기어오르는 담쟁이의 힘겨움을 모르고, 황새는 종종대는 뱁새의 발걸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세상을 재단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포용은 나에게서 상대로의 관점 이동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포용은 내 마음을 미뤄 상대를 헤아리는 마음이다. 잡초를 꽃으로 보는 관점의 이동, 그게 곧 포용이다.
포용은 열린 사회의 덕목
인자불우(仁者不憂). 어진 사람은 마음이 고요해 근심이 없다고 했다. 최고의 장수는 덕장이다. 덕(德)으로 적을 굴복시키면 살상이 적고 후환도 없다. 통찰·직관·추진력은 리더십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하지만 리더십에 포용이 빠지면 조직이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한다. 포용은 응집하고 화합하고 결집하는 모태다. 포용이 결핍된 조직은 늘 원심력이 작동된다. 뭉치지 못하고 흩어진다.
우리 사회의 원심력은 그 강도가 만만찮다. 정치적 이념으로 내 편, 네 편이 갈리고 그 사이 장벽도 철옹성이다. 편이 갈리면 적이 생긴다. 그러니 도가(道家)는 선을 긋지 말라 한다. 왼쪽, 오른쪽으로 나누지 말고, 높고 낮음을 가리지 말라 한다. 포용하지 못하고 선을 그으면 선 저쪽을 버린다. 저쪽에 보석이 있고, 저쪽에 진실이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철학자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우리는 언제든 야만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한 길, 열린 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열린 사회는 포용하는 사회다. 장벽을 거두고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사회다.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지 않고 다양한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사회다.
내가 크면 세상의 시비가 자질구레해진다. 시비가 어지러우면 내 포용이 작다는 증표다. 보름달은 고요함과 시끄러움을 가리지 않는다. 어두운 밤길을 온전히 비춰줄 뿐 산과 들, 바다와 시냇물을 구별하지 않는다.
포용은 고요하면서도 크다. 포용하는 마음은 평온하고, 포용하는 사회는 상대방을 향한 삿대질이 적다. 서로가 서로를 포용해 ‘우리’가 되자. 편 가르지 않고 두루 비추는 보름달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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