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살기로 한,
나를 존중하는 지금
자존감은 글자 그대로 자기 존중감이고, 일종의 자기 평가다. 과거에 자존감은 행복이나 성공 같은 가치들에 가려져 큰 주목을 받지는 않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자존감에 관한 책과 강연이 쏟아졌고, 높은 자존감은 현대 사회를 사는 미덕이 되었다. 누군가는 이를 한때의 유행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자존감이 이토록 이야기되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평가는 넘치고 존중은 결여되어 있다는 방증이다. 높은 기준의 단일화된 정답을 이야기하고 쉽게 서열을 매기며, 완벽해 보이는 이들에게 선택적 존중을 보내는 사회. 이때 자존감 도둑은 사회 전체가 된다. 이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자신을 존중할 수 있을까.
글. 김수현(『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저자)
내면의 기준 갖기
건강한 자존감을 위해선 외부의 기준이 아닌 자기 내면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외모, 직업, 학벌, 지위가 아닌 내면의 신념과 가치를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거다. 물론 이 이야기는 진부한 이야기처럼 들릴 테다. 하지만 나는 낭만적 측면이 아닌 안정성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직업적 성취로 나를 평가한다면, 책의 순위에 따라 내 자존감은 요동을 칠 것이다. 하지만 창작의 기쁨과 보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자존감의 결정권은 나에게 있게 된다. 책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되, 거기에 나의 존재 가치를 두지는 않는 거다.
비슷한 예로 ‘다이어트를 해서 자존감을 높이자!’ 같은 글귀를 읽을 때가 있다. 물론 살을 빼고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살을 빼서 높아진 자존감은 살이 찌면 금세 사라졌다. 실상 살을 빼서 자존감이 높아진 게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체중과 타인의 시선에 위탁했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획일화된 외부의 가치를 좇는 한, 비교와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잘나든 못났든 이게 나야”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을 찾고, 비교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우월감에 대한 갈망을 내려놓으면, 우리에겐 존엄의 세계가 열린다.
상대와 나를 분리하기
때로는 보다 직접 나를 존중하지 않는 상대에게서 자존감은 상처를 입는다. 나 역시 그런 경우가 몇 번 있었다. 한번은 인턴 시절의 선배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고 사소한 실수만 해도 크게 면박을 줬다. 그때마다 굴욕적이었고 자존감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다른 직장에 취업하게 됐고, 그곳에서 만난 선배는 친절하고 사려 깊었으며 자신이 일해본 사람 중 내가 최고로 꼽힌다며 나를 칭찬하곤 했다. 나라는 동일한 사람에게 전혀 다른 평가가 주어진 것이다.
나는 나를 무시하는 선배를 보며 나에게서 이유를 찾았다. ‘내가 부족해서’, ‘내가 일을 못 해서’. 심리학에서는 이를 개인화라 하는데 마치 부모님의 이혼을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는 아이처럼 나와 관계없는 일을 보며 나에게 원인이 있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하지만 상대의 무례가 나의 잘못은 아닐 수도 있었다. 물론 자신의 행동을 돌아봐야 하지만, 상대의 인격에 묻은 오물까지 자신의 오물로 착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니 누군가 당신에게 모욕과 무례라는 쓰레기를 쥐여 주었다면 이제는 그만 꺼내 보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자. 상대의 기분, 인격 그리고 태도가 당신의 가치일 수 없다.
완벽한 자존감은 없다
사실 지난 몇 달간 내게 가장 큰 화두는 ‘어떻게 나를 사랑할 것인가’였다. 서적을 뒤졌고, 종교를 찾았고, 명상을 했다. 그런데 그 끝에서 내가 찾은 답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양철 로봇은 심장 갖기를 소망하며 도로시와 여행을 했으나, 양철 로봇에게 필요했던 건 이미 자신에게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뿐인 것처럼. 우리 역시 오랜 시간 나를 사랑하고, 나를 존중하고 싶었으나 우리는 이미 그럴 수 있었다.
우리에겐 그저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 자신을 존중하겠다’는 굳은 결심이 필요했다. 이는 막연한 소망이 아닌 결심이다. 사람은 누구나 열등감과 무력감, 초라함을 느낀다. 늘 말끔하고 완벽한 자존감은 없다. 그저 무성해지기 전에 잡초를 뽑아내듯이, 건강한 자존감이란 부정적인 마음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나 자신을 깎아 내리는 순간, 자신의 단점과 문제에 매몰된 순간, 자신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선택하는 것이다.
누구도 우리의 가치를 대신 평가하지 않는다. 물론 익숙한 생각의 길에 벗어나기 위해선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우리의 선택일 뿐이다. 자신을 존중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그렇게 하면 된다. 나는 이제, 그렇게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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