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인터뷰] "마음을 나누며 사는 것이 상생이죠"

人사이드인터뷰

2019.11.06

“마음을 나누며 사는 것이 상생이죠”

윤가은 영화감독

글. 노윤영 _ 사진. 김민환 _ 장소 제공. 연남동 바람커피

영화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은 어린이 배우의 연기를 잘 끌어내는 연출자로 손꼽힌다. 올해 8월 개봉한 두 번째 장편영화 〈우리집〉 역시 어린이 배우들이 주인공을 맡았다. 〈우리들〉이 그랬듯 〈우리집〉의 어린이들은 ‘놀라운’ 연기력으로 평단과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1인칭 어린이 시점

누구에게나 정신의 망이 있다. 다른 사물, 생각들은 빠져나가도 특정 이야기들은 계속 그 망에 남아 머릿속을 뒤흔든다. 그 이야기가 그 사람의 화두가 된다. 윤가은 감독의 망에는 어린 시절 풍경이 남아 있었다. 그때 기억이 윤 감독 본인에게 각별하게 남아 있었기에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다시 그려내고 싶었다고. 관건은 어린이 배우들의 연기와 서사였다. 기존 드라마나 영화에서 어른들 서사의 부속물로 등장하는 어린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은 윤 감독 본인이 생각하는 그 시절 ‘어린이’의 세계와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영화 속에 그려지는 어린이와 그들의 세계가 전형적이지 않으면서도 ‘진짜’처럼 보이길 원했다.

“아이들의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에 다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4학년 어린이가 끈 팔찌를 만들 수 있을까, 만든다면 어떤 형태를 만들 수 있을까’, ‘아이들이 함께 집 모형을 만든다면 어떤 소재를 이용해 어떤 형태로 만들까’ 등 영화의 모든 장면을 두고 어린이들은 물론 어린이 심리 및 행동 전문가들과 충분히 대화하며 답을 찾으려고 하죠.”

윤가은 감독이 단편(<콩나물>, <손님> 등)과 장편에서 연달아 ‘1인칭 어린이 시점’을 사용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주인공을 맡은 어린이(<손님>의 경우 청소년)에게 깊숙이 들어가 그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게다가 어린이의 세계는 어른들과 달리 복잡하지 않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좀 더 명확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우리는 같은 일을 반복하며 자란다

인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인물 주변의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는 뜻인 동시에, 인물을 둘러싼 ‘하나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윤 감독은 <우리들>의 ‘선’과 ‘지아’를 통해, <우리집>의 ‘하나’를 통해 유년기라는 세계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윤 감독이 그리는 세계에는 어른 생각대로 웃고 우는 ‘꼭두각시’ 같은 어린이들은 없다. 대신 또래 관계 때문에 갈등하고 고민하며 미끄러지는 어린이들이 있다. 부모의 다툼 때문에 불안해하고, 해답을 찾기 위해 기나긴 모험도 불사하는 어린이들도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어린 시절도 그랬다. 친구의 말 한마디와 행동 때문에 고민하며 어떻게든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발버둥 치던 시절, 가족의 불화 때문에 불안했던 그 시절 말이다. 마음 한편에 넣어놓고선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그 풍경. 그는 그 모습들을 거울처럼 마주 보여준다. 관객들은 <우리들>의 선과 지아에게서, <우리집>의 하나와 유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 안에는 어린 시절의 자신뿐 아니라 어른이 된 관객 자신의 모습도 담겨 있다. 영화 속 어린이들의 고민은 곧 우리들의 고민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덕분이다.

“어린이와 어른의 세계는 다르다고들 하지만, 꼭 그렇지마는 않은 것 같아요. 규모나 환경이 다를 뿐, 어린 시절 학교와 가정에서 겪었던 일 대부분을 우리는 사회에서 다른 형태로 반복해서 접하게 되거든요. 인간관계의 어려움, 가족에 대한 이야기 모두 마찬가지죠. 갈등하고 고민하고 상처받고 또 위로받는 일들이 반복돼요.”

1인칭 어린이 시점을 통해 그네들의 세계를 깊고 넓게 파고드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어른들의 세계를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것. 윤가은 감독은 세 편의 단편영화와 두 편의 장편영화를 통해 국내 어떤 감독도 닿지 못했던 풍경에 다가갔다.

결국 핵심은 마음을 나누는 일

영화를 준비하면서 그는 고민이 많았다. 각별할 수밖에 없는 인물을 연기하는 어린이 배우들이 촬영현장에서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던 탓이다. 기존 영화 촬영현장은 어른들이 지배하는 세계이고, 어린이 배우들은 그저 귀여운 인형일 뿐이었다. 윤 감독은 어린이 배우들이 좀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영화에 참여하길 원했다. 인형이 아닌 ‘동료’로서 말이다.

“어린이 배우들은 어른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신의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아요. 화장실에 가고 싶다거나 촬영 중 뭔가 불편한 점이 있어도 꾹 참죠. 어린이 배우들이 영화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하려면, 우선 촬영현장이 그들을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윤 감독이 만든 ‘어린이 배우를 프로 배우로 존중하기’, ‘머리 정리 등 신체 접촉을 할 때 미리 알리기’, ‘촬영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어린이 배우 앞에서 욕하거나 외모에 대해 칭찬하지 말기’ 등의 촬영 수칙은 촬영현장을 지배하는 모든 어른이 어린이 배우를 어린이가 아닌 배우이자 동료 영화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었다.

윤가은 감독 영화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런 끈질기고 속 깊은 노력 덕분이 아닐까. 윤가은 감독은 어린이 배우들에게 정해진 대사를 주지 않고, 상황극을 통해 자연스럽게 실감 나는 연기와 대사를 끌어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윤가은 감독의 속 깊은 배려 덕분에 어린이 배우들은 전형적인 연기가 아닌 생생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다.

윤가은 감독은 결국 마음을 나누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이는 우리 세상의 어른들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실은 요즘 제 화두가 이거예요. ‘마음을 나누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마음과 마음은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와 같은 고민 말이에요. 많은 이가 마음 나누는 걸 쓸데없는 일이라고 치부하죠. 상대방의 마음은 물론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세상 곳곳에서 아픈 마음들이 곪고 터져 안 좋은 소식들이 많이 들리는 건 아닌가 싶어요. 어떤 이들은 감정적으로 말하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의 마음은 어떤지 상대방에게 말하고, 상대방의 마음은 어떤지 묻는 것. 정신과 치료보단 그게 우선 아닐까요?”

상생은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간다’는 뜻이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 정답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노력할 뿐이다.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함께 걷기 위해서. 윤 감독은 지금도 영화 속 주인공들과 함께 서로를 북돋우며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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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은 영화감독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다녔다. 2016년 장편영화 데뷔작 〈우리들〉을 통해 제37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등을 수상, 영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올해 8월 두 번째 장편영화 〈우리집〉이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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