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인터뷰] 좋은 독서가 시작되는 순간

人사이드인터뷰

2019.09.04

좋은 독서가 시작되는 순간
- TBWA 박웅현 CCO

글. 이지현 _ 사진. 김인규

그는 책을 읽을 때 너무 욕심내지 말라고 말했다. 책 한 권으로 자신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 믿지 말고, 자녀 교육에서도 독서를 강권하는 행위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천천히 깊게 읽기

박웅현. 많은 사람이 그를 기억하고 있다. 혹자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어떤 이는 그가 광고 카피라이터라고 말한다.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 등의 저서는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올려놓았고, 광고 카피라이터로서는 ‘생활의 중심’, ‘사람을 향합니다’. ‘생각이 에너지다’, ‘혁신을 혁신하다’, ‘진심이 짓는다’ 같은 카피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처럼 그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중심에는 ‘독서’가 있다. 그의 유명 저서들은 독서에 대한 자기 생각과 경험을 정리한 것이었고, 독서를 통해 확장한 인문학적 사고관이 유명한 광고 카피들을 만드는 원천이었다.

“독서는 일단 재밌어요. 책을 읽고 나면 느끼는 것도, 배우는 것도 많죠.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달라집니다. 그전에는 무심히 봤던 것들을 새롭게 볼 수 있어요.”

왠지 그는 변화하는 트렌드를 캐치하듯 속독을 즐길 것 같지만 의외로 ‘천천히 깊게 읽기’를 즐긴다고도 했다. ‘좋은 책은 쉽게 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책은 천천히 읽어 내려가야 합니다. 좋은 책은 쉽게 읽히지 않거든요. 또 책을 많이 읽고 싶다는 욕심에 빠르게 읽으려고만 하면 행간에 숨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고, 이해했다고 해도 금방 잊어버려요.”

그는 또 천천히 깊게 읽는 습관은 좋은 내용을 놓치지 않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도 내용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독서란 ‘쌍방 소통’이다. ‘저자’라는 권위와 저자가 말한 것을 해석하는 ‘나의 뇌’의 권위가 동시에 존중받을 때 비로소 ‘좋은 독서’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책과 나쁜 책을 구분하는 기준 역시 자신의 뇌와 궤가 맞느냐에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 권장 도서 100권’은 서울대생이 읽기에 중요한 100권인 것은 맞겠지만, 내 뇌랑 맞는지는 전혀 고려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타이틀에 얽매이지 말고 나한테 좋은 책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좋은 책을 고르는 자신만의 세 가지 노하우도 소개했다. 첫 번째는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추천하는 책’이다. 나의 독서 습관, 나의 관심사 등 나를 잘 아는 사람의 추천 도서는 실패할 확률이 낮다. 나머지 두 가지는 각각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후속작’과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을 통해 증명된 ‘고전’이다.

책은 사람을 서서히 바꾼다

그는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현재 유명 광고회사의 CCO(Chief Creative Officer)를 맡고 있다. CCO는 최고 홍보 책임자를 뜻한다. 그가 기획한 광고가 특별한 이유는 평범한 일상을 남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광고 카피에는 인문학적인 감수성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하는 ‘울림’이 있다.

“좋은 토양을 가지면 좋은 싹이 나오듯, 독서는 생각의 인프라를 구축해 땅을 비옥하게 만듭니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에 특히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독서를 해야 합니다.”

그는 광고를 꿈꾸는 많은 이들의 롤모델로서 강연 활동도 틈틈이 해오고 있다. 강연 자리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어떤 책을 통해 어떠한 영감을 받았느냐’는 것이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해 “책 한 권에서 반드시 한 개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생각이 에너지다’라는 카피는 김화영 님의 산문집 「바람을 담는 집」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맞지만, 이는 매우 도식적인 말이에요. 한 권을 읽고 확 와 닿은 건 없습니다. 저는 좋은 책 한 권으로 중요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거나 사람 인생이 확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물론 아주 운이 좋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여러 책을 통해 생각이 정립되고 조금씩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서 교육, 아이를 먼저 공부해야

그의 딸인 박연 작가도 책을 썼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라는 아버지의 책을 패러디해 책 제목이 「인문학으로 콩갈다」이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사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대 속에서 아버지가 가르쳐준 ‘인문학’을 통해 중요한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박웅현 CCO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녀에게 책 읽기 습관을 알려주고 싶다면 무조건 책을 읽으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책을 읽지 않으려는 자녀에 대해 먼저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을 수 있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왜 그림이 좋은지, 그림의 어떤 점이 좋은지 등을 물은 뒤 그와 관련된 책을 소개해줘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담도 풀어놨다.

“딸 아이가 중학생일 때, 제가 그 또래가 좋아할 만한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추천해줬습니다. 연애소설이라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안 읽더라고요. 고등학생이 됐을 때 또 추천해줬지만 그때도 읽지 않았습니다. 화도 나다가 문득 ‘왜 아이가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이에게 왜 싫은지 묻자, 연애편지는 오글거려서 싫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는 이야기 전개가 빠른 책이 좋겠다고 말하기에 「폭풍의 언덕」을 추천했습니다. 그랬더니 읽더라고요.”

그와 인터뷰를 끝내며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을 남긴 한 대형서점 설립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말이 박웅현 CCO의 모습과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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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현 CCO

TBWA 박웅현 CCO는 인문학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진심이 짓는다’ , ‘혁신을 혁신하다’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등 다수의 유명 카피를 제작했다. 저서로 「책은 도끼다」 , 「다시, 책은 도끼다」 , 「여덟 단어」 등이 있으며 다양한 강연 활동을 통해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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