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의 뽀통령, ‘뽀로로’ 목소리 주인공

人사이드인터뷰

어린이들의 뽀통령, ‘뽀로로’ 목소리 주인공_성우 이선

2018.05.02

동그란 헬멧과 고글을 쓰고,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 귀여운 꼬마펭귄 ‘뽀로로’는 뽀통령이라 불릴만큼 아이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국내 유아 캐릭터다. 개구지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는 성우 이선, 그가 바로 숨은 뽀로로다.

15년째 더빙, ‘뽀로로’는 내 인생 캐릭터

국산 캐릭터의 역사는 ‘뽀로로’ 탄생 전과 후로 나뉠 만큼 자타 공인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평가된다. 2003년 11월 EBS를 통해 ‘뽀롱뽀롱 뽀로로’가 첫 방송을 탄 이후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 사상 해외 최다 판매(130여 개국) 연간 로열티 150억원, 캐릭터 상품 연간 매출 6,500억여 원, 라이선스 상품 2,500여 종 출시, 뽀로로 라이선스 누적매출 1조 2,000억원 돌파 등 쟁쟁한 기록들을 세우며 첫 방영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아이들의 ‘뽀통령’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런 뽀로로의 인기는 사랑스런 캐릭터를 만드는 목소리 역할이 크다. 성우 이선은 15년째 뽀로로 목소리를 연기하며 캐릭터에 대한 큰 애착을 갖는다.

“평생 성우로서 수많은 작품을 해도 이런 인생 캐릭터를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이제 저에게 뽀로로는 분신 같다고 할까요? 뽀로로가 나 같고, 내가 곧 뽀로로 같아요.”

처음 뽀로로를 맡아 달라는 의뢰를 받고 캐릭터에 어울리는 목소리 연구는 물론 캐릭터가 가진 귀여움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효과음도 고민했다. 길을 가다 이제 갓 걸음마를 배운 아이가 걸을 때마다 ‘삑, 삑’ 소리가 나는 유아용 신발을 신고 넘어질 듯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보고 만들어진 소리가 바로 ‘흐잇, 핫, 흣’ 하며 걷는 뽀로로의 추임새다.

“뽀로로가 잘 때 내는 숨소리도 연구했어요. 그 뾰족한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달싹거리며 잠자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잖아요. 코 고는 듯이 귀여운 숨소리를 만들었어요. 뽀로로 잠자는 소리를 한번 잘 들어보시면 들숨 때는 ‘뽀~’, 날숨 때는 ‘로로로로~’ 소리가 난답니다.”

탄생한지 15년이 지났으니 뽀로로도 이제 나이가 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뽀로로에게 세월은 의미가 없다.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 더 놀라운 사실은 2003~2004년 1기에서 2016~2017년 6기까지 방송이 제작되는 동안 뽀로로의 주요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7명의 성우들이 모두 그대로라는 점이다.

“전에는 함께 모여서 녹음을 했는데 이제 기술이 발달하고 녹음 방법도 바뀌어 시작과 끝부분 정도만 모여서 녹음해요. 우리끼리 농담처럼 하는 말이 각자 맡은 캐릭터를 닮아간다고들 해요. 여우 ‘에디’의 함수정 성우는 생김새가 점점 여우를 닮아간다고 하고, 공룡 ‘크롱’ 이미자 성우도 ‘크롱’을 닮아간다고들 놀려요. 비버인 ‘루피’는 몸이 동글동글한데 배역을 맡은 홍소영 성우도 점점 그래요. 통통한 루피의 손이 클로즈업될 때면 ‘똑같다’며 웃죠. 이제 모두 가족 같아요.”

대학 시절, 공채시험 합격으로 들어선 성우의 길

중학교 때 우연히 본 TV 방송을 통해 성우를 꿈꾸게 되었다는 그는 성우라는 직업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방송계에서 일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던 집안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1990년 서울예대 방송연예학과에 입학했다.

“아직도 기억이 나요. ‘따라해봅시다’라는 코너였는데 양측 패널이 매주 바뀌는 전문가를 따라해서 점수를 얻는 TV 오락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날은 성우들이 나와 시 한편을 읽고 두 팀의 패널들이 따라했는데 제가 그 패널들보다 훨씬 잘하더라고요. 저 혼자 카세트테이프에 시 낭송 녹음도 해보고 연기도 따라해 보면서 성우의 꿈을 키웠던 것 같아요.”

고향인 경상북도 문경에서 자란 탓에 사투리 억양이 있었던 그는 서울예대 방송연예학과 교수이자 당시 최고의 성우였던 고은정 선생에게 지도를 받으며 억양을 고치고 대학 졸업 전 담력도 키울 겸 본 KBS 성우 공채시험에 덜컥 합격했다.

“대학에서 연기 수업을 받으며 평생 연기하면서 살아도 참 좋겠다는 소망을 품으며 꿈의 영역을 좀 더 크게 확장했어요. 그런데 대학 졸업 쯤 첫 공채시험의 기회가 왔는데 그게 KBS 성우 공채시험이었고, 큰 규모의 시험을 경험하고자 했던 게 기회가 되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네요.”

당시는 주말이면 각 방송사에서 국내외 명작 영화를 방영해주던 시절이었다. 토요명화,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금처럼 자막 방송이 아닌 성우에 의한 우리말 더빙으로 영화에 대한 몰입감을 높여주었다. “작별은 이처럼 달콤한 슬픔이기에 날이 샐 때까지 안녕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청초한 눈망울로 연인을 향해 속삭이던 올리비아 핫세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부터 <식스티 세컨즈>의 섹시한 안젤리나 졸리 목소리까지 모두 성우 이선의 목소리다.

그가 했던 외화 더빙과 애니메이션 더빙을 모두 합치면 수백 편, 아니 천여 편이 훌쩍 넘었을 거라는 그는 <아기공룡 둘리>의 ‘또치’, <포켓몬스터>의 ‘로사’ 등 애니메이션 캐릭터에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목소리 연기로 작품을 살렸다. 덕분에 남녀노소 두터운 팬층을 가진 스타 성우로 성장했다.

“외화에 우리말 더빙을 하던 시절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작업을 많이 했죠. 그래서 다 기억도 못하고요. 가끔 팬들이 제가 더빙했던 영화라며 들려주는데 ‘내가 이 작품도 했었나’ 싶을 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 <세일러 문>의 ‘루나’예요. 당시 신입이었던 제가 성우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작품이었죠.”

한 작품 내에서 중복 배역을 맡는 일이 많은데 특히 성우 이선의 경우 각각의 목소리가 달라 ‘숨은 이선 찾기’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다양한 톤 컬러를 구사했다. <세일러 문>에서 ‘루나’ 역과 함께 ‘새턴’, ‘플루토’ 등도 그의 목소리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는 무려 24개역을 소화해냈다.

“<쉰들러 리스트>를 더빙할 당시 성우 막내였기 때문에 총 맞고 ‘악’하고 쓰러지는 장면부터 짤막짤막한 대사까지 제가 많은 역을 맡아서 했어요. 많은 배역을 많고 또 많은 작품을 하다 보면 목소리가 비슷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배우의 연기와 배역이 복합적으로 이미지를 형성하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달리 느껴지게 된답니다.”

‘성우’스러움을 자연스러움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

성우로서 27년의 세월을 지내오며 뿌듯한 자부심도 있다. 그가 성우로서 일을 시작한 그 때는 방송가에 큰 변화가 일던 시기였는데 설정과 꾸밈보다는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리얼리티의 시대로 서서히 바뀌어 가는 중간쯤이었다. 이 과도기에 성우의 더빙은 점점 사라지고 실제 배우의 목소리를 살린 채 우리말 자막이 등장했다.

그는 이러한 흐름에서 성우로서 변곡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성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었던 특유의 ‘어조’가 있었다.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라고 할 만큼 예쁜 목소리와 과도하게 꾸며진 연기 대신 자연스러운 어조를 구사하고 평범한 일상처럼 연기했다.

“외화는 언어가 달라 대사 속 악센트, 끊어 읽기와 호흡 등에 차이가 있고 과도한 제스처 때문에 우리말로 평범하게 연기하면 영상에 착 달라붙지 않는 게 있어요. 뒤에 오는 대사의 주어가 앞에 붙어야 하는 식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점들을 모두 고려하여 최대한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이게 연기를 하는 것이 제게 가장 큰 과제이자 고민이었어요.”

그의 이러한 노력에 함께 하는 후배들이 있었고 그러면서 언젠가부터 외화 속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가 점차 자연스럽게 바뀌기 시작했다. 안방 시청자들에게도 느껴지는 큰 변화다. ‘성우’스럽지 않은(?) 목소리가 자신 목소리의 특징이라고 하는 그는 성우 동료들의 경우 평상 시 일상에서 몇 마디만 해도 대번에 성우냐고 사람들이 물어본다는데 본인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웃는다. 카메론 디아즈, 모니카 벨루치, 클레어 데인즈 등을 연기해 목소리만으로는 이미 월드스타급인데 사람들이 얼굴을 몰라보니 사생활 보장도 완벽하다.

“어떤 광고주가 요청하기를 성우 같지 않은 성우를 찾아달라고 했다는데 저에게 섭외가 들어왔더라고요. 딕션(발음)이 잘 안 되는 모델을 대신해 멘트를 해야 했는데 목소리가 너무 도드라지면 안 되잖아요. 제 목소리는 그 쪽으로 특화됐나 봐요. 하하.”

무대 위 배우 이선으로서의 새로운 도전

1992년 연극 <레미제라블>을 시작으로 <두메데아>, <왕모래>, <햄릿_아바따>, <윤동주를 기억하다> 등 연극 무대에도 해마다 꾸준히 오르고 있다. 2015년에는 영화 <짐작보다 따뜻하게>(감독 이상민)에서 주인공 정은경 역을 맡아 생애 첫 스크린 데뷔작을 만들었다. <짐작보다 따뜻하게>는 그 작품성을 인정 받아 ‘2015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장편 부문에 본선에 오르고 같은 해 제주영화제 관객상, 전북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제 성우의 자리는 후배들에게 조금씩 내어주고 저는 배우로서 활동을 넓혀가고 있어요. 연기를 처음 배우던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연기에 대한 열정이 식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제 삶이 다할 때까지 연기를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올해 초 2018년 평창, 2020년 도쿄, 2022년 베이징으로 이어지는 올림픽 개최국 간의 지속적인 교류와 문화 협력 강화를 위해 기획된 ‘한일중 컬처로드’ 중 전통극 초청공연의 마지막 피날레 무대를 장식한 한중일 합동공연 연극 ‘햄릿_아바따’에서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 역을 맡아 열연했던 그는 요즘은 창작극 <황야의 물고기>(5. 15.~27. 대학로 서완소극장) 연습에 몰두해 있다.

나이 들면서 자신이 가진 가치들이 변해가 듯 자신의 연기도 삶과 함께 자연스럽게 변해가기를 바란다는 성우 이선, 아니 이제는 배우로서의 그의 모습을 기대해야 할 것 같다.

“성우로서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어요. 이제는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새롭게 도전하는 저의 미래가 저 또한 무척 궁금합니다. 여러분도 함께 기대해주세요.”

취재 한경희 | 사진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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