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우리 형’ ‘가방 들어주는 아이’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의 일기’…,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동화 제목이다. 이 동화를 비롯해 그동안 수많은 동화책을 집필한 베스트셀러 동화작가가 바로 고정욱 작가다. 낙엽이 떨어지는 늦가을, 북한산 3개의 봉우리가 내려다보이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카페에서 고정욱 작가를 만났다.
Q 최근 작가님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정욱아, 너는 소중한 아이야’를 펴냈는데요. 그동안 집필한 수많은 동화책 중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은 처음인가요?
네, 270번째 펴낸 책으로 제 이야기를 동화로 쓴 것은 처음입니다. 심지어 이 동화책에는 제가 그린 만화도 삽입되었습니다. 출판기획자가 “그동안 동화를 많이 썼는데 독자들이 작가를 궁금해한다. 작가가 살아온 이야기를 써보자”고 제안했어요. 이 책에는 ‘소아마비를 가진 장애아가 그래도 자신이 소중하다는 자존감이 있었기에 오늘날 작가가 되었다’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어린이를 위한 작가의 자서전인 셈이죠. 이 책을 통해 ‘장애를 가진 사람도 성공한 작가가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너희도 도전하고 자존감을 가져라, 너희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아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Q 어린 시절부터 작가의 꿈을 키워왔나요?
어릴 적부터 작가라는 꿈을 키우진 않았어요.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지요. 공구나 기계를 만지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의과대학 입학이 거절되면서 문과로 진로를 바꿨습니다. 그나마 작가가 될 소지가 있었던 것은 장애로 인해 활동이 제한돼 집 안에 주로 있다 보니 어릴 때부터 책을 굉장히 많이 읽었다는 것이죠. 유일한 취미 활동이 독서였어요. 집에 있는 책은 물론 학급문고에 있는 책은 모조리 읽을 정도로 ‘활자 중독’인 아이였습니다. 이처럼 책을 많이 읽고 ‘장애’라는 고통이 있기에 작가가 될 소양을 기를 수 있었던 것이죠. 어떤 식이든, 큰 고통을 겪거나 고통이 수반되어야만 진정한 작가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Q 작가님은 28년간 270권의 동화책을 집필했는데요, 끊임없이 집필을 이어온 열정이 놀랍습니다. 이러한 원동력은 무엇인지요.
서른 살 때 ‘글힘돋움’이라는 책을 시작으로 28년간 270권의 책을 썼습니다. 1년에 10권 정도 쓴 셈이죠. 동화, 소설, 수필 등 다양한 책을 써왔는데 그 원동력은 아무래도 ‘장애’입니다. 저에게 장애는 아물지 않는 상처에요. 상처를 계속 후벼 파면서 그 고통으로 문학을 양산해내는 것이죠. 과거에 아팠던 일, 어려웠던 일을 찾아내 의미를 부여하며 글을 쓰는 방식이에요. 저 자신을 아동문학에 ‘장애’라는 장르를 개척한 사람이라고 자부합니다. 장애인을 등장시킨 동화를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동화에 장애가 주 소재인 ‘장애아동문학’이라는 장르를 만든 셈이죠.
Q 국내 아동문학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동화작가’로서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제가 동화를 쓰게 된 데는 장애인을 위한 법과 제도를 바꾸고 싶었던 것이 계기가 됐어요. 장애인 차별 등 이 땅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싶은데, 어른들은 잘 바뀌지 않잖아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어린이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린이들이 재밌게 읽는 동화책에 장애인을 등장시키고 장애인 문제를 드러내면 어떨까. 아이들이 그 책을 읽고 감동하고, 결국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편견이 개선된 어른들로 가득 차는 것이죠.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장애인은 너희보다 어려운 환경과 여건 속에서 삶을 헤쳐나가는 사람들이다. 절대 차별하면 안 된다. 그들과 친구가 되면 너희가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그것이 제가 동화책을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일은 제가 죽기 전까지 계속해나가야 하는 사명인 것이죠.
Q 그동안 동화작가로서 인세도 기부해왔는데요, 작가의 ‘인세 기부’가 매우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니까 말만 앞서서는 안 되겠다, 실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씩 인세를 기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의 일기’의 주인공 이희아양에게 기부한 것이 좋은 결과로 돌아오면서 ‘좋은 일을 하면 더 큰 보상을 받는구나’ 하고 느꼈죠. 또 ‘가방 들어주는 아이’가 방송에 소개되면서 1억 원 정도 기부했어요. 그렇게 기부를 통해 좋은 결과가 오고, 사람들도 좋아하니 보람이 큽니다. 장애를 가졌지만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게 멋지다고 생각해요. 장애인은 도움을 받는 일이 많은데 오히려 남을 도울 수 있으니 뿌듯합니다.
Q 전국의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강연 활동도 많이 하고 있는데 강연으로 얻는 기쁨과 보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책 쓰기와 달리 강연에서는 어린이들을 만나며 동화작가로서 영감을 얻습니다. 강연 후 어린이들에게 명함을 주고, 아이들이 메일을 보내면 답장을 합니다. 저는 소통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장애인은 먼 곳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라도 마주치는 가깝고 친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또한, 아이들을 통해 작품 소재도 얻어요. 아이들의 생각을 들으면서 요즘 세상에 맞는 작품을 구상하죠.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가는 작가, 온 국민이 좋아하는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에요.
Q 앞으로 동화작가로서 최종적인 꿈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첫 번째, 책을 평생 500권을 쓰는 게 목표입니다. 제 나이가 올해로 57세로 270권을 썼으니 60세까지 300권을 채우고 싶어요. 두 번째, 현재 책이 20여 개국에 번역·출간되었는데 앞으로 전세계 100개국에 진출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은 장애인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입니다. 꿈을 가지면서 계속 도전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 노력해요. 기차를 타고 오가는 자투리 시간을 적절히 활용합니다. 저에게는 매 순간이 소중하기 때문이지요.
Q 우리 사회에서 법과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법과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 주차구역에 비장애인이 주차한 차로 피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법과 원칙 안에서 보호받는 사람들(장애인, 노약자)을 위한 배려심 있는 당신의 작은 행동으로 인해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약자를 위해서라도 법과 질서를 꼭 지켜주세요. 더 많은 이들이 희망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글_허주희 작가·사진_장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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