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시장>의 작가, 이제 ‘사랑’을 말하다

人사이드인터뷰

<인간시장>의 작가, 이제 ‘사랑’을 말하다_소설가 김홍신

2017.10.02

김홍신

억압의 시절, 잠시나마 국민의 숨통을 틔워주며 부패한 사회에 통쾌한 일갈을 날린 소설을 기억하는가. 1980년대 출간된 장편소설 <인간시장>이다. 이 소설로 혜성같이 등장한 이가 김홍신 작가다. 그동안 사회, 역사적 이야기를 써온 김홍신 작가는 2017년 현재, ‘사랑 이야기’를 들고 왔다. 햇살이 따사로운 어느 초가을 오후에 서울 서초동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Q. 최근 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출간했습니다. 이 소설은 사랑 이야기라 들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게, 인간의 본질이자 영원한 숙제입니다. 해독제도 없고 묘약도 없고,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늘 변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 이야기는 인류 역사상 문자가 생성된 이래 끊임없이 써지고 있습니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이 나오고 여러 사람에게 전화를 받았어요. ‘제목부터 기가 막히다. 제목을 어떻게 정했냐’는 말도 들었습니다. 제 책상 앞에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는 문장을 붙여놓고 소설을 썼습니다. 바람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자유로움’을 상징합니다. 이 소설의 주제가 사랑과 용서입니다. 바람은 그물에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자유롭지만,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려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Q. 그동안 사회적, 역사적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를 많이 썼는데요, 최근의 작품 주제는 ‘사랑’입니다. ‘사랑’에 주목하게 된 이유가 있는지요.
사실 제가 소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어요. 전에 역사소설 <대발해>를 쓰고 나서 심하게 앓은 이후에 소설이 써지지가 않는 거예요. 소설을 쓰다가 몸이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컸어요. 그러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이 뭔가’를 생각했어요. ‘사랑 이야기라면 그래도 좀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것도 굉장히 어렵게 썼습니다. 쓰는 데만 2년이 걸렸습니다. 결국 2015년에 ‘단 한 번의 사랑’을 냈고, 이걸 쓰고 나니 또 뭔가 사랑 이야기를 쓸 수 있겠구나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출간했습니다.

Q. 1980년대 소설 <인간시장>으로 국내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명성을 얻었습니다. 출세작 <인간시장>은 지금까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요?
<인간시장>은 1981년 9월 1일에 출간되었습니다. 제 소설로는 4번째입니다. 당시는 계엄 시절이었고 신문, 방송, 잡지, 책 등 모든 매체의 글은 계엄사에서 검열을 받아야만 했어요. 그런 서슬 퍼런 시절에 <인간시장>이 나왔고 출간 한 달 반 만에 10만 부를 돌파했어요. 출판사 사장이 당시 신형으로 나온 포니2 승용차를 사줬어요. 그리고 2년 뒤에 판매 100만 부를 돌파했어요. <인간시장>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기록됐어요. 저로서는 굉장한 영광이죠.
당시 <인간시장>도 수없이 검열을 당했어요. 자기들 입맛대로 쑥닥쑥닥 잘라냈죠. 그래서 사실 이 책은 아픔이 있어요. 또 당시 저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죽이겠다는 공갈, 협박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갈 정도로 가족이 아주 힘들었지요. 군사계엄 치하에서 그 시절은 모든 국민이 울분에 싸여 있을 때여서 사람들이 더 관심을 두고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육신도 살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 정신,
내 영혼이 살아 있다는 것이죠.

Q. 1976년 등단 이후 어느새 등단 41주년이 되었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제가 스물아홉 살에 등단했는데, 동년배에 비해 등단이 많이 늦었어요. 사실 요즘 글쟁이로 산다는 것이 아주 힘들죠. 글쟁이가 밥을 못 먹는 시대예요. 하지만 다시 태어나도 저는 글쟁이로 살아갈 겁니다. 어느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저는 죽는 날까지 머리맡에 원고지를 두고 손에 만년필을 쥐고 살겠다”라고요. 누군가가 “언제 글이 제일 잘 써지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이 가장 잘 써질 때는 마감 전날, 밤늦게라고요. 그때까지 무엇을 쓸까 하고 계속 고뇌하다가 막판에 터지는 거예요. 글이라는 게 가만히 있다가 저절로 써지는 게 아닌 거죠.”

Q. 원고를 만년필로 쓰는데, 만년필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는지요.
컴퓨터 자판 치는 것을 못 배웠어요. 사실 아직은 배울 마음이 없고, 손으로 쓰는 것이 내 감성을 자극합니다. 습관적으로 계속 손으로 쓰게 돼요. 제자들이 편하게 쓰도록 자판 치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했지만, 글쎄요, 더 나이를 먹으면 하게 될지 모르지만 아직은 만년필로 쓰는 게 좋아요. 꽤 오래전 명절날 최인호(소설가, 현재는 고인) 형과 함께 이어령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어요. 그때 선생님께서 “탁탁 자판 치는 것이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 같다. 너희도 컴퓨터로 글을 써라” 해서 둘이 “네” 하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둘이 밖에 나와서는 “우리는 죽을 때까지 손으로 쓰자” 했죠. 제가 10여 년 전 소설 <대발해>를 원고지로 1만 2000장을 썼어요. 하루에 12시간 이상 글을 쓰니 팔에 마비가 오고, 3년간 두문불출해 햇빛을 못 보니 햇빛 알레르기가 생기고, 허리통증에 소화불량, 요로결석, 또 머리털이 빠지는 등 엄청난 고통을 겪었죠. 그래서 이후 소설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담배를 끊었기에 지금 살아 있지 그때 담배까지 피웠으면 저는 아마 죽었을 겁니다.

Q. 어느새 칠순입니다. 지금도 더 쓰고 싶은 글이 있는지요.
이번에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고은 선생님이 읽고서 전화를 주셨어요. 책을 읽고 덮자마자 전화를 한 것이죠. “정말 환상이다. 더 좋은 작품을 기대한다”고 하셨습니다. 대하역사소설 <대발해>를 출간했을 때는 시인 이근배 선생이 책을 읽고 “이거는 노벨문학상 감이다”라고 말해주었어요. 이러한 이야기들 때문에 자꾸 글을 쓰게 됩니다. 칭찬을 받을수록 더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커집니다. 앞으로 우리 민족의 장엄한 ‘고대사’를 써보고 싶고, 사랑 이야기도 계속 써나갈 것입니다.

Q. 끊임없이 글을 쓰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육신도 살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 정신, 내 영혼이 살아 있다는 것이죠. 내 영혼이 살아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가장 강력한 행위가 글 쓰는 것이에요. 실상, 경제적 가치로 보면 글 말고 다른 것을 해야 합니다. 밥벌이가 안 되는 작업이니까요. 그럼에도 여기에 매달리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Q. 우리 사회에서 법과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상식과 법, 원칙, 정의, 진리, 이런 것이 왜 중요하냐면, 인간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살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공정’입니다. ‘공정 사회’가 되려면 이러한 원칙과 단어 자체가 존중받아야 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법의 공정성이 없다면 힘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겠어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이른바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긴 시간 이어졌어요. 우리는 산업화, 민주화에 성공했지만, 아직 공정하고 청렴한 국가라고는 할 수 없죠. 앞으로 우리나라가 각 분야에 공정한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고, 무엇보다 인성을 갖춘 이들이 일하며, 이런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법조계뿐 아니라 공기업, 경찰, 군, 재계, 교수 사회, 의사 사회 등 힘 있고 가진 집단이 먼저 ‘휴머니즘’을 가져야 합니다.

글_허주희·사진_장병국

"人사이드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