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에세이2] 인도에서 영덕까지의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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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0

마음껏 에세이 2 I 인도에서 영덕까지의 10년

글 정성용 실무관(영덕지원)

인도에서 영덕까지의 10년 인도에서 전해 들은 의외의 발령지
왕복 항공권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갔는데, 덕분에 중간에 여행을 포기하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인도는 자국을 ‘Incredible India’라고 소개하고 하는데,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확실히 ‘incredible’했다. 그네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인 ‘No problem’처럼 문제이지만 문제는 아닌 이상한 상황들이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차츰 그 설명할 수 없는 ‘No problem’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예약했던 교통편이 예고 없이 취소되어도, 기차가 10시간을 넘게 연착해도, 도무지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던져져도 무덤덤해질 때쯤에는 귀국이 가까워져 있었다.
11월 출국할 때 1월 발령이 날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여행 중 어렵게 접속(2010년 당시에는 지금처럼 해외에서 sns나 메신저를 통해 자유롭게 한국과 연락할 수 없었다.) 한 메신저에서 동기가 말해준 발령지는 꽤 의외였다. 보통 직무대리로 발령이 나는 곳은 수원이나 인천관할 법원이나 지원이었는데 나는 의정부지방법원으로 발령이 났고, 의정부지방법원 관할 안에서도 철원군법원으로 발령이 났다고 했다. 철원…? 이상했다. 철원은 내가 알기로는 분명히 강원도에 속해 있는데 왜 의정부 소속이며, 군법원은 또 무엇을 하는 곳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인사철에는 자리를 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법원 생활 처음부터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게 귀국 후 바로 철원군법원으로 가서 인수인계(사실 무슨 얘기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를 받고 2011년 1월 11일 자로 나의 법원 생활은 시작되었다.

정성용 실무관

철원에서 법원 업무 시작하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렵겠지만 나는 정말 쉽지 않았다. 안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게 철원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생소한 곳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업무에 관해서라면 백지장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군법원은 그 특성상 양은 적지만 종류는 다양했기 때문이다. 매일이 새로운 것들의 연속이었고, 울리는 전화벨이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다. 즐거울 것이 없는 막막한 날들이었지만, 그래도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선배님들이 계셔서 일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조성대 국장님, 최용호 계장님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우연찮게도 우리 모두 고향이 대구, 경북이었는데 당시 모든 것이 낯설던 내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상황이 어떻든 시간은 흘러갔고, 매서운 철원의 추위도 가실 때가 되자 나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고비를 넘기고 또다시 선택의 시간이 왔다. 직무대리로 타관할 법원으로 발령이 나는 경우 최소 1년 이상은 원래 법원으로 내려가기 어려웠는데, 다음 기수를 지역구분이 아닌 전국으로 모집하면서 6개월 만에 대구고등 관할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에 서울이나 수도권 법원으로 발령이 났다면, 큰 도시에서 살아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기에 남는 결정을 했을 수도 있지만, 철원은 아니었다. 미련 없이 대구로의 복귀를 신청했고, 짧았지만 나에게는 짧지 않았던 철원군법에서의 근무가 끝이 났다.
이제는 오래되어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철원에서의 시간은 앞으로의 나의 법원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지원도 아닌 군법원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이후에도 나는 규모가 있는 법원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지나고 나서 보니 어쩌면 사람이 많은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 성격에는 오히려 군법원이 더 잘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그런 성격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훨씬 시간이 지난 후였지만 말이다. 폭풍 같았던 철원을 뒤로 하고 나는 영덕으로 향했다. 이때만 해도 내가 영덕을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게 될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법원 울타리 안에서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영덕에서의 시간은 즐거웠다. 동기는 없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다른 실무관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기도 했고, 집도 멀지 않았기에 새로운 업무를 배운다는 부담은 있었지만 한결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 연고가 영덕은 아니었기에 한 명, 한 명씩 영덕을 떠났고 뭔지 모를 허전함에 나도 영덕을 떠나기로 하면서 첫 번째 영덕에서의 근무는 끝났다. 철원 이후 나의 근무지는 영덕-안동-상주-영덕(울진)-상주-영덕 순인데, 경상도 북부권을 크게 벗어 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한곳에 오래 있지도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왜 그렇게 근무지를 옮겨 다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이유는 나도 잘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이전에는 막연하게 한 곳에 있는 것이 지루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10년 전 취업이라는 당면한 목표를 위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이 길을 택했다. 내 성격이 공직에 적합한지, 직장생활 하는 동안 책상머리에서의 시간을 감당해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물론 그런 진지한 고민 후 직업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예나 지금이나 이 나라에서는 쉽지 않지만. 몇 년 전 대학 후배이자 법원 한 기수 후배가 법원을 그만뒀다. 이 친구는 퇴직 후 전기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가끔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법원에 있을 때보다 수입은 불안정하고 몸이 피곤할 때도 있지만, 마음은 훨씬 더 편하고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의 허울, 사람의 가치관보다는 직업이나 지위의 겉모습으로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성실히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맞지 않다고 느꼈을 때, 과감히 인생의 항로를 조정할 수 있는 그 용기가 부럽다는 말이다. 다만, 그는 나에게 정말로 견디지 못할 것 같다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법원을 그만두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법원이라는 울타리 밖에서의 삶이 그리 녹록지는 않다고.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어, 어떤 게 행복한 삶인가요?’
언제가 웹툰 <미생>에서 본 장면이 오버랩 되었다. 회사를 나간 사람과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람 사이의 대화였는데, 회사를 나간 사람이 한 말이었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다.’ 물론 사기업과 비교하면 법원은 전쟁터까지는 아니지만 말이다. 결국은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인데 나는 아직도 이 둘 사이 어디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한곳에 오래 있지 못하고 인사이동을 하는 것도 이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 거북이의 ‘빙고’라는 곡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어, 어떤 게 행복한 삶인가요?’ 요즘 내 스스로에게 자주하는 질문인데, 이 질문에 아직 답을 찾지 못했기에 현재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끝은 자기에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일 테니까.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12년 전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던 열심히 해보고자 다짐했던 기억이 났다. 마지막은 다시 <미생>의 한 장면을 빌려서 마무리를 해야겠다. ‘꿈을 잊었다고 꿈이 아니 게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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