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일상 대화 속에서 오남용 되고 있는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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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2

우리말이야기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히 쓰는 말 중에는 한자어나 영어식 표현에서 온 낱말들이 많다. 우리말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자주 사용되고 있는 오남용 낱말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본다.

‘되게’보다 더 잘 어울리는 낱말들

영어 ‘very’에 해당하는 우리 부사는 매우 다양하다. ‘매우, 무척, 퍽, 사뭇, 썩, 꽤, 제법, 자못, 대단히, 정말, 참, 상당히’ 등등. 이것을 맥락과 상황에 맞게 잘 가려 쓰면 그것만으로도 세련된 우리말 화자로 인정받을 만하다. 그런데 유독 ‘되게’가 일상 회화에서 지배적으로 쓰인다. 언중의 자연스러운 선택 차원에서는 인정해야 하는 측면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저 대충 편한 것만을 좇는 세태를 따른 것이라면 교양 있는 화자로서 가려 써야 옳다. ‘되게’의 범람은 단연코 우리의 거친 말글살이의 반영이다. 가장 조악하고 비루한 ‘very’가 바로 ‘되게’다.

위의 예문에 ‘되게’를 무턱대고 넣을 것인가? 말맛이 전혀 다르며 큰 틀에서 서툰 화법이다. 같은 맥락에서 ‘많이’도 문제다. 아무 때나 그저 쉽게 ‘많이’를 쓴다. “내일은 많이 덥지 않겠습니다.”는 도대체 어느 정도 덥단 말인가? ‘too’를 무턱대고 ‘많이’로 옮기니 벌어지는 결과다. “내일은 그다지 덥지 않겠습니다.”가 한국어적이며 세련된 표현이다. 이제부터라도 고칠 일이다.

‘굉장히’는 ‘매우’와는 다른 뜻

‘굉장하다’의 ‘굉장’은 한자로 ‘宏壯’이다. ‘넓고 크고 굳세고 웅장하다’라는 의미로 쓰임이 제한적이다. 그러니까 규모나 성질 면에서 크고 많고 높고 무겁고 엄청날 때만 ‘굉장하다’를 쓰는 것이 옳다. 부사 ‘굉장히’를 쓸 때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very’대용으로 너무 많이 오용되고 있다. “굉장히 좋다” “굉장히 예쁘다” “굉장히 귀엽다” “굉장히 조그맣다” “굉장히 기쁘다” “굉장히 슬프다” “굉장히 미묘하다” “굉장히 감격스럽다” 등은 어색하고 이상하다.

‘너무’, 부정적 진술과 어울리는 단어

국립국어원이 ‘너무’의 긍정 의미 용법을 마침내 인정했다. 그러나 그것을 장려할 것이냐는 별개의 문제다. 더구나 ‘너무하다’는 여전히 부정적 어구에만 어울리므로 반쪽짜리 개선이라는 지적도 있다. ‘너무’는 동사 ‘넘다’에서 온 부사다. 상식선에 맞는 일정 기준을 넘어버린 것이다. 영어 ‘too’와 우리의 ‘너무’는 용법이 똑같다. 너무 다음에는 여전히 부정적(否定的) 진술이 와야 어울린다. “너무 무겁다” “너무 어렵다” “너무 힘들다” “너무 썩었다” “너무 많이 먹었다” “너무 골치가 아프다” 등으로 문장을 만들어본다면 이해가 쉽다.

‘화이팅(파이팅)’의 남용은 생각해볼 일

이 일본식 영어 찌꺼기를 퇴치하기 위해 뜻있는 이들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던가. 그럼에도 이토록 진한 생명력을 갖는 것은 방송에서 수시로 허투루 쓰기 때문이다. 복싱에서 양 선수가 링 외곽만 돌고 도무지 공격의지가 없을 때, 심판이 마지못해 던지는 한마디가 바로 ‘파이트(fight)’다. 이것이 일본에서 ‘ing’가 덧대어져 ‘화이팅’으로 재탄생되었다. 한데 이 땅에서는 ‘힘내라’ ‘기운내라’ ‘잘해라’ ‘이겨라’를 넘어 자기 자신에게까지 독려를 일삼는 전가의 보도로 변신했다. 가히 TV와 라디오에선 ‘도깨비 방망이’ 수준이다. 아무리 언어가 사회의 반영이요, 사람들 의식의 결과물이라 하더라도 턱없고 괴이하며 졸렬한 말을 그러려니 두고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편리·편의성의 가치는 게으름·방관과 때로 한편이다. 좀 과장하면 ‘화이팅’을 추방해야 한국어가 산다. 그 정도로 심각하다. 대안은 있다. ‘서클’과 ‘엠티(M.T)’를 무력화시키고 ‘동아리’ ‘모꼬지’를 캐내 곧추 세운 우리 젊은이들의 곧고 참신한 결기를 본받는다면, ‘아자’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때 써 본 ‘아리아리’도 깜찍한 대안이다.

‘개인적으로’는 사용례, 발음 모두 문제

바야흐로 ‘개인적으로’ 광풍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입만 떼면 ‘저는 개인적으로 ~’가 남발된다. 영어 ‘I personally ~’가 거의 틀림없는 배후다. 일상 대화는 어차피 개인들끼리의 의견, 생각, 주장의 마당이다. 사실 ‘개인적으로’가 들어야 할 자리에 ‘이것은 사견인데’, ‘사적으로는’ 해야 마땅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저는 ~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은 ~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내용이 길어 별도의 텍스트가 필요할 때)가 무난하다. 발음도 문제다. ‘적(的)’의 발음은 유의해야 하는데 우선 ‘적(的)’을 포함한 음절수가 2음절일 때, 가령 ‘지적(知的)’ ‘미적(美的)’ ‘동적(動的)’같은 경우 무조건 [쩍]으로 소리난다. ‘적(的)’이 포함된 채 3음절 이상 단어일 때는 바로 앞 음절의 받침이 ‘ㄴ’ ‘ㅁ’ ‘ㅇ’이면 그냥 [적]으로 발음하며(예. [미온적] [양심적] [성공적] ), ‘ㅂ’ ‘ㄱ’일 때는 [쩍]이 된다.(예. [합뻡쩍] [공격쩍] ). ‘ㄹ’은 원래 [쩍]이었으나 점점 [적]으로 가는 추세다. 현재는 혼재하다. (예. [자발쩍] [저:돌쩍] [정열쩍] vs [법률적] [포:괄적] [현:실적]). 그러므로 ‘개인적’은 [개인쩍]이 아닌 [개인적]이 표준발음인데 [개인쩍]이 횡행하는 현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심리적으로 보면 자기 확신의 부족, 책임 회피, 반대 의견 피력에 대한 두려움과 맞닿아 있다. 여러모로 버려야 한다.

말이라는 것도 생명체와 같아서 생성, 발전, 소멸의 과정을 겪는다. 들불처럼 강력한 유행으로 번지다가 순식간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단어 자체의 태생적 격과 질은 다분히 타고 난다. 원형질이 건강하고 DNA가 우수한 것은 생명력이 길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것은 대개 일시적 거품에 그친다.

글 강성곤(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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