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글 Ⅱ_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테마가 있는 글

2017.10.02

100년도 더 된 이웃 나라 사람 ‘나쓰메 소세키’의 장편소설 제목이 아니다. 최근 한국·대만·일본 길고양이들의 묘생(猫生)을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은 더더욱 아니다. 이 글은 지난 3월부터 우리 집 세 식구와 동고동락(同苦同樂)하게 된 ‘봄’이라는 녀석에 관한 이야기다. 맞다. 그 녀석은 고양이다. 그것도 ‘페르시안 친칠라’라는, 이름도 낯선 그런 종자다.

나도 내가 고양이를 키우리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동네 아파트 단지를 산책할 때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고양이가 나타나곤 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모습에 그저 섬뜩함을 느끼며 뒷걸음질 치기를 반복하던 내가 고양이와 동거를 한다고? 후훗. 그때는 상상도 안 해본 일이다.
최근 몇 년간 ‘동물농장’이나 ‘삼시세끼’ 같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고양이라는 반려동물에 대해 많이 익숙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TV 속에 있는 그저 인형 같은 피사체일 뿐 그게 실제 내 옆에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와이프도 내게 그랬다. “당신같이 깔끔 떠는 사람이 털 날리는 고양이를 키운다고? 택도 없어!”라고.

물론 계기는 있었다. 미혼인 처제가 독립하면서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러시아라는 먼 나라에서 수입했다는 몸값 좋은 녀석이었다. 사실 궁금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강아지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마당에서 여러 번 키워보기도 했다.

초등학생 아들을 핑계 삼아 처제네 고양이를 보러 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손바닥만 한 사이즈의 인형 하나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고양이인지 인형인지 정말 구분이 안 되었다. 강아지처럼 달려오지는 않았다. 그저 멀리서 이쪽 눈치를 보며 숨었다가 나타났다가를 반복했다. 사람 심리가 참 묘하다. 꼬리를 흔들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다가오는 강아지에게는 금세 질렸던 데 반해 이 녀석은 묘하게 내 맘을 쥐고 흔들었다. 쉽게 마음을 안 여는 이성(異性)에게 느껴지는 그런 감정이다.
그 후로 아들과 난 고양이 노래를 불렀다. 우리 집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와이프라는 분에게. 처음엔 단칼에 “안 돼”라고 했다. 하지만 무한반복의 효과인지 어느 순간부터 반대의 강도가 덜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1년의 설득 끝에 고양이 숍에 ‘구경만’ 가기로 했다. 정말 ‘구경만’ 하기로 하고 차를 몰았다.
그런데 저지르고 말았다. 고양이 숍에서 돌아오는 길, 우리 차 안에는 식구가 하나 늘어 있었다. 정말 그 자리에서 분양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예방접종은 어떻게 하지?’ ‘사람이 없는 낮에는 누가 돌봐주지?’ ‘털 날리는 건 어떡하지?’ 그 많던 걱정은 이제 귓가에서 저 멀리 떨어져 맴돌 뿐. 그 녀석을 보고 있노라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혹시라도 키우게 되면 털이 짧고 안 날린다는 러시안블루 종을 고려해보겠다던 와이프. 털 날리기로는 둘째라면 서러워한다는 페르시안 종을 골랐다. 이 녀석과 전생에 인연이라도 있는 걸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 녀석이 물었다. “아빠, 이름은 뭐라고 지을 거야?” 잠시 고민이 됐다. 왠지 내가 지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아들 이름을 내가 지었던 것처럼. 3월 하순경이었다. 그저 빨리 겨울이 끝나고 따뜻해지기만을 바라던 때다. 고민도 순간. “봄이라고 부르지 뭐!” 그렇게 그 녀석은 우리 가족의 ‘봄’이 되었다.

첫날부터 낯을 가리는 게 없었다. 이 집이 원래 자기 집이던 것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고양이는 낯선 환경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던 점원의 얘기도, 고양이마다 차이가 있나 보다. 그러다 기적을 목격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기적 따위는 아니다. 다만 강아지만 키워본 나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을 뿐. 고양이가, 그것도 태어난 지 80일도 안 된 고양이가 스스로 자기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나왔다. 그것도 뒤처리를 한답시고 모래에 잘 파묻어놓기까지 한 것이다.
봄이와의 첫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됐다. 낮에 사람이 없을 땐 어쩌고 있을까 궁금했다. 웬걸. 돌아가 보니 집 안이 외출하기 전과 똑같았다. 집에 아무도 없는 느낌이었다. 물건을 어지럽힐 만도 한데 별로 그러질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고양이는 야행성 동물이다. 쉽게 말해 사람이 없는 낮에는 그냥 계속 잔다. 자다가 배고프면 밥을 먹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물을 마시고 다시 잔다. 그렇게 사람이 올 때까지 잔다. 어디 아픈 건 아닐까 걱정될 만큼 잔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고양이들은 하루 평균 15시간 이상을 잔다고 한다. 심지어 아기 고양이 때는 더 많이 잔다는 것이다. 생의 절반 이상을 자는 데 보낸다는 게 적절한 표현이다.
밤에는 혼자 식구들과 떨어져 다른 곳에서 자는 척한다. 하지만 불을 끄고 잠시 기다리면 어느새 슬그머니 사람 자는 방으로 들어온다. 사람의 체온을 느끼며 자려는 것이다. 아침에는 머리맡에서 내 머리카락에 대고 그루밍을 한다. 중간중간 머리카락을 깨무는 녀석의 이빨에 놀라 잠을 깬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더 가관이다. 이내 그 유명한 ‘골골송’을 부르며 계속 나에게 몸을 비빈다. 세상에 이렇게 가까운 사이는 없을 듯이 몸을 비벼대며 애교를 떤다. 이때만은 자기 몸을 만져도 그냥 가만히 있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분을 넘기지 않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 손을 뿌리치고 도망간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내 사랑을 몰라주고 뿌리치니 괜히 심술이 나면서 더욱 집착하게 된다. 한동안은 좀 쓰다듬어볼까 싶은 생각에 집 안에서 쫓아다닌 적도 있다. 그러다 이내 깨달았다. 포기하고 모른 체하고 있으면 어느새 내 손이 닿는 곳에 와 있곤 한다는 걸. 아! 도저히 저 밀당의 고수를 나는 당해낼 수가 없다.
개와 고양이의 차이만큼이란 말이 있다. 비슷하지만 많이 다르다는 뜻으로 종종 쓰인다. 내가 보기엔 다리가 넷 달리고 꼬리가 하나인 것 말고는 완전히 다른 종족이다. 무엇이 더 낫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하겠다. 그건 개인의 취향일 뿐이니깐. 다만 고양이가 개만큼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표현의 몸짓이 다를 뿐이다. 고양이는 오히려 사람의 감성을 이해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사람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어느덧 봄이를 식구로 맞이한 지 4개월이 흘렀다. 태어난 지 7개월.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를 지난 청소년기로 볼 수 있다. 누군가는 무섭다고도 하지만 우리 눈에는 그저 아깽이(아기 고양이)로만 보인다. 아직도 품에 안으면 아기처럼 가만히 몸을 맡긴다. 이름도 다양해졌다. 그저 부르기 편한 대로 ‘보미’ ‘보말이’ ‘보로마리’.

최근에는 길냥이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길바닥 냥이들에게 서서히 연민의 정이 생겼다. 고양이의 평균수명은 개와 비슷하다고 한다. 10~15년. 그런데 이 길냥이들은 평균수명이 2년이 채 못 된다고 한다. 혹독한 환경에 노출돼 갖은 질병과 기생충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사냥감이 없는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버린 음식물로 생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란다.
길냥이에 관한 더 놀라운 것은, 상당수 길냥이는 주인이 키우기 힘들어서 버린 것이 아니라는 점. 고양이의 본능에 따라 집을 뛰쳐나온 후 돌아가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먼 곳에서도 집을 찾아온다는 개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다. 사실이었다. 수의사 역시 고양이는 도망가지 못하도록 문단속을 잘해야 하며 이동 시에는 목줄을 하거나 이동장에 넣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렇게도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한번 집을 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얘기를 듣고부터 길가에 어슬렁대는 길냥이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아들 녀석과 함께 작은 그릇에 사료를 담았다. 일주일 전부터 아들이 학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집 앞 나무 근처에서 어미와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봤다고 했기 때문이다. 함께 먹이를 주자고 약속했는데 주말에야 시간이 났다. 이제 TV에서 보던 캣맘, 아니지 캣파파가 된 것이다. 고양이를 목격했던 곳에 사료 그릇을 놓고 기다렸다. 잠시 후 어미 고양이가 나타나더니 먼저 먹기 시작했다. 먹이가 이상 없음을 확인했는지 안쪽을 향해 몇 번 울더니만,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같이 먹기 시작했다.
동물 전문가들에 따르면 고양이는 같이 사는 인간을 큰 고양이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아기 고양이 정도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왜 아침마다 내 머리맡에서 그루밍을 하는지 이해가 됐다. 난 봄이 녀석의 엄마 또는 아빠 고양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다.

그런데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조금 다르게 얘기하고 싶어졌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아니라 ‘우리 집 고양이가 사람이로소이다’라고. 내가 오히려 그 녀석에게서 사람의 감성을 종종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그 녀석 역시 사람과의 공존을 위해 많은 부분 자신의 본능을 희생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퇴근길에는 마트에 들러야겠다. 녀석이 좋아하는 닭 가슴살을 사기 위해서다.

고양이

글_김영철 서울서부지방법원 행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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