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엔드 뮤지컬

완전 정복기

글. 박지윤 실무관(부산서부지원)

흔히들 뮤지컬이라고 하면 뉴욕 브로드웨이를 떠올리지만, 세계 4대 뮤지컬 중 〈레미제라블〉을 제외한 〈미스 사이공〉, 〈캣츠〉,〈오페라의 유령〉 모두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뮤지컬들입니다. 〈레미제라블〉 또한 1980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되었으나, 현재 우리들이 알고 있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런던에 새롭게 레코딩된 버전입니다. 때문에 사실상 세계 4대 뮤지컬 모두 런던 웨스트엔드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연간 4조 원 이상의 티켓 매출을 올리고 있는 런던은 뮤지컬의 탄생지이지만 잠시 미국 브로드웨이에 그 위상을 넘겨주었다가 〈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을 작업한 ‘21세기 모차르트’라 불리는 뮤지컬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등장으로 인해 그 위상을 되찾게 됩니다. 감각적이고 화려함을 중시하는 브로드웨이와 달리 웨스트엔드는 문학적이면서 철학적인 주제를 담은 작품들을 중심으로 공연이 이뤄집니다.

저는 대학시절 교환학생과 함께 법원 입사 후 첫 휴가로 2018년 가을에 런던에 다녀왔습니다.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기에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 〈위키드〉 그리고 〈라이온 킹〉까지 모두 4편의 뮤지컬을 관람하였습니다.

이번 <법원사람들>을 통해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른 런던 뮤지컬의 재미있는 요소들과 여러 가지 관람 팁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 S석, R석이라 부르지 마오: 런던 뮤지컬 극장의 좌석 이름

우리나라에서는 뮤지컬이나 오페라 극장의 좌석을 1층, 2층으로 그리고 S석과 R석 등으로 구분하는데요. 티켓의 가격이나 층으로 좌석을 구분하는 우리와 달리 영국 뮤지컬 극장에는 좌석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 Stalls

런던 뮤지컬 극장에서 1층은 ‘Stalls’라고 부릅니다. Stall의 명사적 의미는 말 그대로 ‘무대의 앞 일등석’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1층 S석을 의미합니다. 비록 무대를 보려면 목의 통증을 조금 고려해야 하지만, 무대에 오른 배우들의 표정과 연기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극장 내 좌석 중 가장 비싼 좌석입니다. Stalls석에 앉게 되면, 무대 위 배우들뿐만 아니라 생생한 라이브 곡을 연주하는 지하층의 오케스트라 핏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았던 뮤지컬 중 가장 Stalls석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작품은 〈라이온 킹〉입니다. 이 작품의 경우, 동물로 분장한 배우들의 정밀하고 섬세한 동물 묘사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재밌습니다. 분명히 사람인데 몸의 움직임은 거의 동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섬세한 연기와 함께 화려한 무대장치도 큰 볼거리입니다. 극 중 기린이 나오는 부분에서 실제 긴 목을 가진 기린 인형이 관람객들의 머리 위를 핥는 듯한 연출은 Stalls석에 앉지 않았다면 경험할 수 없었던 부분입니다.

- Royal Circle과 Upper Circle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뮤지컬 극장이 1층에서 보면 알 수 있듯, 2층과 3층은 부드러운 곡선 형태의 좌석입니다. 실제로 좌석 배치도를 보면, 2층과 3층은 계단식 강의실과 같이 둥근 형태로 배정되어 있습니다. Royal Circle과 Upper Circle은 2층과 3층 좌석을 의미하는 이름으로, Circle은 극장의 2층 이상에 있는 둥글게 배치된 원형 관람석을 뜻합니다. 비록 생생한 배우들의 표정과 연기를 눈앞에서는 볼 수 없지만, 전체적인 배우들의 무대 안무와 이동 동선 그리고 풋워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발레와 같은 안무가 중요시되는 공연에서는 2층과 3층에서 관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보통 2층과 3층이면 잘 안 보이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Stalls석의 경우 경사도가 없는 편평한 지면에 좌석이 설치되어 있어서 뒤쪽으로 갈수록 앞사람이나 기둥에 의해서 무대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Royal Circle이나 Upper Circle의 앞쪽에 앉는다면 오히려 무대를 더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친절하게 영국의 티켓 예약 사이트에서는 ‘Restricted View’라는 표시가 따로 있습니다. Restricted view로 지정된 좌석은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기둥 등의 건축 구조물이나 다른 어떠한 공간상의 이유로 자리에 앉았을 때 무대의 일부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Stalls석에 Restricted View 자리가 꽤 있는데 혹시 뮤지컬을 관람할 계획이시라면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해서 좌석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2. 지금까지 이런 뮤지컬은 없었다, 이것은 먹방인가 뮤지컬인가

심장을 쾅쾅 울리는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시원한 맥주 한 잔, 남녀 주인공의 로맨틱한 듀엣곡을 들으며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음미하는 것이 런던에서 뮤지컬을 볼 때는 가능합니다. 음식물은 물론이고 병에 든 물까지 제한하는 경우가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웨스트엔드에서는 뮤지컬을 관람하며 술도 마실 수 있습니다.

각 좌석은 공연 시작 약 30분 전에 오픈됩니다. 이때 입장하게 되면 바로 착석하는 것이 아니라 층마다 마련된 바(bar)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칵테일, 와인, 맥주와 각종 음료, 아이스크림과 같은 간단한 간식거리를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첫 뮤지컬 관람 때 당연히 구입한 음료나 간식거리를 좌석 내부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해서 사지 않았는데, 바에서 구입한 식음료는 모두 뮤지컬을 관람하면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함께 입장한 외국인들은 모두 샴페인이나 와인을 한 잔씩 사서 들어갔습니다.

1부와 2부 사이 인터미션 시간에는 바 이용은 물론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아주 재미있게도 아이스크림을 팝니다. 그들은 작은 사이즈의 통에 든 아이스크림을 파는데, 목에 가판을 맨 직원들이 “ICE-CREAM”이 떠나가도록 외치면서 돌아다니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극장 내부에서 구입한 음식뿐만 아니라 외부 음식도 반입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라이온 킹>을 관람할 때 제 옆에 있던 외국인 2명은 샌드위치를 싸 와서 인터미션 시간에 먹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제가 본 공연들에서는 중간에 식음료로 인해 진행이 방해된 경험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많은 술과 간식거리를 사 먹고 쓰레기를 말끔하게 치우고 가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또, 조용하고 서정적인 노래가 나오는 중간에는 먹고 마시는 것을 중단하는 등 성숙한 관람 에티켓을 가진 영국인들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런던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극장 내부로의 음식 반입을 전면 금지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음식과 음료를 먹는 소리가 다른 관객들의 공연 집중도는 물론 배우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3. 런던의 현장 판매, 데이시트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식사 한 끼 값을 벌면서 뮤지컬을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데이시트입니다. 데이시트는 말 그대로 당일에 좌석을 구매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현장 판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데이시트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싼 가격에 Stalls석, 그중에서도 거의 앞자리를 구매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런던 또한 뮤지컬 티켓값이 저렴한 편은 아니기 때문에 여행객들은 데이시트로 뮤지컬을 관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데이시트의 경우 극장이 오픈하는 9시 이전에 극장 앞에서 대기하였다가 티켓 박스가 오픈하면 선착순으로 인터넷 예매 후 남은 좌석을 구입하는 방식입니다. 저는 〈위키드〉 공연을 데이시트 티켓으로 관람하였습니다. 당시 8시 20분쯤 공연장인 아폴로빅토리아 극장에 도착했었는데, 약 3팀 정도가 앞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런던을 방문했을 당시가 한국 대학교들의 방학 시즌이라 런던 여행을 하는 내내 제가 한국에 와 있는지 런던에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인이 많았었습니다. 데이시트 대기자는 다 한국인 대학생들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의외로 영국인들도 줄을 서서 티켓을 구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9시 정각이 되면 극장 티켓박스가 오픈됩니다. 그러면 줄을 선 순서대로 티켓을 구매하게 되는데요, 티켓 박스 직원이 Stalls, Royal Circle, Upper Circle 중 원하는 좌석을 묻고 해당 좌석에서 구매 가능한 자리를 알려줍니다. 생각보다 좋은 자리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한 극장에서 뮤지컬이 4~5개월 정도 긴 시간 동안 공연을 하다 보니 3주 정도 공연하고 막을 내리는 우리나라보다는 여유 좌석이 많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위키드〉 Stalls 석 맨 앞줄 좌석을 약 29파운드(약 5만 원) 정도에 구입했습니다. 보통 인터넷에서 구매할 때 12만 원인 것을 고려하면 아주 저렴하게 뮤지컬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7~8월 성수기의 경우 여행객들이 워낙 많다 보니 일찍 가서 줄을 서지 않으면 좌석이 매진되어 이른 시간부터 움직인 것이 헛수고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의 10만 원에 가까운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데이시트를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을 관람하며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들과 관람 팁들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올해 웨스트엔드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큰 사랑을 받은 <맨 오브 라만차>는 물론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맘마미아>, <레미제라블> 등의 막이 오른다고 하니, 영국 여행을 계획하시고 있다면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한 편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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