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 나의 삶1]성에 대한 오만과 편견이 없는 아이로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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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6

성에 대한 오만과 편견이 없는 아이로 키우기

글. 강동훈 판사(서울서부지방법원)

1. 아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다가

저에게는 이 글을 작성하는 날을 기준으로 곧 세 돌을 맞이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저의 아들은 저와 같이 책을 읽다가 제가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잠에 듭니다.

밖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날도 어김없이 머리를 굴려 동요 하나를 선곡했습니다. ‘비가 내리니 개구리 동요가 어울리겠다.’ 아들을 재우기 위해(!) 가능한 한 낮고 잔잔한 목소리로 불러줍니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네. 듣는 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개구리 가족은 딸과 사위는 없나? 그러고 보니 손녀도 없네? 그런데 왜 가사는 아들 → 손자 → 며느리 순서로 나가지? 며느리가 제일 뒤에 있네.’

처의 퇴근이 늦었던 날입니다. 그날 선곡했던 동요는 ‘뽀뽀뽀’입니다.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엄마가 안아줘도 뽀뽀뽀,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 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집은 아빠만 출근하는 집인가 보네. 우리 집은 아빠보다 엄마가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데.’

2. 우리 아이가 보고 듣는 것들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제 아들이 보고 듣는 콘텐츠를 살펴보면, 잘못된 성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는 콘텐츠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옛날 동화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나쁜 계부는 찾아보기 힘든데, 나쁜 계모는 참 많습니다. 예쁘고 연약한 공주는 문제를 해결해줄 왕자를 기다립니다. 심지어 인어공주는 왕자의 사랑을 갈구하다 목소리도 잃고 물거품으로 변해버립니다.

근래에 만들어진 만화영화라고 하여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영화의 주인공은 대부분 남성입니다. 뽀로로, 타요, 폴리, 슈퍼 윙즈, 퍼피 구조대 등. 지금 잠깐 생각하기에 여성이 주인공인 만화로는 콩순이 정도만 떠오릅니다. 주인공의 성별을 떠나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더 문제가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뽀로로의 경우 등장인물의 대부분은 남성이고, 여성 캐릭터는 루피와 패티만 있습니다. 그런데 루피는 운동신경과 자신감이 부족하고,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패티는 그나마 활동적인 캐릭터로 뽀로로 시즌 1에 없었는데 나름 제작진이 신경을 써서 시즌 2에 투입한 캐릭터로 보입니다. 그러나 뽀로로, 크롱, 에디와 같은 남성 캐릭터들이 루피보다 패티가 예쁘다면서 패티만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씁쓸해집니다. 다른 만화들도 비슷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대부분 남성 캐릭터고, 여성 캐릭터는 남성 캐릭터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나마 흔치 않은 여성 주인공인 콩순이조차 언제나 치마를 입고 있네요.

3.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성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성인용 콘텐츠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 그중에는 대중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한 것들도 있습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어른들에게 심어진 잘못된 성 고정관념을 바꾸려는 노력에 비하여, 아이들에게 잘못된 성 고정관념을 심지 않으려는 노력이 적지 않았나 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어린아이들일수록 미디어에 노출됨으로써 손쉽게 성 고정관념이 형성될 수 있음에도 말이죠. 그래서 저는 우리 부모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막연히 아이들을 콘텐츠에 노출하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필터링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동요나 동화에 나오는 여성을 남성으로 바꿔서 읽어주기도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개구리 동요를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딸, 손녀, 사위가 다 모여서.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네”로 불러주거나, 뽀뽀뽀를 “엄마가 출근할 때 뽀뽀뽀. 아빠가 안아줘도 뽀뽀뽀”로 불러주는 방식으로요. 다만 동요의 가사를 바꿔서 불러줄 때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하루는 동요 ‘곰 세 마리’의 가사,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애기 곰은 너무 귀여워”가 여자는 날씬해야 한다는 잘못된 성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빠 곰은 날씬해. 엄마 곰은 뚱뚱해. 애기 곰은 너무 귀여워”라고 바꿔 부르다가 처에게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디즈니에서 겨울왕국 같은 만화영화를 만든 것처럼, 우리가 직접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의 콘텐츠를 만들면 더욱 좋겠죠. 하지만 우리가 직접 콘텐츠를 만들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최소한 아이에게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형성시킬 수 있는 모습을 보이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엄마를 ‘집사람, 안사람’이라 부르지 않기(참고로 ‘아내’의 경우에도 집 ‘안에’ 있는 사람이란 뜻을 담고 있다는 주장이 많아서 저는 쓰지 않습니다), 집에서 엄마가 할 일과 아빠가 할 일을 구분하지 않기, 아빠도 육아휴직 해보기, 아빠도 어린이집·유치원 공식행사에 가보기,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강요하지 않기 등 부모가 보여줄 수 있는, 아니 보여줘야 하는 모습은 많습니다(그러고 보니 오히려 콘텐츠보다 부모가 보여주는 모습 때문에 성 고정관념이 형성될 여지가 더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고로 저는 올 초에 자녀돌봄 휴가를 신청해서 아들이랑 같이 어린이집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었는데요. 알록달록한 어린이집 오리엔테이션 초대장을 첨부파일로 첨부하여 자녀돌봄 휴가를 신청하자니 쑥스러웠고, 오리엔테이션에 아빠만 온 경우가 저밖에 없어서 더욱 쑥스러웠지만, 가서 직접 선생님들도 보고 아들이 다닐 어린이집을 둘러보니 좋았습니다.

4. 마치며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 아이가 특정 성이 우월하다는 오만과 성에 대한 편견 없이 자라나길 바랍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정서적으로 충만한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육아 자체도 힘든데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더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도 육아에 힘쓰는 우리 엄마들, 아빠들을 강력히 응원하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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