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 나의 삶 2]보길도 여행기_법원산악회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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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을 좋아하세요…) 산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늦어도 그때부터는 산이 좋아지고 산에 가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산에 오른다. 그냥 좋다고 한다. 그것으로 그만이어도 좋을 것이다.

2. (법원산악회)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법원에는 법원산악회가 있다. 어느 법원에나 있는 것 아닌가요? 없는 법원도 있겠지만… 어느 법원 산악회가 아니라 이름이 그냥 법원산악회예요. 보편논쟁? 법원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도 우연히 알게 됐어요. 서울의 심장, 중부등기소에 가면 김진형 실무관이 있어요. 번호표를 뽑지 말고 그냥 코트넷 메일로 물어보시면 돼요.

3. (골라 가는 재미) 법원산악회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고 한다. 매년 초 1년 치 산행계획이 발표되는데 올해는 아주 더운 날과 아주 추운 날을 제외하고 10번 정도 산행이 예정되어 있다. 아무리 먼 곳도 대부분 당일치기이지만 1박 2일 여정도 매년 빠지지 않고 있으며 올해는 중국을 거쳐 백두산 등정도 기획되어 있다. 취향과 일정을 고려하여 골라 가는 재미가 있다. 임지를 옮기고도 좋은 사람들을 항상 볼 수 있다는 점은 덤이다.

4. (4월이 오면) 4월 보길도 여행이 1박 2일 여정으로 계획되었다. 고산 윤선도가 어부사시사를 지어 불렀다는 곳. 고산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오랑캐에게 항복한 것에 분개하여 제주도에 은거하려 하였다 한다. 도중에 풍랑을 만나 잠시 들렀다가 아예 정착한 곳이 보길도라고 한다. 서울에서 천 리. 어지간해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고장이다.

 

5. (출발) 금요일 정오 서른 여 명의 상춘객들이 서초동 법원행정처 마당에 모였다. 서관 앞에 흐드러진 벚꽃, 매화, 목련꽃, 홍매화, 이름만큼 귀여운 만첩풀또기, 길섶에서 출석을 알리는 개나리, 진달래, 잔디 위로 고개 쳐든 민들레. 그래도 서둘러야 했다. 애초 해남 땅끝마을에서 일박 후 아침 배로 보길도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정보가 샌 탓에 보길도가 고향이라는 어느 실무관이 섬 안 자기 집에서 숙박할 것을 고집하여 계획이 바뀌었다고 한다.

6. (땅끝마을) 버스는 쉼 없이 달렸다. 총무단에서 속도와 거리, 미분과 적분 계산을 잘한 덕에 버스는 마지막 배가 떠나기 직전에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기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식사며, 잠자리는 어떠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7. (보길도)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시원한 바다, 듬성듬성 박힌 크고 작은 섬, 소나무, 해풍, 모래, 울렁이는 물, 물결 위 바람, 포말, 시린 빛, 수면 아래 빛나는 멸치의 등줄기. 김, 미역, 다시마가 자라는 이랑과 고랑 사이를 비켜 배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아 나아간다. 노화도 선착장에서 국장님 한 분이 합류하였다. 보길도에서 중학교까지 다니시다 육지로 유학 나오셨단다. 그분은 전날 미리 내려와 저녁에 내놓을 문어를 잡고 계셨다고 했다. 고향을 소개할 생각에 무척 신나하셨다. 국민학교 시절로 돌아가신 듯. 노화도 선착장에서 버스에 올라 보길대교를 건너 보길도로 들어갔다. 짙은 구름에 해는 보이지 않고 물과 대기는 흐릿하여 구분이 어려워졌다.

8. (세연정) 보길도 윤선도 원림(甫吉島 尹善道 園林)에서 내렸다. 세연지라 불리는 연못 한가운데 정자 세연정이 있고 주변으로 숲을 조성한 곳이다. 흐르는 물을 가르고 바위를 놓아 연못을 만들고 소나무와 대나무로 조경하였다. 세연정의 모습이 경복궁 경회루 비슷하다.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을 가르치는 스승이었던 고산이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세연정에 담았다고 한다. 고산은 해질 무렵 세연정에 앉아 벗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달이 뜨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 기다림의 세월 속에서 세연정은 물과 바위와 한 가지 색이 되어버렸을까. 아직 봄기운이 더딘 4월의 세연정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슬프기까지 하였고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9. (동천석실) 날이 많이 어두워졌지만 고산이 차를 마시면서 글을 읽었다는 동천석실에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부용동에서 보는 동천석실도 아름다웠지만 동천석실에서 보이는 격자봉, 낙서재, 부용동도 아름다웠다. 이곳에 앉아 어떻게 글을 읽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 갔다. 그럼에도 허기가 밀려왔다.

10. (최초의 만찬) 숙소에는 상이 차려지고 있었다. 자기 집에서 숙박할 것을 주장했던 그 실무관이 아내와 함께 부모님을 도와 숯불을 지피고 돼지고기를 굽고 있었다. 아내도 같은 직장에서 만났다고 한다. 남도의 밥상은 어김없이 푸짐했다. 일렬로 이어붙인 밥상 위로 생선회, 생선구이, 전복구이, 굴, 문어숙회, 다시마, 갓김치, 배추김치, 열무김치, 고추, 오이, 양파, 된장, 고추장(상에 오른 음식을 이 정도 밖에 열거하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인식의 한계에 기인하는데 눈치 빠른 분들은 여기저기서 확인하실 수 있을 것이다)이 가득하여 돼지고기 구이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인 내외분께 감사의 말을 하고 그분들이 하시는 환영의 말씀을 들어보았는데 섬마을의 인심과 자식에 대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변방의 외딴 섬에서 난 자식이 서울 가서 법원공무원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쁘실까. 며느리도 같은 법원공무원이니 그 기쁨은 두 배 이상일 것이다.

 

11. (산행) 좋은 술과 안주 덕에 술자리는 자정을 넘겼고 고소한 전복내장죽으로 아침 속을 달랜 후 산행을 시작했다. 보길우체국에서 시작하여, 광대봉, 큰길재, 수리봉을 거쳐 주봉인 격자봉(433m)에 오른 다음 누룩바위, 뽀래기재, 보옥리 공룡알 해변으로 내려오는 4시간 반 길이다. 산세가 험하지는 않으나 산 전체가 온통 바위덩어리이다. 미쳐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한 나무는 바람에 쓸려 돌덩이를 부여안은 채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동백나무가 지천인데 사이사이로 동백의 붉은 빛이 점점이 박혀 있다. 문득 미술시간에 점묘화랍시고 켄트지 위에 물감을 뿌리며 놀았던 것이 생각났다. 풀 위에 떨어진 꽃은 땅에서 막 피어난 듯 아름답다. 손에 잡히는 진달래꽃은 뜯어 먹기도 하였는데 새콤달콤한 것이 청량감을 주었다. 맑은 날이면 추자도, 제주도를 볼 수 있다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하였다. 보옥리로 내려오니 바다를 등지고 뾰쪽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그 아래 공룡알 해변이 펼쳐져 있다. 갯돌이 크고 둥글둥글하게 마모된 것이 공룡알 같다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으니 실제 공룡이 알을 낳거나 공룡알이 발견된 곳은 아니다.

12. (최후의 오찬) 산행을 마치고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역시 보길도 국장님이 강추한 식당이다. 참돔, 광어, 갑오징어, 가리비, 홍합, 전복, 소라, 멍게, 홍어무침, 장어구이 등이 상에 올랐는데 모두 자연산이란다. 서울에서 먹던 것과는 모양과 빛깔이 달랐다. 다시는 받아볼 수 없을 밥상이었다. 국장님으로부터 이름과 레시피, 맛있게 먹는 방법을 들은 후 먹기 시작했다. 더 맛있는 것 같았다. 마당 그늘 수조에서는 회쳐지고 데쳐지기 전 물고기, 조개들이 한가로이 잠행하고 있었고 널평상 위에서는 내장을 비운 참돔, 옥돔이 볕을 쬐며 구덕구덕 말라가고 있었다.

13. (해남 녹우당) 부른 배를 달래며 다시 배를 타고 뭍으로 나와 해남읍에 있는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海南尹氏 綠雨堂 一圓)으로 갔다. 녹우당은 고산 윤선도 유적지로서 해남윤씨 고택이다. 먼저 유물전시관에서 설명을 들었다. 무엇이든 전문가로부터 들어가며 보아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전시관을 나와 현재 고산의 14대 종손이 거처하시는 녹우당으로 갔다. 녹우당 옆으로 불천위를 모시는 사당이 있고 뒤쪽으로 비자나무 숲이 원림으로 조경되어 있었다. 이 숲에서 바람이 불 때 쏴-아하는 소리가 빗소리 같다하여 녹우당이라 불린다 한다. 녹우당은 현재 종손이 생활하고 계시는 관계로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곳이지만 고산의 후손이신 어느 법원장님과 동행한 우리는 특별히 안채까지 들어설 수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 직접 뵙지는 못했다. 종가를 지키며 제사를 지내시기도 여의치 않으실 텐데 아프시다니 몹시 안타까웠다. 녹우당 뒤편 중턱에 보이는 비자나무 향기를 당겨서 맡아보고 버스에 오르기 전 길가에 심어 놓은 동백, 수선화, 유채, 이름을 알지 못하는 분홍꽃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14. (집으로) 서울을 향해 버스가 출발하고 나서 해가 빠르게 지평선으로 가 붙기 시작했다. 흐릿한 평원을 지나 금강의 황금을 건너 서울로 돌아와 한 달 뒤에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였다.

15. (拙筆之辯) 나는 능력이 부족하여 보길도의 아름다움과 고산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타내지 못하였지만 현명한 분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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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태욱 사무관(법원행정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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