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여행]젊음과 예술, 역사가 한 물결로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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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여행]젊음과 예술, 역사가 한 물결로 흐르는_대전 원도심 여행

2019.02.07

대전 원도심이라 불리는 대전 선화동, 대흥동, 은행동 일대는 다양한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공간이다. 10~20대가 주로 찾는 ‘으능정이 거리’에는 싱그러운 에너지가 흐르고, 건너편 ‘대흥동 문화예술의 거리’에는 공연, 전시 등 예술 공간과 아날로그 감성이 공존한다. 또한 원도심 곳곳에는 옛 건축물들이 자리해 우리나라와 대전의 역사를 투영한다.

학생들의 단골 놀이터 ‘으능정이 거리’

충남도청이 1932년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대전 대흥동을 중심으로 한 원도심은 중부권의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1990년대에 들어 둔산 신도시 개발과 함께 공공기관들이 이전하면서 대전 원도심 지형은 새롭게 바뀌었다. 공공기관 등의 이전으로 공무원과 직장인이 떠난 자리를 중·고교생과 대학생, 문화예술인, 여행객 등이 대신했고, 고객층이 변하자 상점들의 종류도 달라졌다. 또한 2006~2007년 지하철 1호선 개통 역시 대전 원도심의 상권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됐다. 도시재생사업 등 대전 원도심의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한 노력들도 더해져 원도심은 대전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심 중 하나인 은행동은 유독 10~20대의 젊은 층을 많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은행동의 큰 거리를 ‘은행나무가 있는 정자자리’라는 뜻에서 으능정이 거리라고 부르는데, 수업이 끝나는 오후 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몰려나온 학생들로 거리는 왁자지껄해진다. 저렴하면서 트렌디한 옷 가게, 액세서리 가게, 음식점, 분식 포장마차, 술집 등이 많아 지갑이 얇은 학생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놀이터는 없다.

밤이면 특별한 영상 쇼가 펼쳐진다. 으능정이 거리에 설치된 초대형 LED 영상아케이드 구조물 ‘스카이로드’가 대형 LED 영상 스크린을 통해 빛의 향연을 선보이는 것이다. 으능정이 거리에 처음 간다면 스카이로드의 진가를 살필 수 있는 밤이 좋을 것 같다.

<으능정이 거리에 설치된 초대형 LED 영상아케이드 구조물 ‘스카이로드’>

스카이로드가 설치된 메인 거리 양쪽으로는 골목들이 가지처럼 뻗어 있다. 메인 거리만큼이나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 상점이 즐비해 이곳에도 항상 인파가 많은 편이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환한 웃음소리들을 듣고 있노라면 미소가 함께 지어진다. 으능정이 거리에서 들러보면 좋을 곳이 있다. 인터넷과 매체 등을 통해 ‘전국 3대 빵집’으로 알려진 성심당이다. 1956년 문을 열어 60년 넘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곳의 대표 메뉴는 ‘튀김 소보로’다. 소보로빵에 팥 앙금을 넣어 튀긴 튀김 소보로는 소보로빵과 팥 앙금빵 두 가지 맛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날로그 감성 품은 ‘대흥동 문화예술의 거리’

<대흥동은 으능정이 거리에 비해 아날로그 감성이 두드러지는 공간이다>

젊은 에너지가 충만한 으능정이 거리 골목을 빠져 나와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면 사뭇 다른 분위기의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대흥동 거리다. ‘문화예술의 거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연극과 전시 같은 다양한 문화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가장 먼저 만나는 풍경은 예스러운 간판이 인상적인 ‘가톨릭문화회관 아트홀’이다. 지금은 더 이상 운영되지 않지만, 대전에 마땅한 문화공연 공간이 없던 1970년대 초반 이곳은 대전의 공연 문화를 꽃피운 문화의 성지였다. ‘신의 아그네스’, ‘빨간 피터의 고백’ 등 유명 연극부터 김덕수 사물놀이패, 장사익, 김광석 등 많은 예술인이 찾아 대전 시민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가톨릭문화회관 아트홀의 명맥은 이 거리의 작은 갤러리와 소극장들이 이어가고 있다. 대흥동 골목마다 자리한 예술인들이 연극, 미술, 전통음악 등 각자의 작업을 이어나가며 관객과 소통한다.

문화예술의 거리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또 다른 차원의 골목과 마주하게 된다. 1970~8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단아하고 아기자기한 골목이다.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건물에 자리한 트렌디한 음식점과 커피숍들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가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옛 산호다방 건물 벽면에 큼지막하게 그려진 스웨터 벽화는 이 골목의 상징처럼 자리잡았다. 2012년 대전시립미술관이 도시재생사업을 위해 작업한 것으로, 당시 그려진 대부분의 벽화가 사라졌지만 스웨터 벽화만큼은 여전히 남아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거리를 오랫동안 지켜오던 ‘터줏대감’ 상점 몇 곳이 문을 닫은 점은 아쉽다.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던 산호다방은 현대식 커피숍으로 바뀌어 젊은이들이 찾는 공간으로 변모했고, 젊은 예술가를 위한 전시공간 겸 게스트하우스로 쓰이던 산호여인숙 역시 더 이상 이 거리에서 볼 수 없다. 대전시민들과 여행자들에게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제공했던 독립서점 ‘도시여행자’도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역사가 숨쉬는 건축물 둘러보기

대전 원도심은 역사적인 건축물이 많아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도 매력적이다. 1962년 지어진 대흥동 성당은 시멘트 벽돌로 마감해 당시 적벽돌 구조가 주를 이뤘던 고딕 양식의 여느 성당들과 차별화했다. 성당의 모습도 예사롭지 않은데, 이 독특한 건물 모양은 하늘을 향해 모으고 있는 두 손을 형상화한 것이다. 매일 낮 12시와 오후 7시면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가 대전의 원도심 한복판에 울려 퍼지니, 이 또한 귀 기울여볼 만하다.

<대흥동 성당은 하늘을 향해 모은 두 손을 형상화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흥동 성당 맞은 편에서는 대전창작센터를 만날 수 있다. 1958년 지어져 서양 건축 양식인 아치형 출입구와 건물 외벽에 돌출된 네모난 창틀이 특징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청사로 쓰였다가 이전하면서 창작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대전갤러리도 빼놓을 수 없다. 대전갤러리는 1937년 일제 강점기에 대전여중 강당으로 지어진 건물로, 우리나라 초가지붕을 연상시키는 아르누보풍의 부드러운 지붕선이 유독 아름답다. 처마 아래는 고전주의적 수법인 치형(齒形) 돌려쌓기로 장식해 마무리했다.

대흥동 일대를 가로지르는 중앙로를 따라 대전역과 마주 보고 있는 대전근현대전시관 역시 건축학적 의미가 깊은 곳이다. 충남도청이 내포신도시로 이전하기 전까지 도청으로 사용한 이곳은 등록문화재 제18호로 웅장한 유럽식 건축양식이 가장 큰 특징이다. 건물 정면 외관의 스크래치 타일과 1층과 2층 사이에 배치한 외부 벽체장식문양, 중앙 로비 바닥의 타일 문양과 천장에 샹들리에를 고정한 지지대 문양 등도 꼭 살펴봐야 한다. 영화 <변호인> 촬영 장소로도 쓰인 이곳은 현재 시민들이 역사공부를 할 수 있는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탄생한 목척교는 여전히 대전 시민들에게 중요한 다리이다>

대전근현대전시관에서 대전역 방향으로 가면 대전천을 잇는 다리 목척교를 만날 수 있다. 나무 난간이 마치 길이를 재는 자와 같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목척교는 ‘6.25 때 헤어지면 만날 장소도 대전 목척교였고, 문인들 술 약속 장소도 목척교였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다리였다. 곡선미 넘치는 조형물을 설치해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탄생한 목척교는 중앙시장과 바로 이어져 지금도 대전 시민들에게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다.

대전 원도심은 마치 테마공원 같다. 장소마다 색다른 느낌과 볼거리를 제공해 골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앞으로 대전시가 풍부한 역사·문화자산을 갖춘 원도심을 문화허브로 조성하는 사업들도 진행한다고 하니, 다음 여행지 리스트에는 반드시 대전 원도심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글. 최덕철 _ 사진.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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