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전 행복투어]사색의 계절에 찾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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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충전 행복투어]사색의 계절에 찾아가는_고양

2018.10.05

요즘 대지는 갈색이다. 집을 나서면 삽상한 가을바람이 손짓한다. 이번 호에 소개할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고양은 가을 여행지로 제격이다. 자연, 역사, 맛, 놀이, 체험, 스포츠 레저, 문화 등 몸이 즐거운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전망이 뛰어난 행주산성
고양 여행의 첫 방문지는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행주산성(사적 제56호)이다. 서울과 파주를 잇는 자유로를 따라가다 신행주대교 못미처 좌측 한강변 덕양산에 자리 잡고 있은 행주산성은 문화유적과 함께 아름다운 산수를 감상할 수 있는 훌륭한 여행 코스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순찰사로 있던 권율 장군은 이곳에서 병사를 이끌고 왜군 수만 명을 무찔렀다. 당시 성안의 부녀자들은 치마폭에 돌을 주워 담아 싸움에 일조했는데 우리나라 전쟁 역사에 따로 없는 ‘재주머니 던지기’라는 전법(戰法)이다.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행주치마’라는 이름이 바로 여기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권율 장군의 지략이 제대로 통한 행주대첩은 한산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힌다. 매표소를 지나 행주산성 정문을 들어서면 권율 장군 동상이 늠름히 서 있고, 야트막한 산책로를 따라 정상에 오르면 한강 물줄기와 올림픽대로, 자유로, 난지도, 여의도, 남산, 저 멀리 임진강까지 두루 조망할 수 있다.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와 대첩비각, 행주대첩비 등 역사의 증거물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행주산성 아래 고수부지에는 행주산성역사공원이 조성돼 있다. 오래전 무장공비를 막기 위해 설치한 군 철책을 제거하고 잔디광장으로 꾸며놓았는데, 산책로 벤치에서 바라보는 한강 건너 개화산이 또렷하다.
산성 진입로에 형성된 맛집촌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장어구이와 국수는 이 마을의 명물이 된 지 오래로 살이 통통하고 부드러운 장어를 숯불에 구워 저마다의 비법으로 양념을 해 맛이 뛰어나다. 국수도 행주산성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맛봐야 할 음식이다. 잔치국수, 어탕국수, 초계국수, 비빔국수 등 저마다 색다른 맛으로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행주대첩비와 대첩비각

<행주대첩비와 대첩비각>

자연과 벗하며 걷는 평화누리길
행주산성에서 출발하는 평화누리길도 걸어 볼만하다. 김포에서 시작해 파주, 고양, 연천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최북단 걷기 코스로써 총 길이 189㎞ 중 행주산성에서 일산 호수공원에 이르는 고즈넉한 길이다. 이 길은 가을색으로 물들어가는 산과 강, 농촌과 도시를 두루 지나게 된다. 행주산성에서 내려와 옛 나루터가 있던 행주대교 아랫길을 따라가노라면 운치 있는 메타세쿼이아길이 나오고 군데군데 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철조망과 철새들이 노니는 습지가 보인다. 계속 더 올라가면 행주대교 앞에 이르는데 여기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한강변으로 이어지는 길은 초소가 막아서고 있어 평소에는 민간인들이 갈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마을로 향하는 길인데 이 길은 저쪽 일산 호수공원까지 이어져 있다. 그렇게 아담한 농촌마을길을 2시간 남짓 거슬러 오르면 일산 호수공원에 닿는다. 꽃과 숲이 어우러진 드넓은 호수 주변으로 높고 세련된 건물들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고 산책로, 자전거 도로, 조각공원, 공연장, 분수대, 어린이 놀이터, 자연학습장, 전망대, 수변광장 등 여가 시설들이 풍부하다. 호수를 붉게 물들이며 지는 석양은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한다.
한편, 일산 동구 정발산 북쪽 기슭에는 조선후기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전통 농촌 주택의 구조를 원형 그대로 보여주는 초가(경기도 민속문화재 제8호) 한 채가 있다. 약 150년 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집은 온돌이 있는 ‘ㄱ’자형 안채를 중심으로 맞은편에 행랑채가 있는데 전체적인 모습은 ‘ㅁ’자형이다. 특히 똬리 모양의 지붕 형태가 이채롭고 외양간, 아궁이도 딸려 있다. 집을 구성하고 있는 기둥, 대들보, 중방, 문틀, 마루, 서까래는 재목을 밤나무로 써서 소박하면서도 튼튼해 뵌다.

<호수공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두 능(陵)
고양은 크게 신도심(일산구)과 구도심(덕양구)으로 나뉘어 있다. 일산에서 수도권 지하철 원흥역 옆의 가시골로 간다. 고양시농업기술센터 내에 있는 가와지볍씨박물관이 목적지다. 가와지볍씨는 약 5020년 전 신석기 시대의 볍씨로 1991년 일산신도시를 개발하던 중 가와지마을(고양시 대화동)에서 발견됐다. 신석기시대 때 이미 한반도에 벼농사가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농경사적 증거이다. 박물관엔 가와지볍씨에 대한 자료와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의 고양의 농경문화 변천사를 두루 전시해놓고 있다.
고양은 능이 유난히 많다. 능이 많다는 건 이 고장의 역사가 간단치 않았음을 반증한다. 가와지볍씨박물관 주변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서삼릉과 서오릉이 있으며 가까이에 고려공양왕릉, 최영 장군 묘, 성녕대군 묘도 자리 잡고 있다. 먼저 고양시 용두동에 들어선 서오릉(사적 제198호)으로 간다. 이곳에는 조선 왕후를 모신 5개(창릉, 명릉, 익릉, 홍릉, 경릉)의 능이 있다. 오릉 외에도 명종의 첫째 아들 순회세자의 순창원과 영조 후궁 영빈 이씨(사도 세자의 생모)의 수경원이 있으며 숙종의 후궁인 장희빈의 대빈묘도 한쪽에 자리 잡았다.
서오릉에서 통일로를 따라가다 농협대학 쪽, 원당 가는 길로 2㎞쯤 들어가면 조선말기 왕실의 가족 묘지인 서삼릉(사적 제200호)이 나온다. 희릉, 효릉, 예릉 등 3개의 능이 서울 서쪽에 있다 하여 서삼릉이라 한다. 종마목장과 맞붙어 있는 이 능역은 원래 100여 만 평에 이르렀으나 1960년대 농업 육성 정책에 따라 축협 목장과 농협대학 등이 들어서면서 7만여 평으로 줄어들었다. 인종의 친모 장경왕후 윤씨를 모신 능이 ‘희릉’이고, 중종의 아들 인종과 인종의 비(妃)인 인성왕후를 모신 능이 ‘효릉’, 조선 제25대(구한말) 철종과 철인왕후를 모신 능이 ‘예릉’이다. 조선이 쇠국의 시기를 걸어갔던 그 당시, 파란 많은 삶을 살았던 임금들의 무덤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밖에 역대 3세자(世子)를 모신 의령원(사도세자의 장자인 의소세손), 효창원(정조의 장자인 문효세자), 소경원(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과 후궁, 왕자, 공주, 옹주 묘도 있고 역대 왕의 태가 안장돼 있는 태실도 있다.
서삼릉 옆에 들어선 원당종마목장은 가을 사색에 빠지기 딱 좋은 곳이다. 초지 옆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광활한 초원이 나타나는데 드문드문 말들이 풀을 뜯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 목장을 천천히 돌아보는데 약 1시간 정도 걸리며 특히 관리사무소 좌측으로 난 오솔길은 종마장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 막힘없이 탁 트인 초원을 바라보노라면 내가 마치 동화(童話) 속의 목동이 된 듯하다.

<가와지볍씨박물관에 전시된 옛 농기구>

<조선 세조의 장남이자 조선 성종의 아버지인 의경세자의 묘 ‘경릉'>

<철종과 철인왕후를 모신 ‘예릉’>

글·사진 김초록(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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