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전 행복투어]진주의 한여름 속으로 풍덩 빠지다

테마법원

2018.08.02

여름의 꼭지점이자 서서히 여름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8월, 통영대전고속도로를 타고 진주로 간다. ‘진주라 천 리 길’ ‘북평양 남진주’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예부터 경남의 경제와 문화 중심지 역할을 해온 진주, 여름의 끝자락에서 기품이 넘치는 진주의 정취에 취해보자.

진주 답사 1번지, 진주성과 촉석루

‘물·불·빛의 도시, 진주’. 진주를 알리는 홍보 문구이다. 여기서 물은 남강과 진양호를 일컫는다. 진주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남강은 예나 이제나 한결같은 물길로 진주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도 남강을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남강을 따라 들어선 촉석루, 진주성, 진주박물관 같은 볼거리는 진주의 역사를 웅변해준다.

이슥한 밤, 남강에 비치는 촉석루의 불빛을 보셨는지. 은은하면서도 고혹적인 불빛이 마음을 잔잔하게 흔든다. 촉석루 맞은편의 남강둔치와 남강에 가로놓인 두 다리(진주교, 천수교)는 남강 불빛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명소다. 특히 망진산 봉수대와 선학산에 오르면 남강을 비롯해 진주시내 전체 야경이 두 눈 가득 펼쳐진다. 매년 가을(올해는 10월 1일부터 14일까지 열린다) 남강에서 펼쳐지는 유등축제* 때 가면 더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

남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진주성은 진주성 전투의 현장이다. 진주성으로 들어가는 문은 세 군데. 성의 중앙에 있는 정문(공북문)과 서쪽 끝에 있는 서문,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촉석문이 그것이다. 촉석문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촉석루가 단정하게 앉아있고 왼쪽으론 성곽이 둘러싸고 있는데, 그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남강의 물줄기가 시원스럽다. 진주목사였던 김시민 장군은 진주성에서 왜군과 밀고 밀리는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이 전투로 7만 명의 민·관·군이 순국했다. 의로운 죽음을 맞은 이들 가운데 기생 논개도 있었다. 논개는 적장을 안고 촉석루 아래 의암으로 투신했다. 논개는 왜장을 껴안은 손가락이 풀리지 않도록 10개 손가락에 가락지를 꼈다고 전한다. 논개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해 지역 사람들은 이 바위를 ‘의암’(義巖)으로 부르고 있다. 논개의 넋이 유유히 흘러가는 물결 어디선가 손짓하는 듯하다. 촉석루 옆의 사당 의기사(義妓祠)에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셔놓았다. 촉석루는 임진왜란 당시 작전 통제소로 쓰였으며 평상시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진주 8경 중 제1경으로 평양 부벽루,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에 든다.

국립진주박물관

의암

자연을 벗 삼아 걷는 진주 에나길

진주도 여느 도시처럼 역사와 문화를 느끼고 바로 보는 탐방길(진주에나길)이 열려 있다. ‘에나’는 참, 진짜라는 뜻의 진주 지역 방언. 출발지는 진주성과 진양교 2군데로 곳곳에 ‘에나길’ 이정표가 있다. 파란색 화살표는 순방향, 빨간색 화살표는 역방향을 뜻한다. 선학산 전망대에 오르면 진주 시가지와 남강은 물론 저 멀리 지리산 노고단과 천왕봉의 모습도 한눈에 들어온다. 탐방길에 만나는 진주중앙시장은 조선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경남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시장에서 파는 갖가지 먹거리는 출출한 배를 채우기에 아주 좋은데 그중 육회비빔밥이 유명하다. 황금색의 둥근 놋그릇에 밥과 다섯 가지 나물이 어우러져 일곱 가지 색상의 꽃처럼 아름다운 비빔밥이 나오는데 그래서일까, 예부터 진주비빔밥을 꽃밥 또는 칠보화반(七寶花飯)으로 불러왔다. 비빔밥과 함께 냉면, 헛제사밥, 전통한정식도 진주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시내 곳곳에 이들 음식을 내놓는 제법 알려진 맛집이 많다.

진양호 따라가는 길

남강은 진양호 물길이 만든 강이다. 진양호는 저 멀리 덕유산에서 발원한 경호강과 지리산에서 시작된 덕천강이 만나 만든 거대한 호수다. 호수 중간 중간에 떠 있는 자그마한 섬들은 다도해의 그것처럼 아름답다. 호수 주변에 흩어져 있는 물홍보전시관, 동물원, 휴게전망대, 삼림욕장 등은 여행객들에게 좋은 쉼터 구실을 한다. 진양호는 물안개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이른 아침이나 호수 너머 산 뒤로 노을이 깔리는 석양 무렵이 유독 아름답다.

가파른 절벽과 산으로 둘러싸인 진양호는 호수로는 드물게 물이 맑다. 1급수에서 사는 삵과 수달이 종종 나타나고 수리부엉이, 멧돼지, 노루, 너구리, 중대백로, 왜가리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포유류와 조류들이 진양호에 나타나는 건 먹이가 풍부하고 호수가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고양잇과 맹수인 삵(살쾡이)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이다. 환경부는 삵과 수달이 발견된 진양호 일대를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진양호를 굽어 도는 호반도로를 달려보자. 드라이브 코스로 나무랄 데 없다. 호반도로 끝자락에 있는 청동기문화박물관(055-749-5172)은 남강댐 건설로 수몰된 이 지역의 각종 유물을 발굴, 전시해놓은 곳이다. 청동기시대의 생활상 등을 자세하게 둘러볼 수 있으며 야외에는 움집과 고상창고, 목책, 무덤군 등이 옛 모습 그대로 전시돼 있다.

진양호

청동기문화박물관

청곡사

길손을 반기는 여름꽃들

진주엔 1000년 역사를 지닌 자연못이 있다. 월아산(해발 482미터, 달엄산 또는 달음산으로도 불린다)이 병풍처럼 둘러선 금호지와 고려시대 진주의 옛 지명에서 빌려온 강주연못이 그것이다. 금호지(6만 1천평)는 강주연못의 6배에 이른다. 연꽃(홍련), 개구리밥, 부레옥잠 등 물풀이 저수지를 아름답게 꾸며놓고 있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초록물이 뚝뚝 드는 듯하다. 금호지에서 바라보는 월아산 일출은 일찍이 진주 8경 중 제7경으로 지정될 정도로 아름답고 장엄하다. 또한 아산토월(牙山吐月)이라 하여 동쪽 멀리 우뚝 솟은 월아산이 달을 머금고 금호지를 물들이는 장면은 천하일품이다. 여름꽃들은 강주연못에도 활짝 피어 있다. 연꽃을 비롯해 붓꽃, 꽃창포, 금불초, 비비추 등 예쁘고 앙증맞은 꽃들이 지천이다. 이따금 물닭과 논병아리도 보이고 오리도 연못 주위를 맴돈다. 연못을 빙 둘러가며 산책길이 나 있는데 500∼600년은 됨직한 고목이 만든 그늘은 더위를 피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월아산 깊숙한 곳, 청량한 숲속에 들어선 청곡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도선국사가 세운 고찰로 들머리에 있는 방학교(訪鶴橋)와 환학루(喚鶴樓, 찾아온 학을 불러들인다는 뜻)는 이 절에 얽힌 전설을 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주심포 목조 팔작집인 대웅전은 서부경남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꼽힌다. 물빛 고운 저수지와 푸른 산, 아담한 천년고찰이 텅 빈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진주 도심에서 마산 쪽으로 20분 거리에 있는 경상남도수목원(055-254-3811). 17만 평의 수목원엔 수천 종에 이르는 자생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산림박물관을 비롯해 열대식물원·수생식물원·무궁화공원·야생동물원 등이 주제별로 꾸며져 있다. 산림박물관 뒤편의 메타세쿼이아 길도 운치를 더한다. (수목원 입장 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매주 월요일은 휴무) 수목원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용암사지는 고려시대 사찰 터로 사리탑인 용암사지 승탑(보물 제372호)과 석불, 석등이 볼만하다. 8각의 높직한 바닥돌 위에 단정하게 올라앉은 승탑은 전체적으로 균형미와 안정감을 준다.

*남강에 띄우는 유등 놀이는 우리 한민족의 최대 수난기였던 임진왜란의 진주성 전투(진주대첩)에 기원한다. 때는 1592년 10월, 충무공 김시민 장군은 3,800여명에 불과한 적은 병력을 이끌고 진주성을 침공한 2만 왜군과 맞서 싸울 때 성 밖의 병사들과 협력해 풍등을 하늘에 올리고 횃불과 함께 남강에 등불을 띄웠다.

글·사진 김초록(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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