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전 행복투어_하늘빛 닮은 의정부의 겨울 속으로

테마법원

2018.02.06

의정부 여행을 시작하며 고 천상병(1930~1993) 시인의 ‘귀천’ 한 대목을 읊조려본다. 의정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복잡다단한 이 세상을 ‘소풍’에 비유했던 재치와 감성을 끌어들여 만들어진 이른바 ‘소풍길’(총 71.7㎞)을 마주할 수 있는 곳 의정부, 그곳에서 바쁜 일상에 잠시 마침표를 찍어본다.

콧노래 부르며 걷는 소풍길

소풍길은 의정부를 에워싼 시(市) 외곽 6개 코스와 중랑천, 부용천 등 시내를 가로지르는 3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직동근린공원(의정부 예술의 전당 뒤편)에서 시작하는 소풍길은 인공의 손길을 가급적 배제하고 자연 친화적으로 꾸민 숲길이다. 중간중간 벤치가 놓여 있고 운동기구, 통나무집이 운치를 더한다. 들머리에 있는 통나무집은 도심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한다. 이국풍의 통나무집이 울창한 수목 사이사이에 들어앉아 있다. 이곳을 이용하려면 사전에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하고 세면도구, 휴대용 가스레인지 등 개인 물품은 가져가야 한다.

오밀조밀 이어진 소풍길은 북한산 둘레길(도봉산 지구)의 하나인 안골길으로 이어진다. 사패산 정상으로 오르는 안골길은 깊고 헌걸차다. 안골계곡에서 사패산 능선을 따라 송추 쪽으로 내려갈 수 있고, 안골계곡에서 사패산 정상에 오른 다음 사패능선-회룡사거리-회룡사-회룡역으로 하산하는 방법도 있다.

회룡사

사패산 봉우리가 바라보이는 회룡사.

통나무집

직동공원 입구의 소풍길에서 만난 통나무집, 예약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기 좋은 다양한 등산로

사패산으로 오르는 길은 이밖에 범골, 회룡골, 안말, 원도봉 등 다양하다. 범골에서 시작하면 호암사를 경유하게 되고, 회룡골은 천년고찰 회룡사와 만난다. 또 안말은 법화사, 원도봉은 원각사와 쌍용사, 심원사, 원효사, 망월사를 지난다.

회룡사 서쪽 계곡 깊숙한 곳엔 석굴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김구 선생은 해방 후인 1948년 이곳 석굴암을 찾아 ‘석굴암 불 무자 중추 유차 김구(石窟庵佛戊子仲秋遊此金九)’란 친필을 써 주었다. 석굴암 근처 큰 바위에 김구 선생 필적이 남아 있다.

사패산 산행은 어느 코스든 3~4시간(왕복 기준) 정도 걸린다. 특히 겨울에는 산길이 얼어붙는 경우가 많아 아이젠이나 비상식량, 간단한 약품은 꼭 준비하도록 하자. 산행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도봉산역 인근에 있는 도봉산탐방지원센터(02-954-2566)와 북한산국립공원도봉사무소(031-828-8000), 양주 송추 쪽에 있는 오봉탐방지원센터(031-826-4559)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다양한 삶의 현장

의정부는 산만 있는 게 아니다. 삶의 현장인 전통시장(의정부 제일시장)과 편리한 시설의 쇼핑 공간, 젊음이 넘실대는 로데오 거리, 빙상 꿈나무들이 땀을 흘리는 빙상경기장, 수준 높은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예술의전당 같은 문화시설도 시내 곳곳에 포진해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장을 펼친 제일시장은 50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경기 북부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주말 저녁 무렵엔 찬거리를 사러 나온 주부들과 인근 서울, 남양주, 동두천, 양주, 포천, 연천, 철원에서 온 외지인들이 호객하는 상인들과 어우러져 시장 안은 생기가 넘친다. 더구나 민속 명절 설 대목이 가까워지면서 선물세트와 제수용품을 사려는 발길이 늘었다.

가능역 주변엔 이른바 족발거리가 형성되어 있고, 이곳에서 속을 든든히 채운 후 의정부실내빙상장에 들러보면 좋다. 의정부는 유명한 스케이팅 선수를 여럿 배출한 고장이다. 의정부실내빙상장은 스케이트와 아이스하키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요즘 이곳도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신숙주 선생 묘소 앞에 그의 높은 뜻을 기리고자 한글창제사적비를 세워놓았다.

서계 박세당 고택 앞에 서 있는 수령 450년의 은행나무.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역사 유적

포천과 경계를 이룬 부용산 근처(의정부시 고산동)에는 조선 초기의 학자로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헌을 하고 세종 때부터 성종에 이르기까지 여섯 임금을 보필한 신숙주 선생의 묘가 있다. 무송군부인 윤씨와 나란히 자리한 쌍분 앞에는 묘비석과 상석, 문인상, 신도비, 한글창제사적비 등 각종 석물들을 배치해 의미를 더하고 있다.

다음으로 갈 곳은 수락산 기슭의 서계 박세당 고택이다. 조선 후기 실학파의 한 사람인 박세당(1629~1703) 선생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이곳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앞면 5칸, 옆면 2칸 반으로 누마루가 붙은 ‘乙 자형’ 사랑채는 한눈에 봐도 멋스럽고 고풍스럽다. 선생은 이곳 사랑채에서 뛰어난 농사관련 저술로 평가받는 ‘색경(穡經)’을 집필했다. 사랑채 앞에는 수령 450년이 넘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종손이 고택 옆에 살면서 관리를 하고 있는데 방문하려면 미리 의정부시청 문화관광과에 연락해야 한다.

취재 | 사진 김초록(여행작가)

"테마법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