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우리 시

조사심의관 코너

아름다운 우리말, 우리 시

2018.08.01

1976년 출간된 이해인 수녀님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에 수록된 시입니다.
이 시집은 어렸을 적 저의 방 책장에 꽂혀 있었지만(제가 사거나 받은 기억이 없으니 아마 부모님 중 한 분의 책이었겠지요) 시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한 번도 열어보지 않고 늘 같은 자리에 꽂혀 있기만 하던 책으로 기억됩니다.
아마 아직도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 예전에 제가 쓰던 방 책장에는 『민들레의 영토』가 고이 간직해 놓은 아름다운 시를 누군가에게 꺼내어 보여줄 날을 기다리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시를 읽으면 시인이 숨겨놓은 참된 의미를 찾아가는 즐거움도 크지만, 소리 내어 읽으면서 물 흐르듯 아름답게 흘러가는 소리와 운율을 느껴보는 것 역시 시를 읽는 큰 즐거움이 아닌가 합니다.
자, 그럼 우리 다 같이 이해인 수녀님의 「六月엔 내가」를 소리 내어 읽어볼까요?
어떤가요? 소리와 운율의 아름다움이 느껴지시나요?
설마 ‘六月’을 ‘육월’로 읽으신 분은 없으시겠지요?
잘 아시겠지만 ‘六月’은 ‘유월’로 읽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읽기도 쉽고 듣기에도 편한 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六月’의 한자음 그대로 ‘육월’로 소리 내어 위 시를 낭송하면 시의 아름다움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말 중에는 발음을 매끄럽게 함으로써 듣는 사람에게 유창하고 쾌미한 청각적 효과를 주기 위하여 한자어 본래의 음과 다르게 읽고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두음 법칙’입니다.
두음 법칙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단어에서 한자음을 읽을 때 본래 음과 달리 굳어져 쓰이는 단어들도 있습니다.
한자어에 관한 일종의 예외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이런 예외적인 법칙이나 단어들이 우리말을 훨씬 아름답게 만들어 주기는 하지만, 바르게 알고 사용하지 않으면 틀리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럼 판결문 등에서 자주 틀리게 사용하는 표현들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정률(○) / 공정율(×)

‘工程率’ 중 ‘率’의 본음은 ‘률’입니다.
두음 법칙에 의하면, 한자음 ‘라, 려, 례, 료, 류, 리’가 단어의 첫머리에 올 때에는 ‘야, 여, 예, 요, 유, 이’로, ‘녀, 뇨, 뉴, 니’가 단어의 첫머리에 올 때에는 ‘여, 요, 유, 이’로, ‘라, 래, 로, 뢰, 루, 르’가 단어의 첫머리에 올 때에는 ‘나, 내, 노, 뇌, 누, 느’로 적고, 단어의 첫머리 이외의 경우에는 본음대로 적습니다.(법칙 ①)
따라서 공정률이 맞습니다.

그러면 ‘이자율(利子率)’, ‘백분율(百分率)’, ‘연이율(年利率)’, ‘해외여행(海外旅行)’은 ‘이자률’, ‘백분률’, ‘연리률’, ‘해외려행’으로 써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법칙 ①에는 다음과 같은 예외가 있습니다.

모음이나 ‘ㄴ’ 받침 뒤에 이어지는 ‘렬, 률’은 ‘열, 율’로 적습니다.(법칙 ②)
나열(羅列), 비율(比率), 규율(規律), 분열(分裂), 백분율(百分率)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 접두사처럼 쓰이는 한자가 붙어서 된 말이나 합성어에서는 뒷말의 첫소리가 ‘ㄴ’ 또는 ‘ㄹ’ 소리로 나더라도 두음 법칙에 따라 적습니다.(법칙 ③)
역이용(逆利用), 연이율(年利率), 열역학(熱力學), 해외여행(海外旅行), 남존여비(男尊女卑), 비논리적(非論理的)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승낙(○) / 승락(×)

한글 맞춤법에서는 “한자어에서 본음으로도 나고 속음으로도 나는 것은 각각 그 소리에 따라 적는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문화체육관광부고시 한글 맞춤법 제52항).
본음은 한자 본래의 음을 말하고, 속음은 한자음을 읽을 때 본래의 음과 달리 일부 단어에서 굳어져 쓰이는 음을 말합니다.

‘承諾’ 중 ‘諾’의 본음은 ‘낙’입니다.
그런데 ‘諾’은 일부 단어에서 속음인 ‘락’으로 굳어져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승낙’을 한 번 소리 내어 읽어 볼까요?
어떤 소리가 나나요?
‘승낙’으로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승락’으로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글 맞춤법의 규정이 있지만 결국 본음과 속음 중 어떤 것을 써야 할지는 각 단어별로 그 소리를 외우고 익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한자어 중 본음과 속음으로 달리 사용되는 대표적인 단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諾: 대답할 낙 (본음: 낙, 속음: 락)
(본음으로 나는 것) 승낙(承諾)
(속음으로 나는 것) 수락(受諾), 쾌락(快諾), 허락(許諾)

難: 어려울 난 (본음: 난, 속음: 란)
(본음으로 나는 것): 만난(萬難)
(속음으로 나는 것): 곤란(困難), 논란(論難)

寧: 편안할 녕 (본음: 녕, 속음: 영)
(본음으로 나는 것): 안녕(安寧)
(속음으로 나는 것): 의령(宜寧), 회령(會寧)

怒: 성낼 노 (본음: 노, 속음: 로)
(본음으로 나는 것): 분노(忿怒)
(속음으로 나는 것): 대로(大怒), 희로애락(喜怒哀樂)

論: 말할 론 (본음: 론, 속음: 논)
(본음으로 나는 것): 토론(討論)
(속음으로 나는 것): 의논(議論)

六: 여섯 륙 (본음: 륙, 육, 속음: 뉴, 유)
(본음으로 나는 것): 오륙십(五六十)
(속음으로 나는 것): 오뉴월(五六月), 유월(六月)

木: 나무 목 (본음: 목, 속음: 모)
(본음으로 나는 것): 목재(木材)
(속음으로 나는 것): 모과(木瓜)

十: 열 십 (본음: 십, 속음: 시)
(본음으로 나는 것): 십일(十日)
(속음으로 나는 것): 시방정토(十方淨土), 시왕(十王), 시월(十月)

八: 여덟 팔 (본음: 팔, 속음: 파)
(본음으로 나는 것): 팔일(八日)
(속음으로 나는 것): 초파일(初八日)

올해는 유난히 더운 여름입니다. 올해 여름휴가는 부모님 댁 예전 저의 방 책장에서 오랫동안 누군가 읽어주기를 기다려 온 이해인 수녀님의 『민들레의 영토』 시집과 함께 보낼까 합니다.

글 김규동(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